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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지원과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취약계층 분들을 만납니다. 다들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세요. 그래서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실 좀 지칩니다. 분명 과거보다는 복지제도가 더 좋아지고 있고 혜택도 더 나아지고 있는데, 받는 사람들은 늘 더 많은 것을 바라기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나보다 조금 더 혜택을 받기라도 하면 엄청난 불만을 쏟아 내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연 복지서비스가 이분들의 자립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혜택에 의존하게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구청 생활지원과에서 5년 동안 근무했다는 한 공무원의 털어놓은 솔직한 고백이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복지제도를 집행하는 최 일선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의 한결 같은 고충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복지 교과서에서 말하는 사회복지의 첫번째 목적은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자립성의 유지이다. 이것은 사회복지의 궁극적인 목표가 자기 문제의 원인과 의미를 스스로 인식하여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각 개인의 경제적 자립을 시켜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과거 10년 동안 최소한의 사회적안정망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사회복장제도를 확대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과거 10년 동안 (1998~2008) 복지재정 지출은 연 평균 13% 정도 늘어났다.

제도적으로도 4대 사회보험 및 보편적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구축과 함께 기초노령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장애수당·공보육제도 등 부문별 복지제도가 확립되어 가고 있다. 더불어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도 2000년에 92만8천원이던 것이 2009년 기준 136만원으로 늘어 연 4%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렇게 교과서에서 언급한 첫번째 목적인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는 어느 정도 그 틀을 잡아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목적인 경제적 자립에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아마도 위에 언급한 공무원의 고백이 솔직한 답이 아닐까 싶다.

기초생활보장제도아래 최저생계비 지원을 받는 수급가구는 만약 자립에 성공했다면 계속 줄어야 하나 아래의 표와 같이 2002년 이래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급가구 수
▲ 수급가구 수 추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급가구 수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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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2008년 보건복지부)

또한 자활사업수급자 중 취업등을 통해 자활에 성공한 자활성공률은 2004년 말 기준 5.4%에 지나지 않으며 심지어 수급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능력이 있음에도 자립을 포기하는 상황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돈 관리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수급비가 물론 최저생계비이다 보니 적은 금액이죠. 그러다 쓰는 방식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수급비를 지급받고 나면 며칠 만에 다 써버리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돈이 모자라 다른 후원금이 없나 늘 부탁하구요. 솔직히 빚이 없고 전세를 살아서 월세지출이 없으면 한 달에 몇 만원이라도 저축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어떤 분은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하던 임대아파트가 배정되었는데요 보증금 200여만원을 모아놓지 못해서 들어갈 수 없는 상황도 있었어요. 이럴 때는 안타깝기도 하지만 왜 조금씩 준비하지 못했는지 답답하기도 해요."

자활센터에서 조건부 수급자분들을 관리하는 사회복지사의 말이다. 물론 최저생계비라는 수급제도의 한계로 인해 수급비는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급제도도 국가의 제도인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급급여 지급으로만 국가의 역할이 끝나서는 안 되며 가장 효율적으로 쓰여지도록 하는 것까지 제도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복지제도가 수급비나 후원금 지급 같은 즉각적인 물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만 끝나게 된다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늘 부족하다는 불만을 가질 것이며 국가는 국기대로 재정지출을 계속해서 늘려야만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금전적인 지원과 더불어 반드시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돈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다. 적은 수입에 무슨 돈 관리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나 오히려 수입이 적을수록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생활에 배분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해진다. 물론 이렇게 지출을 통제하고 돈을 관리하는 과정이 수입이 적은 취약계층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 과정이 없다면 이들의 자립이나 자활은 요원할 뿐 아니라 그런 기회가 온다 한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위의 사례처럼 며칠 만에 수급비를 다 써버린 생활이 반복된다고 해 보자. 설령 상황이 나아져 수입이 조금 더 늘어난다 한들 이것이 저축이나 자립을 위해 쓰여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흐지부지 써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득 수준에서 돈을 관리하는 교육을 받고 지출을 통제하는 훈련을 지속한다면 조금 더 늘어나는 수입은 모두 저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의 경험은 이분들에게 스스로 자생 가능한 자립의 중요한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취약계층에게 복지혜택의 시작은 재무교육과 상담이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복지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환으로 2009년부터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재무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여러 지자체에서도 이런 제도를 조금씩 도입하고 있다. 취약계층 재무상담 서비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조금씩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복지제도도 이 흔한 원칙에서 비켜갈 수는 없다. 사회복지영역에서 재무관리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돈을 효과적으로 관리" 하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볼 때 바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태그:#재무상담, #취약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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