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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며 걷히지 않는 의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가슴에 한 줄기 숨통이 트였다. 어느 모로 보나 상식수준에 불과한 이런 주장에서 참 언론인의 용기를 느껴야 하는 현실이 여전히 안타깝지만 말이다.

 

 

오늘자(28일) '한겨레'에 실린 '곽병찬 칼럼' 덕분이다.

 

천안함 사고로 숨진 군인들은 '영웅'이 아니고 '참혹한 희생자' 일 뿐이라고 칼럼은 말한다. 옳은 말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신성한 영해를 수호하다 숨졌다며 숨진 군인들을 영웅이라 불렀다. 뿐만 아니라 1계급 특진에 무공훈장을 추서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성한 영해를 수호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군인들과 특히, 천안함의 최원일 함장은 2계급 특진도 모자랄 일 아닌가? 참으로 어이없는 현실이다.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왜곡해 '영웅'으로 부르는 것은 은연중에 북의 공격으로 배가 두 동강났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는 꿍꿍이속으로 보인다. 사고의 책임에서 도망치려는 잔꾀며 6월 2일 지방선거의 초점을 흐리려는 술책으로 보인다.

 

칼럼은 이렇게 말한다.

 

"(앞줄임)... 떠나는 순간까지 그들의 죽음을 누더기로 만드는 저 위선의 말장난들....(중간줄임)... 허황된 수사로 애도 분위기를 과장해 제 잘못을 덮어버리려는 저 잔꾀가 기막히고, 통한의 죽음마저 화려한 꽃장식 속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저 정치적 상술을 용서하기 힘든... (뒤줄임)"다고.

 

맞는 말이다.

 

군 당국은 그동안 줄곧 사고 원인에 대한 발표를 할 때마다 어렴풋이 추정하는 식으로 말을 하고, 언론에서 그쪽으로 보도하면 "... 그렇게만 단정 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의 주장과 추정을 부정하는 발표를 일삼았다.

 

버블제트에 의한 공격을 암시하는 "비접촉 수중폭발"이라고 발표해 놓고는 언론에서 다들 버블제트 같다고 보도를 하면 "버블제트라고 단정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 발을 뺀다. 노골적으로 북에서 공격한 것 같은 분위기로 몰고 가 놓고는 "북한의 공격이라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또 슬그머니 꽁무니를 감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단호히 대처 하겠다"면서 또 은연중에 북을 겨냥하고 나온다.

 

한 달 내내 이런 식이었고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군은 하루만 지나면 드러나는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 그들의 발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상식 수준에서 의문을 제기해도 전혀 해명되지 못했다. 군의 어떤 발표도 의문을 주렁주렁 뒤에 매달지 않은 게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 이번 사고로 군과 정부의 안보무능력과 대응부실 등이 불거질 것 같으니까 슬슬 영구 미제 사건이 되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지 않나 싶다. 나라의 안위와 백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으로 보인다.

 

칼럼을 쓰며 이 말 한마디에도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을까 못내 서글프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자칫 그들의 죽음을 폄하하는 것으로 매도될까 입을 닫았던 두려움을 털어내야 한다."

 

<곽병찬칼럼>'영웅신화' 그건 아니다

 

유가족이 아니라도, 생살 뜯는 아픔이다. 가슴 미어지고 기가 막히는 원통함이다. 오열에 떠는 애도의 상청 앞에서 옷깃 여민다. 그대 영면하시게나. 사랑하는 부모 형제, 피눈물 흘리는 처자식, 돌아서면 그리운 님을 두고 어찌 눈을 감겠는가마는. 그러나 어찌할 건가. 더는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 원통한 기억일랑 털어버리고, 이고 졌던 짐 남은 이들에게 맡기시고, 훌훌 떠나시게, 이 무지막지한 폭력과 거짓의 땅을.

 

돌아서면 더 원통하다. 떠나는 순간까지 그들의 죽음을 누더기로 만드는 저 위선의 말장난들. 그까짓 영웅 칭호 하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속좁음 때문이 아니다. 허황된 수사로 애도 분위기를 과장해 제 잘못을 덮어버리려는 저 잔꾀가 기막히고, 통한의 죽음마저 화려한 꽃장식 속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저 정치적 상술을 용서하기 힘든 까닭이다.

 

이번에도 정운찬 총리다. 그는 엊그제 담화에서 "그들은 온몸으로 숭고한 애국정신을 보여준 이 시대 이 땅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2함대 분향소 방명록에는 '당신들은 우리의 영웅입니다'라고 적었다. 영웅신화 만들기에 앞장선 것은 아니지만, 그 신화를 정 총리는 공식화했다.

 

불을 지피고 부채질한 것은 이 정권의 나팔수들이다. <한국방송>은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특별 생방송 프로그램을 두 차례나 내보냈다. 이승복 어린이 영웅신화의 주인공 <조선일보>는 자사 홈페이지에 일찌감치 '천안함 영웅들을 추모합니다'라는 글귀를 게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나라당은 '우리들의 영웅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펼침막을 선거에 활용하는 기민함을 과시한다.

 

이순신, 권율 장군, 김좌진, 홍범도 장군쯤은 돼야 영웅 호칭을 쓰던 게 이 나라였다. 서해 북방한계선 전투에서 희생당한 장병들에게도 쓰지 않았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모래알 같은 국민을 통합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영웅 호칭을 일삼아 붙여주는 미국이지만, 지금처럼 영문 모를 사고로 순직한 이들까지 영웅으로 추앙하진 않는다.

 

이제는 이 불편한 의문과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자칫 그들의 죽음을 폄하하는 것으로 매도될까 입을 닫았던 두려움을 털어내야 한다. 3월26일 밤 9시20분께 천안함은 통상적인 초계활동 중이었고, 근무가 끝난 승조원들은 가족, 친구, 애인과 통화 혹은 문자를 하거나, 부족한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 체력단련을 하거나, 근무를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폭발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숭고한 애국심을 온몸으로 보여줄 자세도 아니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하다못해 자위 차원에서 몸부림칠 겨를도 없었다. 그들은 참혹한 희생자였다.

 

설사 정부와 군, 보수언론이 추정하듯이 북쪽 중어뢰의 버블제트로 말미암은 사고라 하더라도, 그들이 비명에 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건, 적이 후방 깊숙이 침투하도록 무방비였던 경계태세, 어뢰가 배 밑에서 터질 때까지 작동하지 않은 음향탐지기 등 엉망진창인 방어체계, 침몰 뒤 사흘이 지나도록 침몰한 선체를 찾지 못한 총체적 부실 등 군 통수권자의 안보 무능력만 드러낼 뿐이다. 첨예한 대결정책으로 이런 사태를 초래한 이 정권의 정책적 실패만 부각시킬 뿐이다.

 

정부의 펼침막은 이렇게 다짐한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다,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기억할 건 영웅신화가 아니라, 원통한 죽음의 진실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 터무니없는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고, 하루에도 열두번 가슴을 쓸어내리는 군 장병의 부모들도 안심시킬 수 있다. 그래야 "엄마가 군대 가라고 해서 미안하다"라는 한 유가족의 울부짖음도 이번으로 그친다.

 


태그:#천안함, #곽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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