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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은 따뜻함을 상실해 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다 있나 할 정도로 이곳 남도(南都)에서조차 한겨울에도 보기 어려운 눈이 내린데다 마치 겨울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날씨마저 춥고 비도 잦았다. 그러니 몸이 자꾸 움츠러들고 마음도 눅눅하고 스산해질 수밖에.

 

게다가 안타까운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면서 삶도 점점 고달파져 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일상에 묶여 한동안 산도 찾지 못했다. 그래, 어디든 훌쩍 떠나자. 어쨌든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 대고 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산이 바로 서산 팔봉산(八峰山, 361.5m)이었다.

 

왜 하필 서산 팔봉산이었을까? 사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서해 쪽으로 산행을 나서는 것이 몹시 조심스럽고,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 충남 서산까지의 거리 또한 상당히 멀어 오가는 길에서 지쳐 버리기 십상인데 말이다. 하지만 팔봉산이란 산 이름을 보자 예전에 여덟 봉우리를 이어서 탔던 전남 고흥군 팔영산(608.6m)과 경북 영덕군 팔각산(628m) 모습이 아른거리면서 왠지 가고 싶었다. 

 

지난달 24일, 나는 2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산행을 하기 위해 차로 왕복 9시간가량 걸리는 팔봉산 산행을 결국 나서게 되었다. 아침 7시 10분께 마산서 출발하여 양길주차장(충남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께. 모처럼 따스하게 부서져 내리는 봄 햇살을 받으며 오랜만의 산행을 시작했다.

 

15분 남짓 걸어갔을까, 1봉과 2봉의 갈림길이 나왔다. 이런 경우 1봉으로 올라가지 않고 곧장 2봉을 향하는 산객들이 더러 있는데, 갈림길에서 1봉 정상까지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귀찮더라도 가 보는 게 좋다. 더욱이 1봉에서 바라보는 2봉의 모습은 참 예쁘다. 그런데 1봉 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올라가다 겁이 나서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친절한 남자 등산객 덕분에 겨우 올라가 보긴 했지만 로프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위험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못 본 척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이 먼저 손길을 내민다. 권력에 대한 집착, 물질을 향한 지나친 욕심 및 이기적 욕망 등으로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 입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모두 벽이라고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사람은 모두 문이다

우리들이 몸부림쳐서라도

열고 들어가야 할

사람은 모두 찬란한 문이다.

 

- 김준태의 '사람'

 

바위에서 내려오자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각지 못한 개를 만나서 반가웠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단비이다. 몸집이 작고 귀엽게 생겼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 가운데 '개'로 인해 맺어진 인연이 많을 정도로 나는 개를 좋아한다. 단비 사진을 힘들게 몇 장 찍고 갈림길로 다시 내려갔다.

 

1봉에서 아스라이 보이던 2봉의 철계단을 오르면서 1봉을 되돌아보니 바다와 어우러져 경치가 좋고 웅장한 맛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떤 여자 아이가 갑자기 엉엉 울어 댔다. 힘들어서 절로 터져 나온 울음소리였다. 한때 삶이 너무 외로워서 그 아이처럼 소리 내서 울던 내 젊은 모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팔봉산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팔봉산은 본디 아홉 봉우리인데 구봉산이라 부르기에는 멋쩍었는지 가장 작은 봉을 빼 버렸다 한다. 그래서 해마다 12월 말이면 제외된 한 봉우리가 서러워서 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참 흥미로운 전설이다. 그런데 유독 12월에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팔봉산은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아서 그런지 전혀 낮은 산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산행의 색다른 재미가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것 같다. 팔봉산 정상은 3봉이다. 3봉으로 가는 길에는 통천문과 흡사한 바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한쪽으로 비켜서다 머리가 바위에 직통으로 받혔다. 머리가 얼얼해 정말 박터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철계단이 계속 이어져 있다. 험한 바위 사이로 나 있는 마지막 철계단을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팔봉산 정상인 3봉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은 쌍봉이다. 두 곳 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려 조망을 즐길 수가 없었다.
 

나는 3봉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가 4봉을 향해 걸어갔다. 4봉에 이른 시간은 오후 1시 15분께. 그곳에서 반가운 단비를 또 만났다. 4봉 내리막에는 기다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5봉부터는 다소 싱겁고 밋밋한 산행이라 되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봉우리마다 표지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때부터는 어디가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대부분 산객들도 굳이 알려고 애써지도 않는 눈치이다. 그저 무심히 걸으며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어송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20분께. 올해는 개인 사정으로 진달래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 팔봉산 산행 길에서 마치 깜짝 선물처럼 연분홍빛 진달래들을 실컷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현지 대중교통) 서산버스터미널에서 팔봉면 양길리행 시내버스 이용 30분소요, 팔봉산 입구에서 하차.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 →32번 국도 →서산 →어송리 →팔봉면사무소 →팔봉산
경부고속도로: 천안 I.C. →아산 →예산 →해미 →서산 →어송리 →팔봉면사무소 →팔봉산




태그:#팔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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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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