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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롄에 도착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국 다롄에 도착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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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개혁·개방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을 평가한다. 이것은 덩샤오핑이 제기한 개혁·개방정책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조선은 이제 고난의 행군을 끝마치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선은 자국의 상황에 근거해 조선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중국은 자국의 실제에서 출발해 중국특색을 가진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2000년 5월 29일 베이징에서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중에)

"특히 우리는 이번에 지난 19세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조계지로, 세력권 쟁탈전에 무참히 뜯기고 짓밟혔던 대련(다롄)과 천진(톈진)이 오늘은 세기적 낙후성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천지개벽을 이룩한 참신한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김 위원장, 2010년 5월 5일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주석과 연회에서 나눈 대화)

1983년 6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선전·조직담당 비서 시절 상하이를 방문해 "중국은 수정주의"라고 비판했던 김정일 위원장, 17년 뒤인 2000년 5월 방중에서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옳았다"고 인정하게 된다. 그 다음해인 2001년 1월 15일 당시 방중해 상하이를 방문한 그는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이번 방중에서는 중국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개발을 위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진흥계획'(동북노후공업지역진흥계획)의 성과를 인정하고 나섰다. '천지개벽'론을 다시 꺼내면서 말이다.

톈진을 같이 거론했지만, 방중과정에서 한 발언과 행적을 보면 그는 동북진흥계획의 한 축이자, 위치상 북-중 교역에서 머리 역할을 맡고 있는 다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다롄에서 1박을 하기도 한 그는 연회에서 후 주석에게 "동북지방을 오래 전부터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도 김 위원장의 다롄 방문을 중요하게 다뤘다. 다롄 내 방문지를 상세하게 전하는 한편, "대련시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당과 정부가 제시한 동북진흥전략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는 그의 발언도 보도했다.

"김 위원장, 중국의 동북진흥계획 수용한 것"

정창현 <민족21> 대표는 "김 위원장이 동북진흥계획의 성과를 인정한 것은, 그가 (2000년) 장쩌민 주석에게 중국의 개혁개방을 인정했던 것과 버금가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 이유를 "북한의 김영일 노동당 국제부장이 지난 2월에  동북지역을 방문한 것은 중국이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자신들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이를 수용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의 하나가 동북진흥계획에 대한 협력을 고리로 한 '북중경협 확대'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의 동북진흥계획
 중국의 동북진흥계획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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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김 위원장은 후 주석과의 회담에서 "압록강대교(신의주-단둥간) 신건설 공사는 앞으로 조중 우호협력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며 "윈윈 원칙에 따라 북한은 중국 기업이 북한에 와서 투자하고, 중조의 실질적인 협력의 빈도와 수준을 적극 높이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압록강 대교'건설이 '다리 건설을 통한 물류확대'수준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후 주석의 '5가지 건의'중 세 번째인 '경협 심화'에 대한 답변으로 보인다.

김정일 "북한에 투자하라"... 원자바오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 소개하겠다"

중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앞으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지지할 것이며 북한에 대해 중국의 개혁개방의 경험을 소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북 무역협력의 잠재력은 매우 크며 쌍방이 공동 노력과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변경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을 가속화해 새로운 합작 영역과 합작 방식을 찾아 양국 인민의 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합작 프로젝트', '변경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의 핵심 사업은, 압록강변에서는 '신압록강 대교' 건설, 두만강쪽에서는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사업'과 연결되는 나진항·청진항 개발, 나진-훈춘간 고속도로 건설 등이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압록강의 황금평·위화도·비단섬 개발사업이 힘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원 총리는 지난 2003년에 동북3성 개발주장을 이끌었고, 현재 이를 위한 영도소조 조장을 맡아 직접 관장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매체들은 원 총리의 이 발언을 "(원 총리가) 현재 중국의 경제발전 정형에 대해서 소개해드렸다"고만 전했다. 또 후진타오 주석의 5개항 건의도 싣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2000년에 중국의 개혁개방을 인정하면서도 '조선식 사회주의'를 강조했던 것처럼, 개혁개방 흐름이나 중국에 예속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인다.

양측의 경협이 '심화확대'될 것이라는 징후는 김 위원장의 방중과 동시에 나타났었다. 중국이 북한을 포함해 위안화 무역 결제 지역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결정하자, 북한과 이뤄지는 변경무역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중단시켰다.

그런데 공교롭게 김 위원장이 중국에 들어간 지난 3일, 중국은 이를 철회했다. 북한이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북3성과의 거래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달러 대신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조치가 '김정일 방중'에 대한 선물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북-중 관계, 유착수준 넘어 국경선 자체가 의미 없어질 수도"

7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태운 차량 행렬이 중국 단둥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단둥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고 있다.
 7일 오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태운 차량 행렬이 중국 단둥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단둥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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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중 경협은 어떻게 진행될까. 중국의 한 북한경제전문가는 "중국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들로서는 환호성을 지를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북한의 동북진흥계획 참여를 공식화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했고, 위안화 결제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면서 "이전에 남한에서 그랬듯이 중국에서도 대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대가로 중국에 무엇을 줄수 있을까.  나진항 같은 동해쪽 출구와 자원이 있다.

그는 "헤이룽장성 무단장시에서 다롄까지 연결되는 동변도철도가 완공돼 그 안에 포함되는 통상구들과 북한의 맞은편 도시들이 연결되면 양국관계는 유착수준을 넘어 국경선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면서 "중국이 북한의 자원을 이용하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중국으로서는 북한과는 조금 더 이야기하면 되고 앞으로는 러시아와 조율하는 게 중요한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

남한이 이런 상황에 끼어들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남북경협이 축소되면서 이같은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다. 남쪽길이 막힌 북한이 갈 길은 북쪽밖에 없기 때문이다.


태그:#김정일 방중, #후진타오, #원자바오, #동북진흥계획, #다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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