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봉화를 적신 내성천은 예천에 이르면 제법 강의 모습을 합니다. 봉화 내성천이 청년이라면 예천 내성천은 성년입니다. 내성천이 낙동강 원줄기와 몸을 섞기 전, 마지막으로 걸작을 빚어 놓았습니다. 예천 의성포입니다.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참 아름답습니다
▲ 의성포 전경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강물이 참 아름답습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태백, 청량산을 지나온 낙동강 원줄기는 안동에서 반변천과 합류하여 더 큰물이 되고 예천 삼강나루터 앞에서 내성천을 만나 본격적인 낙동강이 됩니다. 낙동강 원줄기는 내성천을 만나기 직전에 하회라는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낙동강 본류에 하회마을이 있다면 내성천엔 의성포가 있습니다. 하회, 의성포 모두 마을을 물이 휘돌아 흐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봉화를 흐르는 내성천은 아직 청년입니다
▲ 봉화를 흐르는 내성천 봉화를 흐르는 내성천은 아직 청년입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마을건너편 비룡산에 회룡대가 있습니다. 의성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지요. 의성대가 아닌 회룡대라 이름 붙여진 건 의성포가 지금은 회룡포라 불리기 때문이지요. 많이들 예천에 있는 의성포가 의성에 있는 걸로 착각하여서 회룡포라 하였다 하는데 이게 맞다면 이제는 제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룡포가 이름은 멋있게 들리지만 왠지 관광용 이름 같고 새로 지은 건물이나 다리에 어울릴 듯한 이름 같아서 의성포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예천을 흐르는 내성천은 이제 성년입니다
▲ 예천을 흐르는 내성천 예천을 흐르는 내성천은 이제 성년입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회룡대에 올라 봅니다.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물이 참 아름답습니다. 반듯하게 직선으로 흐르는 물은 정이 없어 보입니다. 내주기보다는 제 갈 길을 서둘러 가 버려 정 붙일 여유가 없습니다. 굽은 강은 우리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연에 순응한 결과이지요. 강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은 산이 막히면 돌아가고 산은 강을 넘지 않습니다. 강과 산이 서로 타협합니다. 산은 기꺼이 제 몸을 내줍니다. 일부는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강변 백사장을 만듭니다. 산을 깎아 반듯한 물길을 낸다 하여 강이 그 물길을 택할까요? 강물은 타협하여 만들어진 물길을 마다하고 인위적인 물길을 흐르려 하지 않을 겁니다. 강제로 흐르게 한들 결국 탈이 날 겁니다.

의성포는 강의 쉼터입니다. 처음 태어나서 쉼 없이 달려와 더 큰 물이 되기 전에 힘을 비축하는 곳입니다. 급하게 달려가지 않고 크게 굽이져 흐르면서 다음을 기다립니다. 마을사람들이 정을 붙일 여유를 줍니다. 마을사람들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느리게 느리게 나아갈 뿐 완전히 멈추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쉴 따름입니다.  

하회마을을 휘돌아 가는 물이 참 아름답습니다
▲ 하회마을 곁을 흐르는 낙동강 하회마을을 휘돌아 가는 물이 참 아름답습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강물은 절대 뒷물이 앞서지 않습니다. 앞물이 가고나서야 뒷물이 따라가지요. 뒷물이 앞물을 앞지르면 더 이상 강이 아닙니다. 호수이지요. 댐이 그렇게 만듭니다. 앞물이 먼저 왔다 뒷물에 밀리게 될지 모릅니다.

댐에 갇힌 물은 먼저 가겠다고 다툽니다. 평화가 깨지게 됩니다. 의성포를 흐르는 물은 영주댐이 생기면 다툼에서 이긴 물이 먼저 흐르게 됩니다. 이 물은 더 이상 공손하게 흐르지 않을 겁니다. 본색을 드러내지요. 고운 백사장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평화롭게 노닐던 물고기도 해치게 될지 모릅니다.

강은 산이 막히면 돌아가고 산은 강을 넘지 않습니다.
▲ 의성포 마을 곁을 흐르는 내성천 강은 산이 막히면 돌아가고 산은 강을 넘지 않습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강에 보를 설치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보로 인해 자연스러운 물 흐름이 깨지게 되고 뒷물이 앞물이 되어 평화가 깨지게 됩니다. 이 물은 순한 물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이긴 물이지요. 아주 강한 놈입니다. 이 물은 고운 우리산하를 해칠지 모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는 말입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으면서 낮은 곳에 머뭅니다. 물은 낮은 곳에 기꺼이 다가가 그 곳에 머물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낮은 곳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을 말합니다. 낮은 곳이 있으면 거기로 향하고 그 낮은 곳을 채운 후 넘칠 때 다시 흘러갑니다.

산은 기꺼이 제 몸을 내줘 일부는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백사장이 됩니다. 의성포 백사장은 해변 백사장과 같이 넓습니다
▲ 의성포 백사장 산은 기꺼이 제 몸을 내줘 일부는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백사장이 됩니다. 의성포 백사장은 해변 백사장과 같이 넓습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낮은 곳은 후미진 곳, 소외되고 핍박받는 곳을 말하고 사람으로 따지면 소외된 자, 핍박받는 자, 경쟁에서 뒤쳐진 자, 약한 자들을 말합니다. 물은 이런 곳,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길 주저하지 않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강물처럼'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 것 같습니다. 강연 때나 방명록에 이 말을 몇번이나 사용하였지요. 문재인 실장은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특권·반칙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강물처럼'에 이런 정신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지요.

마을을 굽이 감돌아 흐르는 강은 마을사람들이 정을 붙일 여유를 줍니다. 마을사람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 의성포 정경 마을을 굽이 감돌아 흐르는 강은 마을사람들이 정을 붙일 여유를 줍니다. 마을사람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강물은 앞물이 뒷물을 비겁하게 앞서려도 하지 않습니다. 특권과 반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강은 특권과 반칙없는 사회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묵묵히 순응만 하지 않습니다. 강물은 다시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어떠한 곤경이 있더라도 바다로 향하여 갑니다. 결국 가장 낮은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강물은 결코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지요.

강물은 낮은 곳을 채우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갑니다.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그들을  보듬고 나아가려는 정신이 '강물처럼'에 담겨 있습니다.

물은 뒷물이 앞물을 앞서지 않아 다투지 않으면서 낮은 곳에 머뭅니다
▲ 예천을 흐르는 내성천 물은 뒷물이 앞물을 앞서지 않아 다투지 않으면서 낮은 곳에 머뭅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낙동강에 보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보를 설치하면 앞물과 뒷물이 섞여 앞물이 뒷물이 되고 뒷물이 앞물이 됩니다. 특권과 반칙이 존재하게 되지요. 강의 밑바닥을 파내기도 합니다. 낮은 곳을 강제로 없애는 것이지요. 낮은 곳은 파내기보다는 채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의성포를 떠나 생각에 지쳐 삼강주막에 들렀습니다. 예전에는 큰 강을 건너 한양으로 향하기 전에 하룻밤 묵은 곳입니다. 강둑에 올라 내성천과 낙동강 두 물이 합류하여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물은 두 물줄기가 연대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신영복 교수는 하방지향 연대라 했지요. 물도 이제 제법 성숙해졌습니다. 소리없이 유유히 흐릅니다.

내성천과 낙동강원줄기가 여기서 만나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 삼강나루터 내성천과 낙동강원줄기가 여기서 만나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 김정봉

관련사진보기


이 물은 상주(尙州)에서 부닥칠 운명도 모르고 숨죽이고 흐릅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 연대를 하였다 하나 다가올 시련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얼마 안 가서 굴착기에 몸을 찢기고 보에 목이 졸릴 겁니다. 상처를 입게 되면 물도 성이 나서 반칙을 하게 되겠지요. 연대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온갖 역경에도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태그:#의성포, #회룡대, #삼강나루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