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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다. 의미있는 만남으로 의미있는 모임을 만든 이들을 만났다. 일본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이들, 생명과 평화를 일구며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들이 '풍물패 기풍'을 만든 사연을 들어보았다.
 

"덩 따다 쿵 떡 쿵~" "덩 따다 쿵 떡 쿵~" 

 

흥겨운 가락 소리가 들려온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미아역 주변에 있는 한 지하 연습실. 늦은 밤 9시 꽹과리, 장구, 북, 징 소리가 정겹게 울려 퍼진다.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쪽 구석엔 먹다 남은 떡볶이와 음료들이 보였다. 한참 수다를 떨고, 연습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습실 한 가운데선 풍물강사님이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직장인과 학생들로 구성된 풍물패 '기풍(기분 좋은 바람, 혹은 기독청년아카데미 풍물패의 약칭)'이다. 김재중(28), 남진희(28), 송향미(36), 서병이(30), 윤지은(30), 안기인(37), 이은선(35), 김보형(26) ,김진경(26), 이인홍(중학교 3학년, 16), 이수현(30) 등 직장인 청년들이 주축이 된 풍물패다.

 

이들은 김지목(34) 선생님의 지도로 풍물을 배우고 있었다. 2년 가까이 배워서인지 모두가 능숙한 솜씨로 흥에 겨워 따라하고 있다. 이 모임의 시작은 2년 전인 2008년 청년아카데미에서 주최한 <한일생명평화역사기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만난 슬픈 우리 역사

 

'생명평화'의 관점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살펴본 일본기행이었다. 이들은 고난의 현장인 석탄박물관, 영생원, 오다야마 묘지 등을 방문했다. 탄광에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역을 하며 죽어갔던 조선인들의 유골을 안치하고 있는 곳이다.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에서는 이름도 없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조선인들을 만나고 왔다. 대부분의 조선인 시신은 통계에도 포함이 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방치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다만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재일동포의 노력과 역사를 진실로 성찰해온 양심적인 일본인의 투쟁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추모공간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고난과 질곡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패권적이고 파괴적인 역사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감사한 것은 이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과 오사카 민족학교에서 만난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2009년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의 스치다 다카시교수와 일행이 서울 수유리 아름다운마을을 다녀간 바 있다. 그때 하셨던 말씀이 이렇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건강을 잃어가고 먹는 것의 균형을 잃고 있다."

"농사는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생명의 양식을 내는 일, 농업보다 농업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화 산업화를 우리보다 앞서 겪은 일본에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고민해왔다. 그리고 40여년 가까이 그에 맞는 실천을 해왔다. 이들과 만나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그 동안 일구어온 소중한 가치를 전수 받았다고 한다.

 

 

민족학교 동포들에게 한수 배우다

 

또 오사카에 있는 민족학교에 방문했다. 일본에는 '우리학교'라는 이름의 민족학교가 있다. 남측도 북측도 아닌 조선인의 신분으로 우리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일본 정부와 거친 마찰도 있어 폐교까지 된 적도 있고, 여전히 일본정부로부터 정식 학교로 인정을 받지 못해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민족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동포들의 염원으로 1945년 '국어 강습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무리들을 만나면서 역사를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그들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송향미)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기란 녹록지 않다. 이들은 차별과 멸시를 받고 지난 세월을 인내하며, 희망을 일구며 살아왔다. 일본 속에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그들이 이곳에 온 역사를 알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동포들과 고민하고 희망을 하나하나 쌓아 왔던 것이다.

 

특별히 오사카 민족학교에서 청년 풍물패 '마당'의 공연을 보고, 충격과 감격을 받았다. 풍물, 판소리, 민요 등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다. 어떤 분은 3년간 한국에서 우리 가락을 배워 온 분도 있다고 한다.

 

재일동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뭔가 어색하겠지 생각했지만, 신명나는 연주를 들으며, 정확한 한국 발음의 노래를 들으며,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정작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박혔다. '우리도 한번 우리의 것을 사랑해보자' 해서 결성된 풍물패가 바로 '기풍'이다.

 

 

안내를 맡았던 김숙희 선생님께서 풍물을 가르쳐 주셔서 모임을 시작했고, 현재는 김 선생님이 소개해준 김지묵 선생님에게 풍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민요와 가락을 배우고, 이론도 배우고 시험도 보고, 좋은 강의도 함께 듣고, 모꼬지도 다녀오면서, 회원들끼리 친해지고, 우리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모임을 지도하고 있는 김 선생님은 "풍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감동을 받아 풍물패를 만들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기를 찾아서 오는 주부들, 학생들이 많고, 풍물을 재밌게 배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은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흥미와 취미를 넘어선 열정들이 이들에게 느껴진다고 했다.

 

흥겨운 풍물 익히니 역사의식 자란다

 

모임을 하고 있는 이들도 하나같이 유익한 점을 쏟아 냈다.

 

"배울수록 어렵다. 진짜 소리와 가짜 소리를 알겠다. 정말 흥을 느끼면서 하고 싶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시원하게 풀린다. 틀려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유가 있다."(남진희)

 

"일일찻집이나, 연합행사 같은 모임에 불러주면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실력이 부쩍 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풍물을 치면 어깨가 저절로 들썩이며 신이 난다."(김재중)

 

 

2010년 한일생명평화역사기행 일정

 

일정 :  7.24~31(7박 8일)

주최 : 기독청년아카데미

참가문의 : 02-764-4116, 010-3277-8169

참가신청 : lordyear.cyworld.com

              신청게시판

 

이들의 소망이 하나 있는데, 다시 일본기행을 가게 되면, 오사카 민족학교 분들과 합동 풍물 마당을 여는 것이다.

 

30대 전후로 취업과 관련된 공부 이외에 다른 활동을 생각하기 힘들 텐데도, 이토록 열정적으로 우리 것을 알아가는 이들이 있어 반가웠다. 한국과 일본에서 생명과 평화의 가락이 울려 퍼지는 날을 기다려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수동 마을신문(www.welife.org)에서 실렸습니다. 


태그:#한일생명평화역사기행, #기풍, #일본기행, #풍물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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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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