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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뒤 히딩크는 영웅이 되었다. '대한민국 명예 국민증',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았고, 체육훈장 청룡장까지 받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의 큰 영예를 얻었음에 틀림없다.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 표지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 참좋은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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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 불릴 정도의 눈부신 업적을 남긴 감독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했던 영예란 생각도 들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본다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히딩크는 정당한 연봉을 받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축구 감독일 뿐이었다. 

구한말 기울어가는 한국에 들어와 한국을 위해 애썼던 외국인들도 있다.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베델, 황제의 밀사 헐버트…. 이들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우는 한국인들의 치열한 투쟁에 주목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한국인들의 투쟁을 지원했다. 이들은 고액의 연봉이 아닌 정치적 압박을 당해야 했다. 이들의 활동이 불편했던 일본의 항의에 따른 본국 정부의 정치적 대응의 결과였다.

미국인 헐버트, 한국인 이완용

나는 이완용을 1886년 육영공원에서 선생과 제자로 만난 이래 비교적 가깝게 지냈다. 그 당시 그는 스무 살 또는 스물한 살로 기억된다. 이완용은 40여 명의 학생 중 월등하게 똑똑한 학생이었다. 영어를 매우 빨리 습득했으며 1년 만에 상당한 수준의 회화를 할 수 있었다. …(중략)… 나는 그를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완용은 기회주의적인 인물로 변하고 있었으며 급기야는 친일파로 변신하였고, 일본은 이완용을 이용하여 고종 황제를 퇴위시켰다. 한국인들은 그를 역적으로 선언하면서 살해하려 했으며 그의 집은 불태워졌다. (책 속에서)

미국인 헐버트는 육영공원에서 이완용을 가르쳤다. 헐버트는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 문화의 가치를 인정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눈에 띄게 우수했던 이완용은 남보다 빠르게 외국어를 습득했던 촉망 받던 젊은이였다. 이완용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조국을 가차 없이 버렸다. 이런 이유로 헐버트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1886년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육영공원의 교사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로, 출판인으로, 한글 연구가로, 한국 YMCA 운동의 창립자로, 아리랑의 세계화에 기여한 인물로,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문을 탄생시킨 주역으로, 기울어가는 대한제국 황실 편에 서서 일제의 침략 정책에 저항했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헐버트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기울어가는 국권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 채 온갖 세력의 틈새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고종이 절대적으로 신임했던 인물. 일본 낭인의 칼에 왕비가 시해 당한 뒤 친일 세력에 포위되어 언제 죽을지도 모를 공포 속에서 의지하려 했던 외국인 중의 한 사람.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견했던 밀사. 일제에 의해 강탈당한 고종의 내탕금을 되찾으려 동분서주했던 사람.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읽으며 헐버트가 진정 사랑했던 게 무엇일까 되새겨보았다. 고종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일제에 의해 몰락해가는 왕실 편에 서서 고종을 도우려 했던 인물은 아니었을까. 이 시기 고종이 지키려 했던 게 보국안민의 명분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을미의병 해산 명령을 내린 인물이 고종이었고, 독립협회 탄압 명령을 내린 이 또한 고종이었다. 헐버트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헐버트에 대한 좀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축구 감독 히딩크가 필요 이상의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되듯이, 기독교 선교사였던 헐버트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귀감으로 사실과 다르게 과대포장 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될 일이다. 그와 친분을 쌓았던 서재필이나 이승만의 행적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 김동진/참좋은친구/2010.6/18,800원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참좋은친구(2010)


태그:#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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