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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거짓말이었다.

 

정부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반대하는 이유 말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두 법안의 개정안이 통과되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한-EU FTA)에 위배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한-EU FTA 협정문과 WTO GATS 양허안을 살펴본 결과, 상생법과 유통법으로 인한 분쟁이 일어날 소지는 적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EU FTA와 상생법' 토론회에서 "실효성이 없는 상생법을 두고 큰 문제라고 하는 것은 대국민 협박"이라며 "김종훈 본부장은 거짓말을 그만두라"고 비판했다.

 

최근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이 피자가게라며 둘러대다가 기습 입점을 하는 등 기업형 슈퍼마켓이 편법을 일삼아 골목상권을 초토화하고 있다. 중소상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거짓말 #1] 상생법과 유통법은 WTO 협정에 위배된다?

 

 

김재균 민주당 의원 : SSM 규제법안(상생법과 유통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김종훈) 본부장이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처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WTO에 가입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깨끗하게 개방했기 때문에 가맹점을 사업조정대상에 포함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했지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 그렇습니다.

김재균 : 이 주장이 사실입니까?

김종훈 : 그렇습니다.

김재균 : 이 주장은 거짓이에요. 1994년 WTO GATS 양허안을 보면, (중략) 식품소매의 경우 개방 분야가 과일, 야채, 생선 등에 한정돼 있어요. 100% 개방됐다는 발언은 거짓이에요. 왜 거짓말하세요!

김종훈 : 거짓말이 있으면 책임지겠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김재균 의원과 김종훈 본부장의 질의응답을 갈무리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김 본부장의 말은 과장돼 있고,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1994년 WTO GATS 양허안에 따르면, '상업적 주재(해외기업의 국내 투자)'의 시장 진입 제한 항목에서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식품소매 개방분야 중에서 유제품, 육류 제품, 빵, 캔 음료 등은 개방이 제한돼 있다.

 

심영규 동아대 법학과 교수는 "WTO는 합리적인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중소상인들의 피해가 큰 상황에서 사업조정제도 확대 등과 같은 합리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WTO가 말한 재량권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EU의 WTO GATS 양허안을 보면 한국보다 더 개방 폭이 좁다. 이탈리아는 "신규 백화점이나 아울렛의 설립은 경제수요심사를 받아야 하며, 특별히 역사적이고 예술적인 관심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인가가 거부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는 대형 백화점에 대해, 덴마크는 신규백화점에 대해 경제수요심사를 하도록 했다.

 

심 교수는 또한 "통상교섭본부는 상생법과 유통법이 사업영역의 양적 제한을 금지하는 GATS 16조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며 "유통법 개정안(전통상업보존지역과 인근 500m 내 기업형 슈퍼마켓 제한)은 국내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일정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며, 상생법 개정안(가맹점을 사업조정제도 대상으로 확대)의 경우 이미 직영점이 제한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맹점을 제외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거짓말 #2] FTA 체결한 유럽연합과 통상분쟁이 생기니 SSM 규제 안 된다?

 

 

통상교섭본부는 상생법과 유통법이 WTO GATS 뿐 아니라, 한-EU FTA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EU FTA 협정문에 따르면, 한국은 중고자동차, 가스연료, 전자상거래를 통한 주류 판매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비스에 대해 아무런 유보나 조건 없이 EU에 시장을 개방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상생법이 한-EU FTA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경제와 중소기업의 육성을 규정한 헌법 123조을 외면하고 골목상권이 초토화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해영 교수는 "그렇지 않다, 재협상을 할 수 있다"며 "이미 유럽의회는 한-EU FTA 협정문과 상충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이행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11월 23일로 예정된 유럽의회 본회의 최종 표결에서 통과될 세이프가드 이행 법안이 한-EU FTA와 상충될 경우, 재협상은 불가피하다. 이 교수는 "유럽의회처럼 우리도 먼저 상생법과 유통법을 통과시키고 추후에 EU와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승환 경희대 법학과 교수는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고 협상을 타결한 것은 잘못됐다"며 "WTO에 제소돼도 문제가 없을 개연성이 큰 만큼, 통상교섭본부는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생법과 유통법이 통상교섭본부가 말하는 것처럼, 문제가 될 만큼 큰 효력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황희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사업조정제도는 중소기업이 신청을 하면 그에 대한 심의를 내린 다음 권고를 하는 것으로 강제력이나 효력이 없다"며 "김종훈 본부장은 상생법이 통과되면 큰일 나는 것처럼 겁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9년 7월 이후 1년간 178건의 사업조정 신청이 있었지만, 조정권고가 나온 것은 단 5건에 불과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고, 중소상인들의 마지막 희망인 상생법과 유통법 동시 처리를 막는 김종훈 본부장은 해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기업형 슈퍼마켓, #SSM, #한-EU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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