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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우리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면서 정의나 공정과 같은 말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사회가 부정의하고 불공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정작 정의나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가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정의(定義)가 없는 상태다.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이해관계, 존재, 시각에 따라 정의와 공정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정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이 없는 이런 카오스(chaos) 상태에서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하고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한권 나왔다. 토지+자유 연구소의 남기업 소장이 쓴 <공정국가>(남기업 저, 개마고원 펴냄)가 바로 그 책이다.

'정의'란 반칙 없는 경쟁과정 보장하는 것

공정국가는 우리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분명한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다.
▲ 토지+자유 연구소 남기업 소장이 쓴 공정국가 공정국가는 우리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한 분명한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다.
ⓒ 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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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가 선뜻 동의할 수 있는 공정(公正)의 개념을 제시한다. 저자는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달리기 경주를 예로 들면서, '공정성'이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출발과 반칙 없는 경쟁과정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달리기를 할 때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서 동시에 출발해야 하며, 달리면서 반칙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평등한 출발과 반칙 없는 경쟁'이라는 페어 게임(fair game)의 비유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우리 한국사회라고 꼬집는다. 즉 우리사회에서는 성공하려면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경쟁 과정에서도 반칙과 특권, 불로소득이 난무하는 매우 불공정한 사회가 바로 우리사회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가 비유로 든 공정한 달리기 경주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공리나 자연법과도 같은 것이지만, 사실 많은 정의론자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로버트 노직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경쟁 과정에 반칙이 없다면 그 결과는 공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직은 열악한 출발 상황이 양호한 출발 조건을 갖춘 사람이 가해한 결과가 아니라면 이는 불공정한 것이 아니며, 출발을 평등하게 하려면 결국 경쟁에서 노력하여 앞서간 사람들의 부를 걷어서 재분배를 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비효율과 불공정을 낳는다는 것이다.

'공정성' 두고 의견 엇갈리는 정의론자들... 누구의 말이 옳나?

반면 존 롤즈는 사회의 최소 수혜자와 약자를 위한 분배의 불평등성을 인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롤즈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거나 좋은 재능을 타고난 것은 엄밀히 말해 개인이 노력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공적 자산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롤즈는 출발을 평등하게 하려면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노직은 평등한 출발이라는 이상적인 상황은 불완전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며 억지로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와 효율을 침해하는 불공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롤즈와 노직 중에 과연 누구의 말이 더 옳은 것일까?

저자는 일단 평등한 출발을 인정하면서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최대한 평등한 출발을 보장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땀 흘려 노력한 것에 대한 재분배가 아닌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충당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평등한 출발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공정국가의 3원칙으로 기회균등의 원칙(제1원칙: 사회제도), 자유경쟁의 원칙(제2원칙: 경제제도), 불로소득환수의 원칙(제3원칙: 조세제도)을 제시한다. 즉 평등한 출발이라는 기회균등과 반칙 없는 경쟁이라는 자유경쟁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지불로소득', 평등한 출발 위한 재원으로 써야

불로소득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소득을 가로챈 것이므로 반칙 중의 반칙이기 때문에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은 반칙 없는 경쟁 즉 자유 경쟁의 원칙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평등한 출발을 보장해주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회균등의 원칙을 보장해 주는 것이 된다.

불로소득 환수는 자유와 평등을 결합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노직과 롤즈의 주장을 결합하여 화해시킨다. 저자는 평등한 출발과 반칙 없는 경쟁, 불로소득 환수는 참된 보수와 진보라면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공정성은 이념통합의 가치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공정국가의 3원칙은 양심과 상식에 비추어보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공리와 자연법에 가까워 보인다.

저자는 불로소득 중에서도 특히 토지불로소득에 주목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많은 불로소득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악성인 동시에 최우선적으로 환수해야 하는 불로소득은 바로 토지불로소득이라는 것이다. 토지불로소득은 긍정적인 기여는 전혀 없고 오로지 폐해만 일으킨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토지불로소득은 평등한 출발을 보장해주기 위한 재원으로 제격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세간의 유행어처럼, 우리사회는 토지불로소득을 노린 각종 사회악과 반칙, 특권이 난무하는 정글사회에 가깝다. 이런 사회는 저자가 말하는 공정국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불로소득으로 인해 일어나는 온갖 부동산·경제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토지불로소득은 환수하고 노력소득은 보장해주면 경제도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좌와 우'를 통합하는 국가모델이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사회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여러 국가모델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동시에 북한의 국가모델도 평가하면서 북한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사회에서 대안적 국가모델로 회자되고 있는 공동체자유주의국가, 사회투자국가, 신진보주의국가, 복지국가, 사회국가 모델들을 비교평가하면서 이 국가모델들이 가진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정국가가 더 나은 대안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기존의 국가모델들은 '국가 vs 시장'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공정국가는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을 편들지 않고 공정성이 유지되는 것이 목표이며, 그렇게 했을 때 사회가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운영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기존 대안들은 국가와 시장 중에서 한 쪽이 다른 쪽을 얼마나 대체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공정국가는 국가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시장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정국가 모델이 국가와 시장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음새 없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통째로 짠 옷'이라고 설명한다.

<공정국가>는 기존에 대안으로 제시된 여러 국가모델들을 잘 정리해놓고 있어 여러 국가모델들을 살펴보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여러 국가모델들을 한눈에 파악하면서 가장 나은 모델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사회의 여러 불평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과 통계들도 제공하고 있어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써도 매우 유용하다.

북한도 개혁할 수 있는 '공정국가 모델'

한편 저자는 공정국가 모델을 남한에만 적용하는데서 머물지 않고 이를 북한에도 적용한다. 저자는 북한 경제침체의 근본 원인을 '불공정성'이라고 지목하면서 북한은 매우 불공정한 국가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공정성의 잣대로 북한의 비효율과 낭비의 메커니즘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저자는 북한에도 불로소득은 환수하고 노력소득은 보장하는 방향의 개혁을 주문하면서, 토지에 대해서는 남한처럼 토지사유제를 도입하지 말고 공공토지임대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노동을 투입해 만들어낸 자본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할 것도 권고한다. 이렇게 되면 남한과 북한은 불로소득은 환수하고 노력소득은 보장하는 공정국가 모델로 자연스럽게 수렴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토지+자유 연구소 남기업 소장이 쓴 공정국가는 "공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제시하면서, 우리 남한 사회와 북한이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해 올바른 방향과 나침반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독자라면 공정국가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고영근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정국가 -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모델

남기업 지음, 개마고원(2010)


태그:#공정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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