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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토록 아끼는 한지장미꽃입니다. 장미꽃 향기가 나는 듯 하지 않나요?
 제가 그토록 아끼는 한지장미꽃입니다. 장미꽃 향기가 나는 듯 하지 않나요?
ⓒ 유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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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분홍 한지 장미꽃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저토록 살폿하고 예쁠까? 결혼 전 나의 모습은 공부하는 이미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졌고 나 자신도 그것을 나의 원래 모습인양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한지 장미꽃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살아있는 것 같은 조화를 꼭 만들고만 싶어졌다. 그때부터 내가 사는 주변에 가장 장미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 내가 만든 꽃이 예쁘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장미꽃이 가장 예쁘게 피어있다는 집을 더 많이 찾아다녔다. 그렇게 살아있는 장미를 관찰하고 와서는 다시 만들고 있던 꽃을 붙잡고 마음 속으로 '시샘 전쟁'을 벌이곤 했다. 이것은 어쩌면 가장 평화로운 전쟁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 담임 선생님께 선물로 드려 담임 선생님 얼굴에 활짝 핀 미소를 보고 싶었다. 덤으로 "소희 어머님, 솜씨가 참 좋으시네요. 장미꽃이 너무 예뻐요"라는 소릴 듣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하지만 점점 꽃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게 되면서 학교 입학식, 졸업식,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 꽃을 만들어 팔게 되기에 까지 이르렀다. 생화와 달리 한지 장미꽃은 거친 철사를 가위로 자르고 종이나 주름지, 천, 비닐을 꽃으로 만들 때 일일이 손으로 자르는 작업을 끝도 없이 해내야해 손이 고장나지 않을 수 없었다.

꽃을 만드는 동안 나도 행복하고 꽃을 사가는 사람 또한 행복에 젖어 사가니 세상에 이처럼 좋은 직업도 없을 듯 하다. 꽃을 만들어 온지 15년 째 되다보니 2~3년 전부터 손가락들이 이상하게 굵어졌다. 마치 나무꾼의 손처럼 투박해졌다. 뿐만 아니라 왼쪽 둘째, 셋째 손가락 손톱근처의 마디들은 툭툭 튀어 나오기도 하고 가끔씩 쑤셔오기도 했다.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관절염이 생긴 것이다.

백옥같던 내 손이 나무꾼 손처럼 변한 사연

비닐노끈 장미꽃입니다. 디자인은 좀 다르지만 마포솜씨자랑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랍니다. 전국 녹색가게 명인전이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상을 받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광화문 대표로 명인전에도 참가하게 되는 행운도 얻었답니다. 대전 재활용품 학교 특강강사로 초청을 받아서 대전에 내려가 2시간정도 꽃 강의를 해주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비닐노끈 장미꽃입니다. 디자인은 좀 다르지만 마포솜씨자랑에서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랍니다. 전국 녹색가게 명인전이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되었는데 상을 받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광화문 대표로 명인전에도 참가하게 되는 행운도 얻었답니다. 대전 재활용품 학교 특강강사로 초청을 받아서 대전에 내려가 2시간정도 꽃 강의를 해주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 유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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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엔 미용사 일을 했으므로 콜드크림으로 손님들의 얼굴 마사지를 해드리거나 손 마사지, 발 마사지를 자주 해드리다 보니 나의 손도 겸사겸사 마사지를 자주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손은 유달리 예뻤었다. 손이 너무 굵지도 빼빼 마르지도 않은, 하얗고 적당히 통통한 예쁜 대한민국 여자의 표준형 손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수천 송이, 수만 송이도 넘는 꽃을 만들어 팔면서 손도 점차 변했다. 선물도 하고 팔기도 했던 꽃과 함께한 15년의 세월들… 다른 사람들은 졸업식, 입학식처럼 특별한 행사에만 꽃을 팔았지만, 나는 시간만 주어지면 1년 12개월 동안 꽃을 만들어 팔았으니 손도 화가 났나 보다. 손을 달래주지는 않고 부려만 먹어서 말이다. 꽃은 이호우님의 시처럼 바람결 따스한 햇살 속에 피어나는 것만이 아님을 나의 손을 통해 느낀다.

개화 (이호우)
꽃이 피네
한잎 한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찰흙과 우산대를 사용해서 만든 찰흙 안마기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은 작품입니다. 2010년 10월 서울시 리폼 경진대회에서 입선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찰흙과 우산대를 사용해서 만든 찰흙 안마기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은 작품입니다. 2010년 10월 서울시 리폼 경진대회에서 입선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 유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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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거칠게 변했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나리꽃, 백합, 카네이션, 무궁화, 해바라기, 카라꽃, 아프리카 봉선화, 진달래 등 재활용품으로 만들 수 있는 꽃과 다른 제품들을 끊임없이 연구해 만들어 파느라 나의 손은 전보다 더 바삐 이것저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날마다 길에 버려진 우산을 주워다가 분해해서 우산대와 철사는 꽃을 만들 때 철사로 쓰거나 찰흙으로 안마봉을 만들 때 쓰곤 한다. 

손가락이 아픈데도 꽃을 만드는 일은 왜 이리도 행복하고 즐거운지… 이것도 병이라면, 큰 직업병이라 본다. 내 직업으로 인해 생긴 아픔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오는 관절염이지만, 생각해 보면 손가락이 아파도 꽃을 만드는 일을 그만둘 수 없고, 꽃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 자체가 직업병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 귀한 손인만큼, 이제는 가끔씩 나의 손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면서 꽃을 만들어야겠다.

종이로 만든 장미꽃
 종이로 만든 장미꽃
ⓒ 유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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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직업병을 말하다'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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