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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한국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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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증폭사회 표지 .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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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정의는 마음이 초초하고 편하지 않은 상태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불안이란 단어를 입력하고 검색버튼을 누른다. 불안치료, 불안해소, 불안증 클리닉 등등 불안에 떨며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각종 치료법들이 난무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한 걸까?

일찍이 불안의 원인에 대해서 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철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불안으로 보기도 했고 유한한 삶에 대한 실존적 불안으로 보기도 했다. 또한 정신분석학에서는 심리상태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불안의 원인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에리히 프롬은 불안을 단순히 심리내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불안은 인간의 본성 및 본래적 성향과 점차 왜곡되는 사회‧문화적 조건이 갈등하면서 유발되는 현상이라고 보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불안을 유발하는 병리적 사회구조나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에리히 프롬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알랭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근대이전의 세계와 근대 이후의 세계를 비교했을 때 근대 이후 사람들의 불안이 더 커져왔음을 입증하고 있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 따르면 전통사회에서는 계급의 격차에 의해서 개인적 성취나 개인의 능력이 곧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내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개인적 성취나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이룩하는 자산이 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할수록 더욱 극대화되었고 미디어와 광고를 이러한 불안을 부추김으로서 부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에리히 프롬과 보통의 견해를 종합하여 볼 때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이 큰 사회는 병리적 사회이며 이는 개인에게 아주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태형은 <불안 증폭사회>에서 한국이 바로 이런 병리적 사회임을 지적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IMF이후 한국 사회는 질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변화가 좋은 것이어야 할 텐데 놀랍게도 그가 지적하는 변화는 그야말로 이렇게도 나쁠 수가 없다. IMF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들이 그 기간을 거치면서 깨달은 교훈에 있다. 그는 IMF가 한국인들에게 준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은 두 가지 뼈저린 교훈을 체득했다. 하나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너무나도 불확실하다는 신념이다."

이 교훈 때문에 그는 한국인들이 변했다고 한다.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정서적 불안을 수시로 겪는 사람들도 변화하였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누군가는 반론을 펼지도 모른다. IMF가 지나간 지 10여년이 지났고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어느 나라보다 그 위기를 잘 모면하였다고 말하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비록 아무리 충격적인 경험일지라도 잘만 치료하면 심리적 상처는 낫는 법이다. 만일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사회안전망을 빠르게 확충하고 무한경쟁 대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경제발전 노선을 잡았더라면 IMF사태가 준 상처는 아물었을지도 모른다. 즉, IMF위기에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사회가 보호해줄 수 있었다면, 또 그럼으로써 그들이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줄 수 있었다면 IMF사태는'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즉, 그는 단순히 IMF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IMF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며 그 뒤를 이은 정권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심리는 무엇인가?

이로 인해 그는 현재 한국인들의 심리를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읽다보면 한국인들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면서 그런 자신에게 자기혐오를 느끼고 때로는 무력감에 힘들어하면서 늘 외로워하는 존재들이다. 또한 한때의 쾌락으로 도피해버리는 도피형 인간이기도 하다.

사실 부정하고 싶은 진단이다. 그렇지 않다. 이기적이지 않고 자기혐오를 느끼지 않으며 건강하게 지내는 한국인들이 많다고 반박하고 싶은 심리진단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모든 단어들은 오늘날의 한국인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이기도 하다. 자살, 니트족, 캥거루 족, 엄친아, 엄친딸 등등 수많은 신조어들은 이러한 단어들이 가진 적합한 성질을 표현해주기에 충분하니까 말이다.

허나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는 결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병이다. 사회적 병을 치료하는 것은 병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다행스럽게도 사회적 병인을 의식화하는 것은 개인적인 병을 의식화하는 것보다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가 병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병든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다음은 기존의 우리가 중시 여겼던 가치들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돈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사회로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중심의 사회로 전환시켜 나가야 불안이 해소된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더 이상 돈으로 불안한 사람이 없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일, 신자유주의의 경쟁원리가 더 이상 사람들을 병들게 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예방하는 일, 정의가 시들시들해져서 죽지 않도록 만드는 일 등을 해야 한다. 나을 수 있는 방법은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한약을 먹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병리를 치료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불안들은 어느 정도 치료된단다. 적어도 개인이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것보다는 적은 돈이 드는 행위일 것이다.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뒤쳐질 것 같아서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시간을 쪼개 영어 학원을 등록하는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사실 자기계발의 욕구가 아니라 불안이다. 이 불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도 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든 세상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불안 증폭사회>의 책장을 펴야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수정후 게재됩니다.



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위즈덤하우스(2010)


태그:#불안증폭사회, #서평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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