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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지성이었던 후스는 대륙을 버리고 대만으로 강을 건넌  ‘궈허쭈쯔(過河卒子)’
▲ 민국 4대미남 중 하나였다는 후스 최고의 지성이었던 후스는 대륙을 버리고 대만으로 강을 건넌 ‘궈허쭈쯔(過河卒子)’
ⓒ 런민왕(人民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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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통(胡同, 골목)을 거닐다 보면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구경삼아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면 우리와 장기판도 약간 다르고 게임 방식도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장기판 가운데 '초하(楚河), 한계(漢界)' 라고 적힌 강이 흐른다. 중국 장기에서는 졸(卒)이 상대방의 기물을 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강을 넘어야 한다. 강을 넘은 졸을 '궈허쭈쯔(過河卒子)'라 하는데 목적을 위해 앞으로만 전진하는 사람이나 남을 위해 물러섬 없이 앞장서는 사람을 이를 때 이 말을 쓴다.

베이징대학교 최연소 교수가 되었던 중국현대문학의 개척자 후스(胡適)는 일기에서 스스로 이렇게 적고 있다.

"국가를 위하여 쟁신(諍臣, 임금의 잘못을 간언하는 신하)이 되고 정부를 위하여 쟁우(錚友, 잘못을 말해주는 친구)가 되고 '궈허쭈쯔'가 되어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겠다.(爲國家做一個錚臣,爲政府做一個錚友, 做了過河卒子,只能拼命向前)"

후스 스스로 장제스(蔣介石)의 잘못을 지적해 고쳐주는 쟁우이기를 자처하며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간 탓인지 그를 둘러싼 평가는 아직도 논쟁의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크게 보면 대륙과 대만에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데 봉건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인을 계몽하고 인습을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선구자적 지식인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권력에 빌붙어 아부한 주구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문학사에서만 보면 후스는 위대한 거목이다. 1910년 19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후스는 컬럼비아대학 중이던 1917년 1월 <신청년(新靑年)> 잡지에 <문학개량추의(文學改良芻議)>를 발표하여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을 문학작품에 쓰자는 '백화운동'을 이끌었으며 '팔불주의(八不主義)'를 통해 팔고문의 병폐를 신랄하게 지적하여 문학혁명, 나아가 5·4운동의 모태를 마련하였다. 또한 국학연구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여 <홍루몽(紅樓夢)> 연구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문학 분야에서는 혁명에 가까운 진보적 성향을 보인 데 반면 정치적으로 후스는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천두슈(陳獨秀), 리따자오(李大釗)와의 정치이념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점점 보수의 길을 걸었다.

후스는 1930년대부터 국민당노선에 동조하더니 1938년 장제스에 의해 주미대사에 임명되었다. 후스는 루즈벨트와의 협상을 통해 P-40전투기 100대를 지원받는 등 '미중상호원조조약'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1946년 귀국하여 베이징대학총장을 역임하고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954년 2월 대만 국민대회에서 총통 후보자로 선임하려 했으나 후스는 심장병을 핑계로 고사했으며 이후 어떤 정치적인 요구에 응하지 않고 문인으로서의 삶만 추구하고자 하였다.

후스는 중국을 좀먹는 오적(五敵)으로 가난, 질병, 우매함, 탐욕, 혼란을 뽑았다. 후스는 탐욕스런 야욕을 멀리하고 언론의 자유와 인권보장을 건의하는 문인으로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강을 건너서도 남을 위해 물러섬 없이 앞장섰던 '궈허쭈쯔(過河卒子)' 후스는 1962년 2월 24일, 중앙연구원에서 거행된 연회 도중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뒀다.

장제스는 성명을 발표하여 후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제스는 애도 대련에서 "신문화 가운데 구도덕의 모범이며, 낡은 윤리 가운데 신사상의 사표(新文化中舊道德的楷模,舊倫理中新思想的師表)" 라고 후스를 평가했다. 쟁우였던 장제스의 이 평가가 선진문물을 흡수한 선각자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자유주의자였던 후스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그:#후스, #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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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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