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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지진은 지금까지 일본이 경험했던 어떤 자연재해 보다 참혹한 상황이지만, 일본 국민과 언론의 대응은 놀랍도록 침착하고 질서 정연하다. 일본 어느 곳에서도 약탈이나 방화 등의 무질서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 국민들은 피해 상황 복구를 위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하철역 TV에서 나오는 지진 관련 뉴스에 귀기울이는 도쿄 시민들.
 지하철역 TV에서 나오는 지진 관련 뉴스에 귀기울이는 도쿄 시민들.
ⓒ 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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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그러나 놀랍도록 차분한 대응

해외 언론은 일본 시민의 차분한 대응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 원인으로 일본의 빈번한 자연 재해 및 이에 대한 대비와 훈련을 그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이번 대지진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재앙이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전체가 혼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특히 이번 쓰나미는 일본이 몇 십 년 간 공들여 준비한 재난재해 방어 시스템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킨 것이어서 그 충격은 더할 법도 했다. 쓰나미가 지난해 세계 기네스북 등재가 확정된 이와테현 가마이시(釜石) 항만 방파제(30년 공사 2009년 완공)를 일순간에 무력화시키고 해안 마을을 휩쓴 것은 이번 재난의 규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비록 방파제는 무력했지만 각종 지진 등을 대비한 재난 대책 매뉴얼은 제 기능을 다했다. 대지진 당일부터 전국 각지에 신속하게 피난소가 설치됐고 비상 식량과 의약품 등이 보급됐다. 물론, 재난 발생 중심 지역인 동북 지역에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피해 규모로 물자 부족 및 광역 정전사태가 지속됐지만, 사전에 대비한 덕분에 2차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테현 기타카미시 일본 반도체 회사에 파견근무 중인 한국인 K씨(37)는 정전이 지속되고 가스가 끊긴 상태에서 과자로 끼니를 대신했지만 주변 시민들이 놀랍도록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에서 모종의 두려움마저 느꼈다고 전해왔다.

일본 시민들의 차분한 대응은 정부의 재난 발표와 방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측면(신뢰감)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와 시민을 연결하는 것은 NHK를 비롯한 TV방송과 라디오 방송으로 지진 발생 직후부터 NHK는 24시간 동안 재난 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인명 구조와 재해 복구에 초점

일본 언론의 재해 보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명 구조와 재해 복구, 정확한 행동 지침 전달'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NHK의 보도를 보면 자극적인 어구(일부 한국의 '일본침몰' 헤드라인 보도는 한국 누리꾼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다) 및 클로즈업 된 비극적인 사진 등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재해 당시 상황을 전달하고, 이후의 대책과 지침을 설명하는 것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 NHK에서는 해외 언론에서 일본의 침착한 대응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는 상황 등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듯, 오로지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향후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재난 방송에는 최대한 최고 책임자 및 전문가가 나와서 현 상황 및 재난 발생의 원인을 분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간 총리를 비롯해 에다노 관방장관 등 정부 관료들은 양복이 아닌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해 현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지진과 원전폭발 위험 등의 대형 재난으로 정보가 혼선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피해 당사국 언론이 해야 할 역할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중국 언론은 일본의 지진 보도가 일본 미디어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도(<차이나넷> 14일자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의 재난 보도 방식은 자극적인 언사와 영상으로 마치 지금이라도 일본이 가라앉고 원전이 다 폭발할 것 같은 위기감을 부채질하는 한국 일부 언론과도 대비된다.(물론, 지난해 천암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일본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가 이와 달랐다고는 하기 힘들다)

이러한 일본 언론의 보도는 일본 국민들에게 정확한 행동 지침을 제공하고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피해 지역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방침과도 일치한다. 하나의 예로 14일부터 실시된 도쿄전력(TEPCO)의 '계획정전' 기자회견에 많은 방송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이와 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일본 지바현의 한 슈퍼 모습. 지진 사태 이후 대부분의 식료품이 바닥나 있다.
 일본 지바현의 한 슈퍼 모습. 지진 사태 이후 대부분의 식료품이 바닥나 있다.
ⓒ 곽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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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현 한 슈퍼 진열대에 컵라면, 햇반, 빵, 도시락 등이 다 떨어졌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일본 지바현 한 슈퍼 진열대에 컵라면, 햇반, 빵, 도시락 등이 다 떨어졌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곽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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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불안감 사재기로 이어져

대지진 후 여진과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 폭발 위험이 지속되면서 관동 이북 지역에서는 사재기가 속출하고 있다. 도쿄를 비롯한 인근 도시의 대형 마트의 생수와 쌀, 컵라면 등은 동이 난 상황이다. 원자력발전소 위기가 지속되면 향후 방사능 차단과 관련된 상품 등도 사재기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재난이 지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4일부터 제1그룹에서 5그룹까지 나눠 실시되는 도쿄 인근 지역의 계획 정전은 재난 상황의 심각성을 잘 말해준다. 1951년 도쿄전력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계획정전으로 일본 시민들의 불안과 당혹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계획정전으로 JR 전차 운영에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도쿄 인근 지역 또한 재난 이전 상황으로 복귀하는 데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바라키현에 거주 중인 미야사카씨(일본인 40대 남성)는 필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고속도로가 봉쇄되고, 물자 우송이 곤란한 상황이다. 가솔린 스탠드는 재고가 없다는 이유로 영업을 정지하고 있다. 슈퍼 안에는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으로, 점포 밖에서 제한된 상품만을 판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마저 끊어지면 더욱 힘들어 질 것 같다"면서 도시 기능이 제한된 현 상황을 전해왔다.

현재 일본이 대형 재난에 놀랍도록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물자 및 전기 부족 등으로 시민 생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의 연이은 비보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날이 갈수록 사망자 수가 늘어가는 참담함과 슬픔 또한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태그:#일본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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