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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 '인권문제', 수도권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환경문제'
'공군사격장 이전'이 여주군민의 인사말

흔히 여주 공군사격장으로 부르는 마을의 본래 이름은 예로부터 '하얀 돌'이 있어 한들 또는 백석(白石)이라고 불렀다. 오늘 날 '백석리섬' 또는 '백석리도'라고 부르는 공군사격장 이 있는 곳은 본래 육지였는데 남한강의 흐름에 따라 변하여 섬이 되었다고 하여 '섬말'로 부르기도 한다.

여주군 능서면 백석리 일원의 '백석리섬'은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사용하는 사격장으로 직경 155m에 이르는 비행훈련 포탄투하 표적을 중심으로 1,155천㎡(35만 평)이 사격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3월 7일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이 여주군으로 보낸 '여주 공군사격장 안전구역 내 토지보상 수탁 제안' 공문에 의해 국방부의 여주공군사격장 안전구역 확대 시행계획이 알려지면서 여주군과 지역주민들이 거센 반대의 불길이 일었다.

궐기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 여주군청 궐기대회를 알리는 현수막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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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 곳곳에는 '공군사격장 이전 및 확대계획 철회'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4월 12일에는 여주군청 담장에도 4월 28일 오후2시 여주군 대신면 당산1리 사격장 앞 둔치에서 '공군사격장 이전 촉구 및 확장저지 궐기대회'를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후 2~3일 사이에 여주군의 사회단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취미동아리들도 경쟁적으로 4월 28일 '공군사격장 앞으로 모이자'는 현수막들을 내걸며 '당산리대첩'의 승리를 위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실정이다.

마을입구에 걸린 현수막
▲ 당산리에서 마을입구에 걸린 현수막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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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에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범관 국회의원의 첫마디가 '공군사격장 확장은 절대 안 된다'일 정도로 최근 여주군에서는 '공군사격장 이전과 확장 철회'가 마치 일상의 인사말이 되어 버렸다.

"떠나서는 못살아... 여기서 죽어야지"

16일 오후 여주읍에서 당산리로 가는 37번 지방도에는 주말을 맞아 어디론가 떠나는 자가용의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당산1리 마을에 들어서니 며칠 전 투쟁위원회 발대식이 있었던 마을회관 앞부터 마을 골목길엔 인적조차 없다.

여주읍이나 주변마을보다 오히려 더 조용한 것이 의아할 정도다. 사람대신 먼저 만난 견공은 낮선 사람을 경계하여 목이 터져라 짖어대지만 내다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사격장으로 향하는 길가의 밭에서 마늘을 심는 농민들을 보고서야 문득 '못자리'와 농사일에 가장 바쁜 시절임을 잊었던 나의 무지를 탓해본다.

감자를 심고있던 신찬용(78세) 할아버지와 장덕춘(77세) 할머니
▲ 당산리에서 감자를 심고있던 신찬용(78세) 할아버지와 장덕춘(77세) 할머니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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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를 대비한 둑 때문에 마을에서 사격장이 있는 여주 남한강의 백석리섬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둑에 붙은 30여평의 밭에 감자를 심고 있던 신찬용(78세) 할아버지와 장덕춘(77세) 할머니는 사격장 얘기를 꺼내자 잠시 일손을 멈추고 툭툭 한마디씩 속을 털어낸다.
"여기를 떠나서는 못살아…여기서 죽어야지" 할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포탄보다 무서운게 타관살이여, 논뙈기 팔고 집 팔아 아파트로 들어가면 편하지 않냐고 하는데…이렇게 농사짓고 살던 우리 같은 사람은 딴 데 가서는 못살아" 길게 뿜어내는 담배연기에는 불안함이 가득히 담겨있다.

신찬용 할아버지는 사격장안에 4천평의 밭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밭농사는 없고 서너 마지기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나마 농사를 져봐도 이양기며 트랙터, 콤바인 빌린 값을 주고나면 남는게 없는 농사일이지만 그래도 '마을을 떠나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귀만 막아 해결될 수 있다면

궐기대회가 열릴 사격장 앞 둔치로 가는 입구에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파견대의 초소엔 앳된 얼굴의 병사들이 경계근무 중이다.

둑 너머가 사격장이 있는 백석리 섬
▲ 공군사격장 둑 너머가 사격장이 있는 백석리 섬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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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셨습니까?" 예의바른 목소리의 병사의 얼굴에 군에 가있는 친구 아들이 잠시 겹쳐진다. 사진을 찍겠노라는 대답에 수화기를 들고 몇 마디 나누더니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초소나 군사시설은 찍으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걸어서 둑에 오르니 강 건너로 세종대왕릉이 있는 숲과 여주보 공사현장이 보인다. 그 강의 한 쪽에 사격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경용 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는 을씨년한 분위기에 신찬용 할어버지와 장덕춘 할머니와 같은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니 잠시 가슴이 먹먹해 진다.

맨 위로부터 여강보 공사현장과 공군사격장 주변
▲ 여주 남한강변에서 맨 위로부터 여강보 공사현장과 공군사격장 주변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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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공군사격장이 처음 설치된 것이 1957년이니 신찬용 할아버지가 24살 때부터 지금까지 소음 때문에 귀를 막아가며 생활한 세월이 벌써 54년이 되었다.

어디 귀만 막아서 해결이 될 수 있었을까? 이웃사람이 유탄에 맞아 목숨을 잃는 처참한 일도 있었고, 능서면 능북초등학교는 유탄이 떨어져 창문이 파손(1983년 1월 6일)되기도 했다. 사격장 주변을 지날 때나 훈련이 있는 때는 소음과 포탄에 대한 공포로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온 세월이 54년이다.

2500만 수도권 주민 식수원 오염우려

여주군민은 지난 54년 동안 받은 고통은 이런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뿐 아니라 1988년까지는 사격장 고도제한으로 3층 이상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됨에 따른 재산상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강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아이들
▲ 남한강변에서 강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아이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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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큰 문제는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 오염에 대한 위험성이다. 경원대학교 배범한 교수에 따르면 '여주 백석리섬 사격장은 주로 연습탄을 이용한 사격장으로 화약류에 의한 오염보다는 탄두에 의한 중금속 오염이 우려'된다고.

즉, 사격장 토양이 중금속으로 오염되었을 경우, 강우 및 강설 시 오염물질이 씻겨 내려가(wash-out) 수계로 유입되며, 하류의 팔당댐에서 지속적 축적으로 인해 취수원의 오염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주공군사격장이 설치된 곳은 '상수원 특별대책지역 Ⅰ권역' 안에 있어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이 오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주군민이 공군사격장의 확장반대와 이전을 촉구하는 것은 사격장으로 인해 54년간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받아온 주민들의 '인권문제'이며,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에 포탄을 쏴 댐으로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라는 심각성이 있다.


태그:#여주군, #남한강, #공군사격장, #수도권, #상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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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지역신문 일을 하는 시골기자 입니다.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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