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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3일 MBC 저녁뉴스.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 비정규직해고자 10여명이 동희오토와 최종 복직하는데 합의하였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사옥 앞에서 용역깡패 200여명과 매일 밤낮으로 싸우는 것도 이날로 끝이 났다. 아니 싸웠다기보다는 견뎌냈다. 여름부터 시작한 양재동 노숙투쟁으로 비록 정규직은 쟁취할 수 없었지만 다들 복직하는 것에 만족해했다.

동희오토 해고노동자들의 7시 출근 집회
▲ 7시 출근집회 동희오토 해고노동자들의 7시 출근 집회
ⓒ 동희오토사내하청지부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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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투쟁이 길어질수록 수만 명에 달하는 누리꾼들이 우리를 응원해주었고 많은 서울시민들과 단체들이 관심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100% 비정규직이라는 동희오토 구조는 아무리 경영합리화라 하더라도 현대 측에서도 부담을 느꼈을 터. 용역들에 의한 폭력으로 우리 입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복직을 이뤄낼수 있었다(동희오토 해고자들은 2012년 6월까지 순차적 복직이 예정돼 있다. 이중 3명은 올해 6월 복직 예정이다).

복직 전까지 대리운전에 막노동,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네

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121주년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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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노동절에 청주 상당공원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했다. 작년에는 서산에서 했지만 복직타결 이후 줄곧 고향인 충주에 있었기에 충청권 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복직 기간까지 동희오토 해고자들은 생계활동에 집중할 수 없었던 터라 나도 지인에게 부탁해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다. 출퇴근이 자유로워 복직 타결 이후 그간 농성중에 있었던 연행 및 집회 참여와 관련한 경찰조사 등을 해소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다른 대리운전기사들 역시 투잡을 가지고 있어 충분한 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건 그래도 참고 사는데, 이렇게 살아도 앞이 컴컴하니 그게 가장 짜증나는 거죠."

동료 대리운전기사가 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열심히 살아도 사는 게 나아지지 않는 워킹푸어의 현실이었다. 주간에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밤에는 술 취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받아주고 하루에 3만 원을 받아간다. 그렇다고 연월차나 퇴직금 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손님의 안전을 위해서 대리업체의 보험 문제가 크게 보도되고 있지만, 대리운전기사도 노동자라는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기름값 상승을 견디지 못한 대리운전 업체는 한 달 만에 폐업했다. 동희오토에서 해마다 열리는 위장폐업이 아니라 '순수한'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이 되었다. 다시 한 번 해고자 된 나는 막노동 일을 나갔다. 하루 15만 원. 15미터 상공에서 전깃줄을 당기는 일인데 만만치가 않았지만 높은 임금 때문에 계속 일을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바람이었나. 5만 원 주고 안전화까지 샀음에도 업체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막노동이란 게 일을 하다 말다 하는 게 특징이지만 , 이유도 모른 채 다시 한 번 해고자가 되었다.

먹고 살기의 고충, 새삼 느끼네

편의점? PC방? 당구장? 이런 곳에서 일을 하기엔 나이가 많고 수입도 적었다. 이제는 정말 일을 해야했다. 카드 결제일이 코 앞이다. 그래서 고수익 광고영업을 하기로 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생산은 많은데 팔리지가 않는 게 문제. 그래서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영업에 뛰어들었다.

서울 본사와 충청지사, 제천관할에 이어진 충주지점장이 영업사원 교육을 했다. 교육장에 '때깔' 나는 정장에 머리에 기름칠을 한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다단계의 내 바로 윗단계 지점장이 상품의 가치를 설명했다.

'음…. 이 광고는 충주시와 협약을 체결 중이며 인터넷 검색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사기다. 관공서에서 광고회사랑 협약을 왜 체결하나? 가만히 듣자니 사기 멘트가 줄줄 흘렀나왔다. 나이 많으신 영업사원들은 속아 넘어가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것을 지점장이 보고 힘을 받는지 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결국 물건을 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사기를 치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없어도 사기까지 치면서 먹고 살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꼬치꼬치 묻고 따졌다. 그러자 지점장도 당황했는지 얼굴이 벌게지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곤 교육을 종료해버렸다.

참 투쟁하느라 몰랐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비정규직이라도 어느 정도 먹고, 즐기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비정규직들이 천만 명이라니 뭐가 잘못 되도 단단히 잘못됐다.

"비정규직 철폐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

귀에 익은 구호가 상당공원에 울려 퍼졌다. 참 지긋지긋한 구호이면서도 간절한 외침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의미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 같은 종자들은 분명 이 땅에 태어나서 수출대국이라는 타이틀과 상관없이 임금의 착취와 노동기본권의 억압을 받고 있다. 더 열심히 일해서 시간당 10개 만들던 것을 12개 만들어봤자 돌아오는 것은 "작업속도 상승"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누가 영웅을 최저임금에 밥값 300원 주고 대접하나

현대기아차 '모닝'을 전량 대리 생산하는 동희오토는 다시 라인에 따라 17개의 하청업체를 두고 6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모닝'을 전량 대리 생산하는 동희오토는 다시 라인에 따라 17개의 하청업체를 두고 6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 동희오토비정규직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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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도로변 가판대에 붙어있는 '청소노동자 여러분. 당신은 서울을 빛낸 진정한 영웅입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시청에서 노동자와 서민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거나 치하하는 줄 알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저 글귀가 상당히 거슬린다. 누가 영웅을 최저임금주고 밥값 300원주고 대접하나? 누가 영웅들을 장시간 노동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있나? 그들이 이름 붙인 우리의 영웅들은 너무나 지쳐있다. 투쟁의 고단함에 갈수록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두려워하고 사측에 붙어서 앵무새가 되려하는 노동조합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물론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오는 노동조합도 적지는 않다.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부당함을 침묵하고 살 수도 있지만 아직 많은 노동자들이 양심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태그:#동희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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