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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는 80년대를 배경으로 떠나는 추억여행이다. 70년대 유신시대의 남자고등학교 이야기를 담은 '말죽거리 잔혹사' 의 후속편 분위기로 80년대 학창시절을 얘기하고 있으니 딱 내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내 고등학교 시절은 군에 입대할 때보다 더 긴장과 각오를 다지고 시작해야 했다. 추첨으로 배정받은 곳이 깡패학교로 악명이 높았던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시험 쳐서 어렵게 들어간 S고등학교에 무혈 입성하거나 머리를 길러도 되는 신설 남녀공학에 배정받을 꿈은 사라지고, 일단 머리부터 빡빡 밀고 입학하는 심정이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군대에 가는 거 같았다.

 

손수건만 한 팬티 입고 돌아다닌 우리학교 '짱'

 

우리 반의 짱은 확실했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데다가 키가 제일 커서 맨 뒷번호 59번을 가진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졸업을 하기도 전에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미스터코리아 헤비급 3위를 했고 학교에 팬티만 입고 돌아다녀도 되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몸을 태워야 한다며 오일을 바르고 손수건만 한 팬티만 입고 어마어마한 몸을 드러내며 활보했다. 유일한 여자 선생님이었던 예쁜 양호선생님이 넋이 나가 쳐다보는 걸 봤다는 소문도 들렸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난 56번이었으니 키는 비슷했지만, 고등학교를 재수했다는 그의 전적 앞에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학교 짱을 가리기 위해 싸우는 일은 적어도 내 기억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굳이 주먹자랑이 아니어도 힘자랑하는 녀석들은 여럿 있었다. 영화배우 이병헌도 그 중 하나였다. 이 녀석의 특기는 팔씨름이었다. 빡빡머리 중에서도 터미네이터처럼 옆 머리를 더 짧게 깎고 다니며 제 별명을 스스로 터미네이터라고 말했던 병헌이가 어느 날 MBC 팔씨름대회에 참가해서 1회전을 통과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1승은 부전승이었다. 그래도 전국대회에 과감히 도전한 용기만으로도 뭔가 인정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 용기로 신인탤런트 공모에 응시해서 1500대 1의 경쟁을 뚫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소풍 가서 생애 처음으로 술을 마셨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선생님 몰래 산속에서 고기를 굽고 미리 준비해 간 소주를 따려는데 병따개가 없었다. 지현이란 녀석은 이빨로 뚜껑을 따는가 싶더니 그 소주병을 그대로 잡고 보란 듯이 한 병을 원샷으로 마셔버렸다. 우리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시작한 술자리를 마치고 월요일에 학교에 와 보니, 지현이의 얼굴과 온몸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녀석은 빈속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그 와중에도 그런 꼴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싫어 숨어서 잠을 잤다고 한다. 시차를 두고 술 취한 우리도 미쳐 없어진 지현이를 챙기지 못하고 산에서 내려왔고, 이 녀석이 잠을 깼을 때는 사방이 캄캄한 산속이었던 것이다. 거의 굴러 내려오다시피 하산하느라 온몸에 상처가 난 것이다.

 

우상 '이소룡'처럼 잔근육 만들기 위해...

 

내 우상은 이소룡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이소룡처럼 멋진 잔근육을 만든답시고 수업시간 내내 책상 밑에서 악력기를 수백 수천 번 쥐었다 폈다 했다. 악력기도 수명이 다하면 부러진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그렇게 부러진 악력기는 곧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쌍절곤을 들고 옥상에서 맞짱을 뜬 적도 있었다.

 

서로 무기를 하나씩 들고 싸우기로 했기 때문에 야비한 반칙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니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상대방 녀석이 보온밥통을 철퇴처럼 휘두르며 내 쌍절곤을 막아내더니 다짜고짜 내 바지춤을 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지면서 이소룡의 전광석화 같은 발차기도, 쌍절곤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힘자랑하는 건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늘 자기가 팔씨름을 져본 적이 없다고 자랑하던 수학선생님도 있었다. 듣다 못 한 우리 반 팔씨름왕 지현이가 한판 붙자고 도발을 했다. 급작스런 도전에 선생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마치 못해 도전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퍽'소리와 함께 수학선생님의 완패.

 

영어선생님은 교과서에 피닉스(불사조)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날이면 자기가 몸담았던 불량서클 이름이 불사조였다며 무용담을 풀었다. 라이벌 학교와 패싸움을 할 때 본인의 별명대로 쌍도끼를 들고 나가서 적을 제압한 뒤 도끼 하나를 그 학교 현판에 찍어 놓고 '저 도끼를 빼는 넘은 나머지 내 도끼에 이마를 맞을 줄 알라'고 했다나 뭐라나···. 실제로 그 도끼는 일주일 넘게 그 자리에 있다가 경찰이 와서 빼갔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설을 풀고 가셨다.

 

아직 모교와 내가 사는 곳이 가까워서 몇 년마다 한 번씩 학교에 들른다. 힘자랑하던 선생님은 이제 초로의 모습이 되었다. 이제야 그때 선생님의 모습이 이해된다. 나도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풀면서 추억을 뜯어먹으며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시간 내서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한 번 가야겠다.


태그:#써니, #중동고등학교, #양지현, #학창시절, #마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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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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