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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돌아본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딘 완두콩은 콩깍지 살을 두텁게 하고, 눈 속에 살아남은 상추는  아직도 푸르다. 이른 봄 심은 옥수수는 한 뼘 쯤 자랐다.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야콘, 참외, 수박은 아직 어린데 감자는 벌써 하얀 꽃을 피우고 마늘과 양파는 수확의 손길을 기다린다.

꽃양귀비 밭
▲ 꽃양귀비 꽃양귀비 밭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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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에 꿀벌이 귀했던 탓인지 사과, 매실, 자두, 살구, 개복숭아는 금년에도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매실과 자두는 나무 수가 많으니 그런대로 가용은 될 것 같은데 한 그루 뿐인 개복숭아는 현재의 상태로는 술 한통도 담기 어려울 듯 싶다.

개복숭아는 설탕에 재였다가 기침이 심할 때 따끈한 물에 차로 마시면 효험을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아내도 나무를 쳐다보며 안타까워하지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더 낙과되는 일이라도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파라솔과 패랭이의 어울림. 뒤에는 도라지가 꽃을 준비하고 있다.
▲ 파라솔꽃 파라솔과 패랭이의 어울림. 뒤에는 도라지가 꽃을 준비하고 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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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제멋대로 자란다.  숙지원 조경을 할 목적으로 어린 소나무를 덜컥 100주나 구입하여 심었는데 80% 가량 생존하리라던 예상과 달리 99%가 살아남았다. 2년 전 성당에서 30주 정도 달라기에 승낙했는데 캐서 옮겨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바람에 현재는 다소 부담이 되는 나무들이다.

광주 부근에 사는 분들 중 (조경업자는 제외) 필요한 분들에게는 본인이 캐가는 조건으로 무상 기증하겠다는 소문도 냈지만 달라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이제 모양이 나쁜 것은 솎아내고 필요한 만큼만 남겨야 할 것 같다. 

자두나무 주변.
 낮달맞이, 끈끈이대나물,샤스타데이지무리가 보인다.
▲ 숙지원 꽃밭 자두나무 주변. 낮달맞이, 끈끈이대나물,샤스타데이지무리가 보인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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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이름을 부른다. 숙지원을 수놓았던 철쭉은 지고 꽃송이가 큰 [저먼아이리스]도 이제 행사가 끝났다는 듯 여유롭다. 뒤를 이은 하늘거리는 원색의 꽃양귀비와 무리지어 핀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대비되고 색색의 수레국화는 수채화처럼 담백한 풍경을 연출한다. 엷은 분홍빛 낮달맞이, 보랏빛 도는 끈끈이대나물, 노랑 꽃창포, 노란 금계국, 난장이 파라솔, 홀로 남은 동자꽃, 줄지어 늘어선 패랭이꽃이 피었고 접시꽃과 사포나리아도 피기 시작한다. 철망에 의지한 넝쿨 장미는 이제 겨우 피고 있는데 광주에 비해 한 달 쯤 늦는 것 같다.

어렵게 살린 꽃이다.
▲ 동자꽃 어렵게 살린 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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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유명 관광지를 찾아 떠난다는데 아내와 나는 숙지원으로 달렸다. 그리고 모처럼 꽃들과 눈을 맞추고 숨어있는 꽃을 찾아 이름을 부르며 느긋하게 보냈다. 그렇다고 마냥 놀았던 것은 아니다.  400개의 고구마를 줄기를 잘라 밭에 심었고 그것들에 물주는 일도 했다. 오이와 토마토 가지치기도 했다. 분꽃과 봉숭아도 옮겨 심었다.  
숙지원 서편길 철쭉 사이에 핀 꽃
▲ 낮달맞이꽃 숙지원 서편길 철쭉 사이에 핀 꽃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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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을 밝히는 꽃등. 어떤 꽃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꽃만 고집하는 것은 꽃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경우이다. 이름이 좋기에 아름답다고 한다면 꽃에 대한 오해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꽃은 꽃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한 낮을 더 환하게 밝히는 등(燈)이다. 사람의 마음까지 밝히는 꽃등.

접시꽃 곁에 여러 꽃이 피었다.
▲ 야외탁자 주변 접시꽃 곁에 여러 꽃이 피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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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비싼 화병에 담은 꽃보다 자연 속의 꽃이 아름답고, 한 송이 꽃보다 자연 속에서 다른 꽃들과 어우러졌을 때 더 빛나는 법이다.  모처럼 가까운 꽃의 이름을 불러본 날. 흙에 꽃을 가꾸지 않은 사람은 이런 정취를 알 수 없으리라.

날이 가물다.
그 점이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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