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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주역을 배운 적이 있다. 서당에 가서 매주 한 시간씩 읽었다. 공자는 말년에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질(韋編三絶) 정도로 주역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64괘는 마치 자연섭리의 비결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이 년여 배우자 시들해졌다. 한문공부엔 도움이 되었지만 실생활과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재미를 붙이기 위해 가끔 간이식으로 괘를 뽑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점을 칠 만큼 절박한 일이 없어서 그런지 정성이 모아지지 않았다. 

주역의 근본은 '점치는 책'이다. 20년을 감옥살이해야 했던 신영복선생은 <강의>에서 "점은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니고,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인간이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을 만큼 다하고(盡人事), 천명을 기다리는(待天命) 마음으로 점을 쳐라'는 말 같다. 그런데 '이미 결정된 운명'이 어디까지이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몫'이 어디까지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찌 보면 점을 쳐서 알고 싶은 가장 큰 비밀이 바로 그것 같은데. 

이미 하늘이 결정해 놓은 운명인줄도 모르고 그걸 바꿔보려고 아등바등 몸과 마음을 다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 만약 그것이 바꿀 수 없는 운명인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 몸 상하는 헛고생은 안 했을 것 아닌가.

어디까지가 '진인사'의 한계일까. 누군가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이루는데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은 30%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나머지 70%를 운의 몫으로 돌린다.

'90대10'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기껏 10분의 1뿐이라는 비관주의다. 더 극단적으로 나가면 구제불능에 이른다. 하다가 힘들면 모조리 운運탓으로 돌려버리고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정반대로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 내 운명은 내가 만든다'며 자신에 가득 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비율은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다. 또 살다보면 그 비율도 달라진다. '다 바꿀 수 있다'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잘 달려 나가다 곤두박질 두어 번 친 후 '세상만사가 다 운명이다'라고 변하는 경우도 있다.

비관주의건 낙관주의건 많은 사람들은 점을 쳐보고 싶어 한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이번 선거에 출마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업가들은 이번 투자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평범한 사람들도 혼자 풀기 어려운 고민거리가 많다. 집을 팔아야 하나? 이사를 가야 하나?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일이 안 되는 사람은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 어떤 운명인지 알고 싶다. 언제나 운이 풀리려는지?

난 점을 치러 점쟁이를 찾아본 일이 없다. 십여 년 전, 친구가 점집에 갈 때  따라가 곁에서 구경한 적은 있다. 친구는 사업에 실패하여 심란한 상태였다. 점쟁이는 "나쁘다, 안 좋다"만 되풀이 하더니 "액을 면하려면 큰 굿을 해야 한다"고 딱 잘라 결론지었다. 그 친구는 무슨 사업을 점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일이 꼬이고 팍팍하니 위안 삼을 말 한 마디라도 들을까 해서 갔던 것 같다. 친구는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한 채 그 집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역에 좋은 말이 있었다.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한다(變則通)" 보통 다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궁하면 통하게 되는' 줄 알고 있다.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알려졌다.

궁지에서 벗어나 세상과 통하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터널이 있었다. 자신이 변해야하는 과정이다. 세상과 맞지 않아 돈도 못 벌고 출세도 못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먼저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통한다.

만약 자신이 열심히 변했는데도 안 통한다면 어쩔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 세상이 변할 때까지. '운運은 돌고 돈다.' 우리나라 속담이다. 도는 것은 많다. 달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했다가 다시 그믐달로 돌아온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도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온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달이나 지구처럼 확실한 궤도를 돌지 않는다. 그 수레바퀴가 정확히 계절처럼 돈다면 점을 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능력이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세상에 뜻을 펴지 못한다면 시운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시류를 탈 만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끈질긴 인내심이라도 가져야 한다. 당신은 강태공처럼 한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나.    

덧붙이는 글 | 19일 이슈투데이에 송고 (진인사의 한계는 어디인가)했으나 내용 중 뒷부분을 완전히 바꾸고 제목도 바꾸었습니다.



태그:#주역, #점, #궁즉통, #강태공,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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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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