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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의욕이 샘솟고 더 많은 세상을 보게 됐다. 앞으로 시간을 좀 더 아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싶다."

 

지난 19일 호서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일흔 여섯 살의 나이에 학사모를 쓴 최명기씨(호서대 사회복지학과)가 화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그녀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8·15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학업을 계속 이어가 초등학교는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으로 중학교 진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것이 그녀가 받은 교육의 전부였다.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 가사를 돕던 그녀는 결혼 이후, 남편과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젊음을 모두 보냈다.

 

그녀의 남편은 천안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의원 원장이다. 그녀의 장남도 부친의 영향이었는지 한의사가 돼서 부자가 나란히 같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장남과 결혼한 큰 며느리도 내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어 말 그대로 의사집안을 이루고 있다.

 

남편과 자식을 훌륭하게 뒷바라지한 그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현모양처라며 존경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됐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50여 년간 묻어둬야 했던 배움에 대한 욕구였다.

 

반세기 이상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하려니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서예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남편인 한주호(77) 원장을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준비해 2007년 고교졸업자격을 취득했다. 이듬해인 2008년 호서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7학기만에 학사모를 쓰게 됐다.

 

"학사모를 쓰게 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너무 기쁘다. 대학생활 4년을 언제 마치나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금방 지나가 버려 아쉬움도 크다. 내내 어린 동기생들이 '왕언니'라고 부르며 따르고, 도와줘 즐거웠지만 시험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시험 한 번 볼 때마다 몸살을 앓았고, 덕분에 의사 남편, 아들, 며느리가 긴장 속에서 간호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일흔 여섯 살에 학사모를 쓴 그녀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섰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며 대학원 진학준비와 또 다른 인생목표를 설계하느라 분주한 그녀의 모습에서 놀라울 정도로 강한 힘과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최명기, #호서대, #학사모, #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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