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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 노제인지 알 수 없다.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국화를 놓고, 끝으로 젊은 청년의 영정사진이 놓인다. 그리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수차례 반복된 풍경이다.

지난 2009년 77일 간의 옥쇄파업 이후 사망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의 가족 수가 17명이나 되니, 어쩌면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제사를 지낸 곳일지도 모른다.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진행됐다.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진행됐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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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8시, 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 김아무개(36)씨의 노제가 열렸다. 김씨는 지난 10일 오후 3시경 경기도 평택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그는 '불효하고 먼저 갑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어머니였다.

사흘간의 장례를 마치고 이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휴대전화 번호 1번 단축번호에 '금쪽같은 내새끼'라고 입력해 놓은 아들을 차마 보내지 못해 어머니는 자리에 누웠다고 한다.

김씨의 약력이 소개됐다. 2002년 월드컵 열풍이 불던 때 26살의 나이로 공장에 들어온 그는 당시 쌍용자동차에서 잘 나가던 무쏘를 만들었다. 여느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그도 주야간 맞교대를 하며 노동하고 또 노동했다. 무쏘의 후속작인 렉스턴도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그는 올해로 10년 차의 원숙한 노동자가 됐을 것이다.

김씨는 2009년 도장2공장을 점거하고 벌어진 77일간의 옥쇄파업에 함께하다 마지막 진압 전날 사측의 회유로 밖으로 나왔다. 이후 파업에 참여하다 빠져 나온 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그도 희망퇴직을 한다. 재취업은 어려웠고 자동차까지 팔아야 하는 생활고가 그를 기다렸다.

노제 사회를 보던 김씨의 예전 동료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그럴 놈이 아닌데... 그럴 놈이 아닌데"라며 울먹였다. 그는 김씨가 1년 전 이맘때에도 자살을 시도하려던 것을 어머니가 말렸다는 사연을 전하며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외부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고 휴대전화의 저장된 번호도 친구 한 명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운 것으로 알려졌다.

"몇 달 동안 나가지도 않고 무슨 생각했을까"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예전 동료가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에서 지난 10일 자살한 김아무개씨의 노제가 열리고 있다. 김씨는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가 희망퇴직한 노동자다. 예전 동료가 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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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굵은 눈물방울을 훔치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김씨를 추도했다.

이 대표는 "희망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하지 못해, 희망을 실현시킬 힘이 없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라며 "정부와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 절망을 착한 사람들이 모두 짊어지기에 고통이 너무 크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우리 모두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 하나는 잊지 않게 도와주소서"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조사를 하며 말을 쉽게 잊지 못했다. 정 최고위원은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연신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노제에 올 때마다 이제 죽음의 행렬은 끝인 줄 알았다"라며 "정치란 도대체 무엇이라고 묻는 질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번 죽음을 마지막으로 하자고 말할 염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 최고위원은 이소선 어머니가 고인이 되기 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농성을 벌이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게 보낸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살아서 내려와 싸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주시길 바란다"라며 "이번 죽음이 끝이 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안간힘을 써보겠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권지영 대표가 추모의 글을 읽을 때는 온통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권 대표는 "몇 달 동안 집밖에 나가지도, 누굴 만나지도, 면도도 않고, 이발도 않고 그 청년은 무얼 생각하고 있었을까요"라며 "어머니는 그냥 그렇게 있는 모습을 보며 속이 상해도 '내 새끼 나아지겠지, 저러다 좋아지겠지'라고 하셨대요"라고 전했다.

그는 "이러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섭고도 지독한 상상이 자꾸 되풀이 되요"라며 "희망 없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돌고 도는 바이러스 같은 죽음"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제발 이 시간이 끝나려면 저 회사가 답해줘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라며 "그러라고 정부가 있는 거잖아요, 일 하는 사람이 살기 좋게 만들려고 정치도 있는 거라면서요, 우리는 지금껏 차고 넘치게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노제 참가자들은 김씨의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놓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눈이 붉게 충혈 된 사람들은 꽃을 내려놓고도 한참을 그 앞에 머물렀다. 그렇게 김씨는 그의 마지막 직장인 쌍용자동차 공장 앞을 떠났다.

2007년 이후 상반기 최대실적 올린 쌍용차

한편, 지난 4일 쌍용자동차의 재직 중인 노동자가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데 이어 이번에 또 다시 희망퇴직자가 자살하는 등 노동자들의 연속적인 죽음으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한다, 벌써 17번째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도적적 법적 책임의 주체인 쌍용자동차 사측은 알맹이 없는 비전선포와 겉치레 행사에만 여념이 없다. 쌍용자동차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이것을 용인해야 하나"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까지 죽어간 노동자와 그러했듯 김OO동지가 끝내 보려 했던 공장복귀의 염원을 반드시 실현시킬 것"이라며 "그것이 투쟁과정에서 숨져간 동지와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에 재매각되며 회생절차를 마친 쌍용자동차는 올 초 신차 '코란도C'를 내놓았고, 지난 상반기에는 내수 2만 246대, 수출 3만 5627대를 포함 총 5만 5873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한 1조 3천 49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3% 크게 증가한 것으로 2007년 이후 반기 최대 실적이다.


태그:#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쌍용차, #코란도C,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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