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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0.26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28일 의원총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10.26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28일 의원총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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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자리는 선출직으로선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다."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부터 시작해 22~25일 나경원 후보 지원 연설에 이르기까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빼놓지 않고 한 말이다. 한나라당과 나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선 '검증'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네거티브 공세'라고 부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면서 한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선거 다음으로 중요한 선거에서 졌는데, 한나라당에선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이가 없다. 그 이유는 "이겼다고도 할 수 없고, 졌다고도 할 수 없다, 노사이드!"(26일 밤, 홍준표 대표)기 때문이란다.

홍 대표는 "서울을 뺀 나머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다 승리했기 때문에 이겼다고도 볼 수 없고, 졌다고도 볼 수 없다"며 "노무현 때는 40(한나라당)대 0(열린우리당)까지 갔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원래부터 이렇게 관대하진 않았다. 다섯 달 거슬러 올라가 4·27 재보궐선거 직후엔 가차 없는 '지도부 동반사퇴'가 이뤄졌고, 동반사퇴를 강력 주장한 이가 바로 홍준표 당시 최고위원이다.

4·27 재보선 하루 뒤 홍 최고위원은 서초포럼 강연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오늘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집단 책임이니 집단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홍 대표는 결국 지도부 총사퇴와 전당대회를 이끌어 냈고, 직함을 2위 최고위원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4·27 재보선과 10·26 재보선의 경중을 정확히 따지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선출직으로는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 것이 강원도지사 선거와 분당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 것보다 비중이 덜하진 않다.

네거티브·색깔론 나서면서 20·30대와 소통한다?

홍 대표 입장에선 이번 선거 패배를 '집단 책임'이 아니라 '오세훈 책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열리게 된 책임은 오 전 시장에게 있더라도, 선거 승패에 대한 책임을 오 전 시장에게 뒤집어씌울 순 없다. 홍 대표가 '사실상 승리'라고 평가한 25.7%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율을 만든 사람은 오 시장이다.

대신 홍 대표는 "앞으로 당 개혁과 수도권대책에 적극 노력하고 주력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고, 특히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20·30대 계층에 다가가는 그런 정책과 소통의 장을 만들어서 그 분들의 마음을 얻도록 하겠다"(27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고 대책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표부터 네거티브와 색깔론에 앞장섰던 당에서 내놓을 대책이 20·30대의 마음을 얻을 리는 만무하다. 대표를 바꾸든지, 아니면 홍 대표 스스로 '내가 앞장서서 네거티브와 색깔론 공세를 편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올 대책이 진정성을 인정받기도 힘들다.

"책임은 늘 지겠다"는 청와대, 한 달에 한 명씩 사퇴해도 모자라

논란을 빚었던 내곡동 사저터
 논란을 빚었던 내곡동 사저터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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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안 지는 건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를 진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파문이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이명박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운영 실패가 여당 표를 이탈시켰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27일 밤과 28일 아침 사이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임태희 대통령실장 사의 표명설'이 언론에 보도된 것도 자연스런 일로 여겨진다. 오히려 사퇴를 안하는 것이 이상한 판국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선 '선 민심수습, 후 인적쇄신'이라는 반응이다. 쉽게 말해 '책임 있다고 다 물러나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것이다. 최금락 홍보수석은 "책임은 늘 지겠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늘 책임질 일은 있어왔다. 최근만 해도 저축은행 사태 조기수습에 실패했고,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져 나왔고, 결정적으로 내곡동 사저 파문이 터졌다. 이런 일들과 국정 전반의 실패까지 다 책임지려면 수석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사퇴해도 모자랄 판이다.

"민심 두렵다"며 경호처장에 어청수 앉혀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2008년 촛불 정국 때 광화문에 '명박산성'을 쌓아올린, '각하엔 충성, 소통은 거부'의 대명사인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내곡동 사저 파문으로 빈 청와대 경호처장 자리에 앉혔다. 어 신임 경호처장도 '책임은 늘 지겠다'는 각오로 청와대에 입성했는지는 모르지만, 청와대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 특히 20·30대의 민심을 두려워한다면 할 수 없었던 인사다.

그러나 한편으론 청와대 참모들이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28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대통령 자신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항변할 일이 아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민심은 알겠지만 자리에서 물러날 순 없다'거나 '솔직히 일을 잘 못합니다, 그러니 좀 봐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낫다.


태그:#홍준표, #네거티브, #색깔론, #청와대, #책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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