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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로 다시 돌아온 장한나. 최근 몇 년간 청소년들과의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지휘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쳐왔던 장한나는 자신이 첼리스트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다.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12월 5일 시작된 2년만의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순회연주는 많은 관객들의 설레임 속에서 연주되었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Op.34, no.14>가 시작되는 순간 관객들은 '첼리스트 장한나' 를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안정된 운궁과 호흡선 속에서 차분함과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음악적 구성에서,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스의 잔잔한 물결 같은 반주 위에서 장한나는 자신의 고향을 다시금 확인했다.

 

현악기는 기본적으로 왼손의 운지와 오른손의 운궁으로 이루어지고 선율악기이기 때문에잘못 연주하면 듣기에 무척 힘들어진다. 그리고 작은 뉘앙스의 차이에서도 많은 음악적인 것이 바뀌기 때문에 정말로 연주자의 개성과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중 첼로는 인간의 몸체와 크기나 음역에서도 가장 닮아있는 악기로 불린다.

 

"노래하듯이". 11월 기자 간담회에서 장한나는 이번 연주회의 컨셉을 다른 동물이 가질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의 특권인 '노래'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공연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던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Op.34, no.14>에서는 마치 자신의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의 읊조림과도 같이 경건하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단순히 악기가 아닌 장한나의 또 하나의 목소리로 말이다.

 

다음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소나타 g단조 Op.19>가 이어졌다. 장한나는 더욱 구체적이고 화려한 움직임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과 음색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작곡 직전에 만들어진 곡이라 그런지 피아노 반주의 움직임에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색채가 물씬 풍겨왔다.

 

언뜻 보면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스의 독주이고 장한나가 거기에 선율을 약간 얹은 것으로 보일 정도로 이 작품 자체가 피아노 기교의 장대함과 첼로 선율선의 긴 호흡과 운궁으로 일관된다. 사실 소녀시절의 완벽하고 통쾌하고 신들린 듯한 기교의 장한나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작품은 다소 그간의 목마름에 충족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한나 아닌가? 어릴적 청소년 시절 이미 세계무대 활동의 그녀가 지금 삼십이 다되어서까지 그런 기교를 부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휘로 음악폭을 넓힌 이 똑똑하고 당차고 혈기왕성한 젊은 음악가에게 무례한 요구이지 싶다. 이미 독자노선을 선택한 그녀이기에 이번 프로그램 선택도 많은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리라.

 

인터미션 후의 파야의 <7개의 스페인 가곡>은 짧은 춤곡들이라 훨씬 듣기에 편했다. 익살스런 기교도 많이 섞여 있어서 감칠맛이 있었다. 만약 어떤 관객이 전반부의 호흡이 긴 선율보다 좀더 다른것을 원하였다면 이번 곡에서는 충족되었을 것이다. 피아노와의 주고받는 움직임과 리듬에서 마치 춤이라도 추고싶은 곡이었다.

 

마지막 곡이었던 피아졸라의 <그랜드 탱고>는 화려함과 우수어린 기품이 깃든 연주였다. 피아졸라 특유의 탱고 리듬과 그 변주가 피아노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만의 색채를 뽐내는 이 곡에서 장한나는 마치 자신의 입으로 노래하는 듯 너무나 편안하게 연주하였다. 사실 크게 몸의 액션을 취한다던지 리듬을 크게 탄다던지 하지는 않았다. 단지 덤덤하게 앉아서 자신의 친구인 첼로와 활의 방향으로 크게크게 음을 그려나갈 뿐이었다.

 

바로 그 점이, 장한나가 변화한 부분인 것 같다. 한마디로 잔리듬에 큰 뉘앙스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첼로만 하던 시절의 그리고 어렸을 적의 장한나는 표정을 많이 쓰고 몸을 많이 움직였었다. 사실 몸을 아주 많이 쓰는 연주자들에 비하여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몸의 움직임이나 표정이 연주를 도와주고 또 드러내고 했었다.

 

하지만 어제 공연의 장한나는 언뜻 보기에는 너무 무심해 보일 정도로 목석과도 같이 큰 호흡선과 일정한 자세로 꼿꼿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달라져 있었고 인상적이었다. 지휘생활의 영향인가. 지휘자는 연주 두시간동안 관객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무대를 바라보면서 꼿꼿하게 등을 펴고 양팔을 허공에 대고 휘젓는다.

 

음악을 큰 폭으로 거대한 산을 넘을 때처럼 바라보아야 하는 지휘자의 입장에 올라섰으니 크게크게 보는 것일까. 좋게 말하면 장한나 본인의 말대로 이제는 첼로곡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보아야 하니까 다루는 음악폭 만큼이나 훨씬 음악의 구조에 대하여 깊고 큰 통찰력으로 산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아쉬운 한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첼로현과 활의 구석구석 감칠맛과 시원한 찌름은 다소 사라져 보인다.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스가 한국말로 앵콜곡은 '백-조-'라며 시작했던 생상의 <백조>에서는 그 성숙함과 우아함을 한껏 보여주었다. 또 커튼콜 후 이어진 두 번째 앵콜곡 파야의 <불의  춤>은 익살스러움과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앵콜곡이 본 프로그램보다 더 좋았다.

 

이날 공연의 대구 관객들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는 악장과 악장 사이의 박수소리나 기침소리 하나없이 최상의 매너로 장한나를 대해주었다.객석은 꽉 찼으며 당일 현장판매만 해도 대단하였다. 사람들은 장한나에게 관심이 참 많다. 우리가 길러내고 소망하였던 신동 장한나가 어엿한 삼십대의 여류 음악가로 앞으로도 자신의 예술행보가 아름다운 길이기를 하는 바램이다.  


태그:#장한나,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대구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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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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