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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세이브란
 위드세이브란
ⓒ 팝펀딩닷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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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21)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A씨와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간 후 연락이 안 돼서 할머니와 지냈다. 할머니가 경제적 여력이 없다보니 A씨는 중학교 때부터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다시 고모 집으로 보내졌다. 갑자기 두 아이를 떠맡게 된 고모는 A씨에게 차갑게 대했다. 급기야 폭력이 계속됐고, 이를 견디지 못한 A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오게 된다.

보통의 경우는 A씨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쟁을 강조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A씨 같은 사람은 외면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공생보다는 남들과 경쟁을 해서 살아남을 것을 강조하다보니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실패자, 낙오자로 낙인 찍힌다.

경쟁에서 뒤쳐진 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 되버려 게으른 사람,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살아도 세상에서 뒤처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신마저 뒤처지게 될까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의 우리 사회는 참 따뜻한 사회였다. 마을 구성원들이 이웃의 경조사를 같이 챙기기도 하고 김장철이 되면 모여서 함께 김장을 담그기도 하는 등 이웃과의 교류가 많았다. 새로 이사 온 가정은 마을에 떡을 돌리고 인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트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정(情)'이 꼽히나 보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가정을 잘 알고 지냈다. 어린 아이가 길을 잃으면 동네 어른들이 집에 데려다 주니 아이들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갑자기 누구네 집이 어려워지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와줬다. 그때는 지금보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도 낮아 다들 어렵게 살긴 했지만, 서로 의지할 곳이 있었고 나눌 곳이 있어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때는 동네에 A씨 같은 아이가 생기면 마을 어른들이 함께 관심을 가져주고 힘을 북돋아줬었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집을 나와서 알게 된 것은 '세상이 참 무섭다'는 것이었다.

A씨는 집을 나와 이왕이면 좀 더 큰 세상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 왔다. 월세집을 알아보는데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의 이름으로는 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 이름으로 계약을 한 게 화근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집주인이 와서는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이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며 집을 비우라고 했단다. A씨는 순식간에 전재산을 날리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갈 곳이 없어진 A씨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지방에 있는 한 다방으로 흘러들어갔다. 숙식도 제공이 되는데다 돈도 벌 수 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구나 아직 어릴 때다보니 다방이 커피 마시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그곳에서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거란 것은 미처 상상하지도 못 했다.

건물은 많지만 마을은 없는 한국 사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고층 아파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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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관계망이 많이 끊어져버렸다. 이동통신과 인터넷이 발달해서 누구나 휴대전화를 들고다니면서 쉽게 연락할 수 있고 SNS를 통해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정작 이웃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전 같았으면 만나서 해결할 것도 그냥 문자나 이메일 한 통으로 해결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오히려 적어진다.

어려운 고민이 있어도 주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보다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거나 익명게시판에 나의 감정을 토로할 뿐이다. 이웃집에 잠시 아이를 맡겨 놓을 수도 없고 집에 쌀이 떨어져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 할 수가 없다. 네트워크의 규모와 범위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개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를 두고 '건물은 많지만 마을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A씨의 경우에도 오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상의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주상복합 아파트나 고급빌라 등 좋은 집은 많이 생겼지만, 너무나도 철통같은 보안 때문에 옆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웃과의 교류가 점점 줄어들다보니 옆 집에서 누가 죽어도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나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나를 돌아봐 주는 사람도 없으니 한국사회는 참 외로운 사회일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이 공동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각 개인으로 존재하다보니 사회적 약자를 보고 보호해주기 보다는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더구나 A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인 약자들은 약탈의 대상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사람들의 응원에서 다시 희망을 보다

A씨가 올린 사연을 보고 사이트 방문자들이 응원글을 남기고 있다.
▲ 위드세이브 게시판에 올라온 응원 댓글 A씨가 올린 사연을 보고 사이트 방문자들이 응원글을 남기고 있다.
ⓒ 팝펀딩닷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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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현재 여성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치료도 받고 일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6개월 후면 쉼터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버는 돈의 대부분을 저축해도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어서 막막했는데 위드세이브통장 사업에 참여하면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위드세이브통장은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참여자가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고 저축계획을 밝히면 사연을 본 방문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부족한 금액을 모아주는 P2P(peer to peer) 금융시스템을 활용한 저축 기부사업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만큼 상처가 많은 지난 몇 년이었지만 자신의 사연을 위드세이브 누리집에 올려놓고 계획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응원의 글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겨주는 응원의 글이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혼자서만 세상을 겪어온터라 이런 관심이 마냥 반갑기만하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믿었는데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의 저축금액과 위드세이브통장을 통해 들어온 기부금을 활용해 어릴 때부터 떨어져 지낸 동생과 함께 지낼 집을 구하겠다고 했다.

당장의 돈도 절박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의지할 가족과 이웃이 없어 홀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가 절실하다. 나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때론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기 이전에 사회적 동물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최대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를 통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갖춰나가는 제도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우리들 각자가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서로의 관심과 응원을 통해 과거의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 '세상에 나만 홀로 존재한다'라는 소외의식이 우선 극복돼야 할 것이다. 나 스스로가 주변의 이웃을 돌아봐야 내가 어려울 때도 나를 돌아봐주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희망온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P2P 금융누리집인 팝펀딩닷컴(http://www.popfunding.com)을 통해 진행되는 위드세이브 게시판에는 IMF 때 경제적인 문제로 가정이 해체되고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열심히 일을 해서 자립을 준비하는 탈노숙자,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수술이 필요한데 의료비 100만 원이 없어서 실명위기에 처한 기초생활수급자, 부조리한 장애인 시설들로 인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한 뇌병변 1급 장애인, 부모님이 안 계셔 친척집에서 생활하다가 폭력을 견디지 못 해 집을 나왔다가 사기를 당한 성매매 피해여성, 혼자서 옥탑방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혼모 등 다양한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가 올라와있다.



태그:#위드세이브, #서울시, #희망온돌프로젝트, #기부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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