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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가 시장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가 시장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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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활동을 외국에 알리려고 미국에서 오셨어요."
"제발 홈플러스 들어오는 것 좀 막아줘요. 우리 다 망하게 생겼어."

망원시장에서 10년 넘게 생선을 팔아온 할머니가 낯선 미국 여성에게 신신당부했다. 시장에서 불과 600~700m 떨어진 곳에 홈플러스가 들어오면 당장 생계 위협을 받게 되는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었다.

홈플러스 대 망원시장 갈등이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국내 기업의 사회 책임 활동 조사차 한국에 온 로렌 컴페어 보스턴커먼에셋매니지먼트 상무가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찾았다. 합정동 진출을 앞두고 망원시장 상인들과 큰 마찰을 빚고 있는 홈플러스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지역사회와 사전 협의했어야... 본사에 압력 넣겠다"

20여 년 사회책임투자(SRI) 투자자문가로 활동해온 컴페어는 기관투자자들이 모인 '신흥시장 정보공개 프로젝트(EMDP)' 공동의장을 맡아 국내외 기업들이 윤리, 환경, 노동, 인권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압박해왔다. 이날 오진아 마포구의원과 함께 망원시장을 둘러본 컴페어는 홈플러스가 시장과 가까운 곳에 입점하면서 지역 사회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에 큰 놀라움을 나타냈다.

컴페어는 "서구 사회에선 대형점포가 입점할 때 지역 공동체와 사전 논의하는 절차가 안정화돼 있다"면서 "홈플러스가 지역사회에 정보를 주지 않고 협의도 전혀 없이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건 테스코 본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진입 금지!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반대 전광판과 현수막이 걸린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입구(왼쪽)과 오는 8월경 홈플러스 입점 예정인 합정동 메세나 플러스(오른쪽)
 홈플러스 진입 금지!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반대 전광판과 현수막이 걸린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입구(왼쪽)과 오는 8월경 홈플러스 입점 예정인 합정동 메세나 플러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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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대표 이승한)는 현재 전국에 127개 대형마트와 200여 개 SSM(대형슈퍼마켓;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로 영국에 본사를 둔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망원시장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떨어진 월드컵점을 운영하고 있는 홈플러스는 오는 8월쯤 합정역 메세나폴리스 지하에 대형마트를 개점할 예정이다. 지하철로는 한 정거장, 어른 걸음으로 10분 정도면 닿는 거리다.  

이에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145개 점포, 500명에 이르는 상인들은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며 입점 철회를 요구해왔다. 마포구청도 지역상권 위협을 들어 입점 계획 철회를 권고한 데 이어 이달 초 마포구의회 차원에서 입점 철회 결의문까지 보냈지만 홈플러스 쪽은 계속 답변을 미루고 있다.

조태섭 망원시장 상인회장은 "이건 윤리에 앞서 상식의 문제"라면서 "월드컵점 때문에 이미 수색역 모래내시장이 전멸하고 마포구에 이제 두 시장만 남았는데 합정역에도 들어오면 그 사이에서 끼어 모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입점 철회' 외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왼쪽에서 두번째)가 조태섭 망원시장상인회장(맨 오른쪽), 홍지광 월드컵시장진흥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왼쪽에서 두번째)가 조태섭 망원시장상인회장(맨 오른쪽), 홍지광 월드컵시장진흥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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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컴페어는 "등록 절차가 합법적인 데다 시기가 늦어 투자자들이 입점 자체를 막을 순 없다"면서 "테스코에게 지역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지역사회와 같이 논의하도록 종용하게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테스코 투자자들의 압력 행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상인 대표들은 실망감을 나타내는 한편 홈플러스 '문어발 확장' 실태를 성토했다. 

조태섭 회장은 "국내 대형마트 3개 사 가운데 홈플러스가 가장 악랄하게 도심에 침투하고 있다"면서 "대형마트 사이사이에 SSM까지 군데군데 들어와 주변 슈퍼마켓들이 다 죽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때문에 테스코 브랜드도 치명타"

홍지광 월드컵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홈플러스는 문어발 아닌 지네발"이라면서 "한국 사회에서 홈플러스 때문에 테스코 브랜드가 치명타를 입고 있고 이대로라면 테스코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컴페어는 "이번 사례를 글로벌 기업이 한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사회적 대응력이 미약한 지역에 들어올 때 지역 사회와 어떻게 협의하고 움직여야 하는지 하나의 케이스로 만들겠다"면서 "투자자에겐 브랜드 평판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그것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
 홈플러스 입점 문제를 조사하러 20일 오후 망원시장을 방문한 로렌 컴페어 보스턴 커먼 에셋 매니지먼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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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건 입점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해 지역사회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백화점식이 아닌 특화된 매장을 만들도록 협상하는 게 유일한 카드"라면서 "테스코 쪽에 시장과 직접 경쟁하지 않는 상품 중심으로 구성해 달라고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용산전자상가와 가까운 이마트 용산점의 경우 매장에서 가전 제품을 제외한 전례도 있다.

EMDP 한국팀 공동대표인 박주원 한국CSR평가 상무는 "나이키를 압박해 어린 아이에게 축구공을 만들지 못하게 만든 사례처럼 하청업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글로벌 기업 본사를 압박하는 게 효과적"이라면서 "EMDP 회원 기관들에게 얘기해 국내외 투자자 그룹들의 협조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태그:#홈플러스, #망원시장, #사회책임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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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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