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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7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눈이 따갑고 충혈되고 너무 아팠다. 병원에 가니 각막이 살짝 일어났단다. 약을 처방받았다. 의료용 렌즈를 눈에 넣고 나오니 한쪽 눈이 뿌옇게 보였다. 삼일이 지났다. 그런데 좀처럼 눈의 충혈기와 붓기,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갔다. '포도막염'이란다. 나는 다시 영문도 모르고 많은 약을 받아왔다. 당연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피로하지 않도록 하세요. 충분치 주무시고요. 금주, 금연하세요!"

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직업이 없어 인력회사에 나가 막일을 한다. 당연히 몸은 피곤하다. 거기다 술까지 마셨다. 붓기가 가라앉고 통증이 조금 사라져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이 다시 아파왔다. 또다시 붉게 충혈되고 눈이 부었다. 아예 더 심해져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빛을 보면 눈이 너무 부셔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다시 찾아간 병원. 나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진지한 자세로 답했다.

"혹시 힘든 일 하셨어요?"
"네 막일 나갔는데요."
"아직도 담배 피세요?"
"한 달 전부터 금연하고 있습니다."
"술 드셨어요?"
"어! 네…. 그저께 마셨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포도막염이 더 심해졌어요. 젊은 사람들 실명 원인 2, 3위를 다투는 염증이에요. 정말 힘든 일 하시면 안 됩니다. 앞으로 선을 정해놓고 사셔야 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안 되고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오셔서 안압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막일 하신다고 하셨죠?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 다른 일을 해보시는 게 어때요? 정말 힘든 일 하시면 안 됩니다."

이젠 일도 못한다... 이떻게 먹고 사나

영화 <방가방가> 중
 영화 <방가방가> 중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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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다. 그저 편히 쉬고 금연, 금주하라는 의사의 말이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후회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막일하는 사람에게 막일을 하지 말라니…. 뇌리를 스친 생각 한 줄기.

'이제 어떻게 하지? 정말 큰일이네. 근데 아버지께 어떻게 말하나….'

집에 들어와 아무 생각도 안하고 그저 멍하게 앉아있었다. 아픈 눈을 부여잡았다. 눈물이 나왔다. 나는 이뤄놓은 것도, 해놓은 것도 없이 살았다. 이제 만 26세. 아직 할 것도 많은데 실명이라니…. 일을 쉴 생각을 하니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어쩔 수 없었다. 당장 돈이 급한 것 보다 눈이 먼저고 내 몸이 먼저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서 처방 받은 약을 모조리 챙겨 먹었다. 하루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상태를 지켜보고 처방도 받았다. 그렇게 2주일 정도 흘렀다. 귀찮은 의료용 렌즈를 더 이상 끼우지 않아도 됐다. 안약 가짓수도 줄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일단 치료는 잘 됐네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안압을 측정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충혈되거나 아프면 얼른 병원에 와야 해요.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조심하시고요."

나는 의사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병원을 빠져 나왔다. 물론 지금도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2주일간 겪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위기는 기회, 이제 사랑하며 살란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였다. 당장 막노동은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공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몸이 피곤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자주 다녔던 일자리에 감히 갔다가는 내 눈이 망가질 판이니 말이다. 이젠 먹고 살 일을 찾아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다. 그저 건강한 내 몸 하나 밑천 삼아 살았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조심스러워 졌다. 하지만 다시 힘을 내려고 한다. 오히려 다행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나는 아무생각 없이 청춘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이런 내게 '이제 멈추고 다시 시작하라'는 하늘의 뜻일 수도 있다.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어? 잘 되겠지. 이제 그만 방황하고 정말 내 몸에 맞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물론 지금 상황을 놓고 보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방관할 수는 없다. 인생은 결국 내가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별로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내 인생에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갑자기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작은 요정, '희망'. 너무 작아서 쉽게 무시되는 희망을 나는 믿어보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자. 그래 다시 해보자. 실수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는 게 인생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힘들고 우울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누군가 내 옆을 지켜주고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기만 원했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다. 또, 남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이제 급하게 살지 않으려고 한다. 천천히,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내 자신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이것이 2주일 동안의 아픔이 준 교훈이다. 사랑하며 살자!


태그:#눈병 , #사랑, #병원 , #의사,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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