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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배 인삼주.
 정헌배 인삼주.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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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꼬냑,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중국의 마오타이 등 세계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에 탁주, 소주, 청주 등 '전통주'는 많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단계다. 전통주를 제조하는 곳이 대부분 영세하고 홍보나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통주가 세계적 명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경기도 안성에서 전통주의 세계화를 위해 연구하고 있는 정헌배 인삼주가를 찾아 갔다.


술의 천국 프랑스, 그리고 전통주


"전통주는 문화적 가치를 승계해 주는 도구입니다. 과거와 현대의 문화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정헌배 인삼주가 정헌배 대표.
 정헌배 인삼주가 정헌배 대표.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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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배(56·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청소년기에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사정으로 꿈을 포기하고 공부를 했다. '국가의 수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술의 본고장 프랑스로 주류 마케팅 유학을 결정했다.
당시 그의 생각은 '술은 음료 중 부가가치가 높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가치를 발하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유학 시절 '왜 우리나라엔 꼬냑 같은 명주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나라 전통주를 세계적 명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1995년에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전통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2006년 정헌배 인삼주가 연구소를 세웠다. 연구를 하며 가장 한국적인 재료를 생각해 보니 떠오른 것은 '인삼'이었다.

기존의 인삼주의 경우 과실주에 인삼을 담근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정 교수는 쓴맛과 흙냄새를 없애기 위해 인삼을 건조해 홍삼화 시킨 후 발효과정에서 분말 형태로 첨가를 했다. 이 외에도 최적의 조합을 위해 100가지의 쌀과 12가지의 인삼으로 연구를 했다. 오랜 연구 끝에 2008년 12월 숙성 증류주 '봉'을 출시했다.


황소고집 전통주 외길 인생


정헌배 인삼주가에서 제조되는 술은 단계마다 원칙이 있다.

"가장 좋은 술은 100% 지역 원료, 100% 자연 공법으로 빚는 술입니다. 안성의 유기농 쌀과 근처 비봉산에서 내려오는 약수를 재료로 씁니다. 원료의 생산지와 술의 생산지가 동일하고 정확해야 해요. 지역의 원료를 사용해야 특색 있는 술이 되고 명품주가 됩니다."  

원료뿐만 아니라 제조, 숙성의 단계까지 꼼꼼히 신경을 쓴다. 제조의 경우 정헌배 인삼주가에서 쌀의 도정부터 술의 출하 단계까지 정 교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소량 생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제조장에 CIP(cleaning in place)위생 배관 시설을 설치해 "물이나 술이 외부와의 접촉을 하지 않고 배관을 통해 이동해 깨끗하게 주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숙성단계에서 경우 중요한 것은 동일한 조건과 기록, 그리고 '음악'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재료들이 음악을 통한 좋은 분위기에서 융합이 잘 된다며 "클래식 음악을 틀면 음파가 옹기 속 술을 진동시켜 융합을 활발히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원료와 제조, 그리고 숙성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명품주가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외길을 고집하며 힘든 점도 있다고 한다. 원료의 족보를 확보하기 위해 파종시기를 관리 기록하고, 수확을 직원이 가서 확인하고 건조시키고, 운전기사가 차에 실어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원료의 품질확인의 문서화와 농약검사에서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또한 고품질, 고가격 전략으로 인해 수요계층이 한정되어 있어 경영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정헌배 인삼주가의 목표는 우리나라 전통주의 세계화의 꿈을 이루는 것으로 "희생이 있더라도 이어 나가겠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현재 주문생산을 원칙으로 판매를 하고 있다. 판매 제품은 증류 숙성주 '봉', 약주 '비', 탁주 '진이', '첫쌀 막걸리'가 있고, 서울의 현대, 신세계, 롯데, 갤러리아 백화점,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증류 숙성주 '봉'은 한 옹기(9L)에 130만 원으로 검증된 원료와 3년의 숙성, 고객에게 정기적인 발효상태 보고와 공인 인증서 등으로 130만 원의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한 고객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 술을 주문했다.
 한 고객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 술을 주문했다.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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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익는 옹기마다 가득한 사연     

정헌배 인삼주가의 지하 저장고에는 약 4000개의 옹기가 숨을 쉬며 숙성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옹기마다 바코드와 생산일자와 주문자의 이름 , 사연이 적혀 있다. 주문자가 술을 주문하며 자신의 소망이나 기념을 적어 보내면 사연을 적어 옹기에 붙인다.

옹기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방송인 주병진씨의 이름이 적힌 20통의 옹기다. 옹기 당 시세가격이 13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큰 액수이다. 정 교수가 전통주의 세계화를 계획하던 중 주병진씨가 설명을 듣고 "전통주를 발전시키는 데 흔쾌히 뜻을 함께하겠다"라고 밝히며 '봉' 20통을 주문했다.

이 외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추모 등 특이한 사연이 있는 옹기도 보였다.

정 교수는 "아이의 백일 때 담근 술을 대학입학 때 개봉해 마시거나 부모님의 생신을 기념해 술을 담그면 독특한 선물과 추억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헌배 교수가 인삼주를 가르키며 설명하고 있다.
 정헌배 교수가 인삼주를 가르키며 설명하고 있다.
ⓒ 사진작가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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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양조업계에게 고한다

대한민국의 전통주는 제 가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의 뇌리에 '가격이 싼 술' 로 깊게 파고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헌배 교수는 이러한 까닭은 "인공 감미료와 정확하지 않은 원료의 사용, 일정하지 않은 맛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조과정에 기준을 정하고 지킨다면 세월이 흘러 누가 만들더라도 똑같은 맛을 유지 할 수 있고 제 가격에 판매될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양조를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목표로 생각해야 합니다. 판매에만 급급해 기존방식에 의존하며 연구를 하지 않아요. 술에 대한 철학을 갖고 지역 특색에 맞는 연구를 하면 양조 업계가 발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 교수에게 전통주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찾아오는 사람이 몇 있었다. 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방법을 알아내는 것에 치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술이 오래 묵어야 깊은 맛을 내듯 연구 역시 오랜 기간 고민하고 실험해야 하는 것이다. "빨리 만들어 유통 시키면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져 시장에서 금방 사라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정성들여 좋은 원료로 천천히 담근 술을 우리가 마시는 것보다 후세에 남겨 준다면 좋은 유산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전통주가 아닌 후세에게도 맛을 볼 기회를 선사해 오랫동안 사랑받는 전통주가 되는 게 정 교수의 바람이다.


태그:#명품, #인삼주, #정헌배, #막걸리, #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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