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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부산의 선혜님과 2박3일 설악산 산행을 약속해 놓았다. 선혜님의 아드님 결혼식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서기로 한 산행이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올라서 1박을 한 다음 공룡능선을 타고 오세암에서 다시 1박하고 마등령를 타고 비선대를 거쳐 신흥사로 내려오는 루트였다.

아들을 장가보내고 설악산 산행에 나선 선혜님
 아들을 장가보내고 설악산 산행에 나선 선혜님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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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쫒기는 마음 없이 아주 느긋하게 자유를 만끽하는 산행을 즐길 예정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선혜님은 올해로 67세이시다. 몇 년 전 부터 지리산을 종주할 동행자를 찾다가 작년에 혼자서 3박4일간 종주하셨다.

산에 오르실 때는 천천히 발을 보시며 걷는 것에만 집중하시는 분이다. 산행을 마음공부의 한 과정으로 여기시는 선혜님의 공부 방법이다.

봉정암으로 오르는 길은 계곡의 끝없는 연속이다. 대청봉에서 백담사까지 웅덩이(潭)가 100개나 된다고 하여 백담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혜님은 산에 오르실 때도 발을 보며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면벽수행자의 모습이다.
 선혜님은 산에 오르실 때도 발을 보며 걷는 것에만 집중한다. 면벽수행자의 모습이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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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경지를 탐하다

숲에서는 다람쥐가 주인이다. 가까이 오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아 사람은 손님 취급도 않는 모양이다. 담(潭)에 잠시 발을 담가 쉬게 할 요량으로 물가로 갔다. 여기 저기 검은 반점들이 오갔다.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니 올챙이다. 내 어릴 적 논과 개울에는 이맘때 올챙이 천국이었다.

신발을 벗고 계류에 발을 담갔다. 올챙이의 존재를 잊고 산지 거반 수십 년이다.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내 머릿속에서 잊힌 것이 올챙이 뿐이겠는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선혜님과 계곡에 발 담가가며 느리게 걷는 이 산행이 더욱 귀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대청봉에서 백담사까지 웅덩이가 100개나 된다고 하여 백담사라 했다. 그 하나의 담(潭)의 느런 바위에 신발을 벗고 발을 쉬게 했다. 아니 마음을 쉬게 했다.
 대청봉에서 백담사까지 웅덩이가 100개나 된다고 하여 백담사라 했다. 그 하나의 담(潭)의 느런 바위에 신발을 벗고 발을 쉬게 했다. 아니 마음을 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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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에 도착하여 저녁 공양을 하고 사리불탑으로 올라가 참선을 했다. 이 봉정암은 올해 1월 말, 한국등산학교 동기들과 1박2일의 설악산 산행에서 새벽 5시에 잠시 들렸던 곳이다. 그때는 겨울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단지 법당에서 사리탑을 향해 삼배만 올리고 떠나야 했던 곳이다.

신라의 자장율사에 의해 우리나라로 들어온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다섯 곳을 5대 적멸보궁이라하여 특히 소중히 하고 있다. 영축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이곳 설악산 봉정암이다.

부처님의 뇌불사리를 봉안한 봉정암의 5층탑
 부처님의 뇌불사리를 봉안한 봉정암의 5층탑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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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하지만 수미단에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는다. 진신 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대신 법당 밖에 사리탑을 봉안하거나 계단(戒壇)를 조성한다.

자장스님께서 기도의 감응으로 만난 봉황새를 따라 이곳으로 오셨고 그 봉황이 사라진 이곳을 살피니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에 부처님의 불뇌사리를 봉안하고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다. 그리고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는 의미의 봉정암(鳳頂庵)으로 일렀다. 이런 연유로 봉정암이 살아생전 꼭 참배를 원하는 불자들의 성지가 되었다.

생멸(生滅)이 함께 없어져 무위 적정(無爲寂靜)한 경지, 적멸(寂滅). 도교에서의 무위(無爲)는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며 불교에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는 고요한 경지. 이 궁극적 고요를 생각하며 일찍 잠을 청했다. 방바닥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녹일 만큼 지글지글 끓었다.

산은 선지식(善知識)이다

다음날 우리는 소청으로 올라가 희운각으로 내려서 공룡능선으로 향했다. 날씨는 약간 흐렸다.

올해 67세인 선혜님은 작년에 홀로 3박4일간 지리산을 종주했다.
 올해 67세인 선혜님은 작년에 홀로 3박4일간 지리산을 종주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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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는 능선을 아무 등산장비도 없이 단 둘이서만 갈려니 슬며시 걱정이 되어 희운각 대피소의 젊은이에게 우리가 공룡능선을 타도 문제가 없겠냐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 청년의 시원한 대답이 용기가 되었다.

마등령까지 5.1km를 가면 그곳에서 오세암까지 내려가는 1.4km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짐작했다. 공룡의 등처럼 우람한 바위산들이 불뚝불뚝 서 있는 모습이 장엄하다. 그 바위 들을 오르내리며 능선을 탔다. 안개가 산을 덮었다. 능선 저편의 산봉들이 안개에 숨겨졌다. 이 능선의 저편에는 천화대와 범봉과 왕관봉들이 줄을 지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웅장한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없음을 애석해할 때마다 안개를 살짝 거두어 극히 일부분만을 드러내주었다.

안개에 가려진 산은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장엄하다.
 안개에 가려진 산은 보이지 않아 오히려 더 장엄하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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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걸으면 내일 내 인생의 장엄한 영봉들이 나타날 것 같은 믿음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 다름없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바람대로의 내일을 상상할 뿐, 결코 내일을 오늘 볼 수 없이 오늘을 사는 것이 우리의 안갯속 삶이다.

우리는 결국 영봉과 계곡을 한 눈에 조망하는 희망을 채우지 못하고 공룡능선을 넘었다.

"다음에 다시 오리라."

이 마음속 기약이 또한 속절없는 욕심임을 잘 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오세암길로 접어들고부터는 지루하고 멀었다. 오세암 가까이 오니 미역국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시장기를 돌게 했다. 사방이 산으로 감싸진 오세암은 포근하고 안온했다. 많은 분들이 사찰 순례를 오셨다. 그분들로 인해 사찰은 잔치분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산을 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산을 오른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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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에서 밤을 맞으며 내개 산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혼자 산을 잡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백담사로 내려왔다. 서울행 버스에 산을 두고 몸만 실었다. 하지만 멀어지는 산이 다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젯밤 오세암에서 자문한 것을 그제야 답했다.

"산은 선지식(善知識)이며 세속의 집착으로 부터 자유를 허락하는 곳이다. 아니 적멸의 큰 욕심을 자꾸 넘보게 하는 곳이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설악산, #백담사, #봉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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