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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어떻게 이런 인연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호주여행을 하다가 같은 호스텔을 쓴 스위스 친구를 일주일 후에 버스를 타고 8시간이나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다거나, 프랑스 가는 비행기에서 옆 좌석에 앉은 일본 아주머니를 며칠 후에 몽마르트에서 다시 만난다거나. 이런 인연은 항상 신기하고 소중하다. 프랑스에서 운 좋게도 그런 인연이 한 번 더 있었다.

끌로드 아저씨는 http://lang-8.com/이라는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자기가 배우고 있는 외국어로 글을 쓰면 원어민의 교정을 받을 수가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내가 교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혀 돈이 들거나 하지 않는다. 배우고 있는 외국어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은 학습자들에겐 안성맞춤인 사이트다. 나는 프랑스어로 글 쓰는 연습을 하였고, 끌로드 아저씨는 항상 내가 쓴 글을 세세하게 고쳐주셨다. 게다가 교정하는 글마다 칭찬까지 아끼지 않아서 항상 끌로드 아저씨의 교정을 기대하면서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저씨의 딸이 내가 다니는 학교로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인연이 없다면서 아저씨는 파리에서 여행하고 있는 나와 언니를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http://lang-8.com/ 사이트를 설명하는 첫 화면. 돈 한푼들이지 않고 원어민을 통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이다.
 http://lang-8.com/ 사이트를 설명하는 첫 화면. 돈 한푼들이지 않고 원어민을 통한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이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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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에게 어떤 선물을 사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본, 한국 음식점과 상점이 많은 오페라(Opéra)역 근처에 들려서 한국 식료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마트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 과자들 때문에 본목적은 잊고 한 코너마다 서서 "아, 이거 맛있겠다"를 연발했다. 결국 우리가 먹을 라면 몇 봉지를 고르고 선물은 복분자로 정했다.

파리의 한국, 일본 음식점이 많은 오페라역 주위의 K-mart. 한국식품, 없는 게 없다.
 파리의 한국, 일본 음식점이 많은 오페라역 주위의 K-mart. 한국식품, 없는 게 없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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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 아저씨에게 줄 줄 선물로는 ‘오강이 깨진다’는 복분자로 낙점.
 끌로드 아저씨에게 줄 줄 선물로는 ‘오강이 깨진다’는 복분자로 낙점.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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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파리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근교에서 살고 계셨다. 기차역에서 우리를 맞아주셨는데 밝은 얼굴에 '신바람' 황수관 박사를 떠올리는 쾌활한 웃음을 가지고 계셔서 오래 알고 지낸 분처럼 편했다.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습니다!'라는 말로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3월, 딸이 교환학생으로 한국행이 결정된 그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한국어 교재를 구입하셨다고 한다. 아직 말하는 건 서툴지만 혼자 책으로만 공부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단어와 표현을 알고 계셨다. 정작 8월에 한국으로 출국하는 딸은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니 딸이 아빠의 도움을 받아야 할 판이다. 10월에 딸을 볼 겸 한국에 들르시는 끌로드 아저씨는 지금 한국어 공부에 푹 빠지셨다.

중국어, 일어, 한국어 등 동양권 언어에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계신 파리의 신바람 아저씨, 끌로드 부부
 중국어, 일어, 한국어 등 동양권 언어에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계신 파리의 신바람 아저씨, 끌로드 부부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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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아저씨는 프랑스의 일본계회사에 다녔을 때에는 일본어를 독학하여 부인과 일본여행을 가기도 하셨다. 그때부터 동양에 관심이 생겼는데, 한국어를 시작하기 전에는 중국어에도 도전하셨다고 한다. 아저씨는 여행할 때 기본적으로나마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훨씬 현지인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하셨다. 사람만나기 좋아하는 끌로드 아저씨에게 외국어 공부는 '부담'이 아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도구', 즐길 수 있는 '취미' 인 것 같았다.

끌로드 아저씨네 집에서의 첫 날 저녁은 여러가지 치즈를 맛볼 수 있는 라클렛으로 장식했다.
 끌로드 아저씨네 집에서의 첫 날 저녁은 여러가지 치즈를 맛볼 수 있는 라클렛으로 장식했다.
ⓒ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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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 마리 아주머니께서는 푸짐한 저녁을 준비해주셨다. 그날 저녁은 '라끌렛(raclette)'이었다. 치즈를 그릴에 녹여서 삶은 감자나 여러 가지 종류의 햄(charcuterie)과 같이 먹는 요리이다. 여러 가지 치즈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종류의 햄도 같이 맛볼 수 있었다. 배는 불러도 자꾸 손은 치즈를 올린 그릴로 가도록하는 마력을 가진 아주 치명적인 요리였다. 이렇게 배가 불러서 어떻게 잠이 드나 싶었지만 얘기하기 좋아하는 끌로드 아저씨와 내가 처음 사이트에 올렸던 글에 대한 이야기부터, 외국어 공부, 한국에 대한 대화를 하느라 자정이 돼서야 저녁식사가 끝났다. 덕분에 저녁식사 소화 못 하고 잠자리에 들 걱정은 붙들어 맸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외국어공부, #파리, #끌로드, #라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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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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