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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입구의 조그만 시골마을은 민박 간판을 건 집들과 편의점, 건어물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버스에 오를 때 운전기사가 말하길 손님이 다 차면 출발한다고 했다. 자가용은 무조건 곁에 딸린 주차장에 대 놓고 버스만 타고 가는 것이 철칙이라 했다.

봉정암
 봉정암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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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백담사에서 내려 봉정암까지 6시간을 걸어 올라가겠단 손님들은 제법 많았다. 그들은 전부 단단히 채비를 해가지고 온 듯 보였다. 등산화, 등산복, 그리고 배낭엔 물통과 각종 간단한 음식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처럼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급작스런 도전을 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속에는 그곳에 가려는 나름의 이유가 한 가지씩은 있을지도 몰랐다. 등산이 목적인 사람이라면 힘든 코스를 거쳐 가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것이겠고, 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들은 전국 다섯 곳의 적멸보궁 중에서 기도발이 가장 센 곳이란 소문 때문에 봉정암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적멸보궁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유일하게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바로 봉정암이다. 게다가 가장 산 깊숙이 자리한 적멸보궁이면서 설악산의 절경과 어우러져 매우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같은 바탕에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정진을 끝낸 자장율사는 부처님의 뇌 사리, 진신 사리 등을 받아서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신 사리를 모실 자리를 찾기 위해 설악산에서 기도 7일째가 되던 날에 오색찬란한 봉황새가 날아왔기에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그 봉황새를 따라서 설악산 남쪽으로 내려왔다.

봉황은 어떤 큰 바위 앞에서 이르러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부처님의 모습과 그대로 빼닮은 형상이었다. 게다가 봉황이 사라진 곳은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자장율사는 이 자리가 명당이라 여겨 5층 사리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다. 그리고 봉황이 도착했다가 사라진 곳이 부처님의 이마(頂)에 해당해서 사찰의 이름을 봉정암(鳳頂庵)이라 정했다.

봉정암 진신사리터
 봉정암 진신사리터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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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 쉽게 갈 수 없는 고난의 길. 이곳은 어쩌면 인생과도 닮았다 할 것이다. 그토록 힘든 고난의 길이기에 젊은 사람에게는 도전의 장이라고들 말하고, 죽음을 앞둔 자들에겐 그나마 몸이 건강할 때 마지막 소망을 다해 오르는 곳이라고들 한다. 그래선지 강단 없는 젊음을 나무라던 산행 길의 낯선 할머니들은 온 신심을 다해 오르고 있었다.

그 옛날 봉정암은 승려들이 조용히 기도드리는 곳으로만 알려졌는데 어느새 관광객들의 답사 코스처럼 돼버렸다고도 한다. 그리고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반기는 것에는 아기다람쥐들도 있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던 것인지, 이미 사람의 습성에 철저히 단련이 된 녀석들은 사람 발소리만 들리면 달려 나왔다. 그리고 사람이 손을 내밀면 먹을 것을 주는가 싶어서 앞발을 세워 먹이를 받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녀석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흘러가는 냇물에 세수를 하고 발을 담그고, 그러면서 산에서는 어느 누구하고도 친구가 되고 서로 눈인사 정도는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었다. 마지막의 가장 힘든 코스인 '깔딱고개'가 남았다며 앞서 가던 할머니들은 숨을 몰아쉬었다. 팔순의 나이에도 거침 없이 올라가는데 젊은이가 힘들다며 쉬고 있으니 '왜 그러고 있누'하며 혀를 끌끌 차시는 통에 앉아있기가 부끄러워졌다.

봉정암에서 바라본 설악산
 봉정암에서 바라본 설악산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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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저녁 어스름이 내릴 즈음에 봉정암에 이르렀다. 밥을 하는 것인지 하얀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올랐다. 바깥 의자에서건 공양간에서건 너나 할 것 없이 대접 가득 미역국에 만 밥을 들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힘들게 올라와서 그런지 그토록 달고 맛있는 밥은 처음이다 싶었다. 헬기로 며칠에 한 번씩 가져오는 감자는 몇 푸대를 삶아놔도 금방 동나 버린다고 했다. 산 아래에 비해서 불편하긴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큰 가치로 부각되는 느낌이었다.

밤이 깊었다. 법당 안은 아줌마들의 수다로 가득 찼다. 법당 바닥에다 기도방석을 깔고 누운 후 그 위에 기도방석을 덮고 자야 한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할 수 없었다. 창밖에선 가끔씩 후두둑 빗방울이 나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했다. 불이 다 꺼진 법당 안. 단 하나 불을 밝힌 전등 아래서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내려가서 발송할 일거리들을 하나씩 처리해나갔다. 어느새 밤이 깊어지자 코고는 소리와 자판소리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덧붙이는 글 | 7월 첫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봉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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