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0일 오후 4시 40분]

*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피에타 포스터

▲ 영화 피에타 포스터 ⓒ NEW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거장 김기덕 영화 <피에타>의  줄거리는 특별한 게 없다. 전작 <시간>에서의 독특한 설정, 가령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한 여자가 외모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버려질까 두려워한다는 설정, 그래서 성형수술을 하고 다른 사람인 양 다시 남친에게 나타나 꼬신다는 설정. 꼬심에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시험에 보는 설정. 얼굴은 다르지만 사람에게 풍겨나오는 옛 여인에 대한 정이 그를 제 2의 그녀에게 넘어가게 하는데 바로 그때 내가 너의 옛 여자친구였다며 실망하며 잔혹하게 남친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그 여자 이야기 등의 특별함이 <피에타>에는 없다.

다만 피에타(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을 재현한 포스터와 카피(결코 용서할 수 없는 두남녀)에서 근친상간 코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까. 예상했다가 허가 찔린 것 외에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들을 몇몇 코드 때문에 불편한 시선으로 보던 대중들(물론 한국 사람들)은 이번 작품은 보기에 덜 힘들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잔인한 행위, 성적인 코드도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수위가 낮다. 이는 역으로 자신의 상상력에서 분출되는 씬들이나 줄거리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해 편집했음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광팬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간혹 보여지는 1차원적인 표현 때문에 작품에 비해 늘 낮은 평가를 받는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그림은 대중의 입맛에 맞추었지만 그렇다고 진정성까지 버리진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작가 지망생인 내가 탄성을 지르는 이유다. 큰 줄거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기승전결로 이어져 간다. 하지만 그 속에 자잘한 씬 들에서는 여전히 감독은 자신의 색깔을 녹여 날카롭게 현실을 해부해 우리에게 들이민다. 평소 작가 지망생으로서 극본을 쓰다 항상 불만인 것은 과연 이 상황에 어울릴만한 씬들이 정말 진짜처럼 보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다. 머리로 계산해 쓰다가는 금방 사람들에게 들킨다. 영혼 없는 캐릭터를 한 줄로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영화 피에타 널 버려 미안하다고 여자가 강도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

▲ 영화 피에타 널 버려 미안하다고 여자가 강도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 ⓒ NEW


큰 줄거리는 예고편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신체를 훼손하는 끔찍한 방법으로 보험금을 받아내는 남자 이강도가 어느날 자신이 그를 버린 엄마라고 찾아오는 한 여자에 의해 정신이 붕괴되어가다 못해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처음 만나는 날을 난 기억한다. 돈을 갚지 못하는 남자를 불구로 만들고 큰 건 했다는 듯 살아있는 닭의 목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좁은 골목을 그(이정진)는 간다.  이내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넘어지며 그는 닭을 놓친다. 이때 닭을 잡아다주는 그의 엄마라고 지칭하는 여자(조민수)가 "널 버려서 미안해"라고 말을 내뱉으며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다가 강도는 어느새 그의 마음 한쪽을 빼꼼이 열어준다. 이런 그의 심경변화를 감독은 장어로 때론,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오브제 삼아 나타낸다. 강도의 마음은 촌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그 마음을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은 쫄깃쫄깃하다. 영화를 만들 때 자기 생각을 안 들켜야 한다는 원칙을 어느 정도 지킨 셈이다.

장어는 그의 엄마라고 지칭하는 여자가 그에게 사다준 것이며 장어 목엔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종이가 달려 있다. 강도는 장어를 어항에 넣어둔다. 그리고 돈을 갚지 못해 자살 시도한 남자를 접하며 허탈하고 공허해지는 찰나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또 엄마라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는 엄마라고 지칭하는 그녀와 나들이를 가고 나이에 맞지 않게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엄마랑 커플로 나눠 낀다. 바로 이때 감독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장면을 하나 만들어낸다. 우선 배경은 아이들을 위해 이벤트를 여는 한 광장이다. 그곳에서 그는 그녀랑 어린아이마냥 해맑게 논다. 그 모습을 보던 다 자란 보통의 남자가 그를 비웃고 강도는 급기야 안경을 벗어던지며 그에게 위압적으로 다가간다. 선과 악을 아슬아슬하게 오고가는 강도의 모습이 참 강렬하다. 에너지와 에너지가 충돌한다. 기막히게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 보여준다.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 아니 이미 경험한 이야기.

영화 피에타 잠든 강도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씬

▲ 영화 피에타 잠든 강도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씬 ⓒ NEW


"불안해. 갑자기 사라질 것 같아. 다시 혼자가 되면 못살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가 난 참 짠하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자라나지 못한 채 혼자 자라온 사람이 나이 서른 먹어서야 처음 타인과의 접촉을 배워가는 것이다.

감독은 늦었다고 해서, 남들보다 어눌하다 해서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괄시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서 말해준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남들보다 어떤 면에서 어눌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순간 악으로 돌변하는 거,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거, 바로 이것이 순식간에 욱해서 사람 죽이기도 하는 상황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 절대절명인 순간, 그 순간을 포착을 해 직접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악은 악을 재생산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도가 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 때론 철거 직전 건물 위에서 사람을 밀기도 하고 공장 도구로 그들의 신체를 훼손하기도 하는데 피해자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당연히 좋지 않다. 불에 태워 죽이려고 그의 집에 침입하질 않나, 자식에게 그에 대한 복수의 씨앗을 심어주지는 않나, 차에 매달아 갈기갈기 찢게 되는 상상을 한다는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때론 악은 복수도 만든다. 엄마라고 지칭하던 여자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자작극을 벌여 위험한 순간에 있음을 시도때도 없이 강도에게 알린다. 결국 그에게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주는데…. 강도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은 대가로 강도의 영혼을 빼앗아 가는 그녀는 악을 품고 있었다.

영화 피에타 복수를 꿈꾸어왔지만 강도의 여린면을 발견하고 갈등하는 여자

▲ 영화 피에타 복수를 꿈꾸어왔지만 강도의 여린면을 발견하고 갈등하는 여자 ⓒ NEW

"왜 그랬어. 왜 그렇게 잔인했어. 용서할 수 없어."

이는 예고편에 나오던 그 여자의 말이다. 강도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잔인하게 살아왔을까. 그의 영화를 보는 끝자락까지 보다보면 답은 나온다.

"근데 왜 이렇게 슬프니? 이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불쌍해. 강도 불쌍해"라고 울면서도 복수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말로 답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정에 굶주린 이강도가 정을 받으면서 보여주는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을 기억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비를 베풀고(영화 제목 '피에타' 의미)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현대의 모든 큰 전쟁부터 작은 일상의 범죄까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공범이며 죄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 누구도 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신에게 자비를 바라는 뜻에서 <피에타>라고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이런 감독의 생각처럼 이강도가 자라온 환경이 조금 나았다면, 조금만 일찍 사랑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여유를 알았다면 이강도는 악마새끼가 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싸이월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김기덕 피에타 이정진 조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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