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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던에서 꼭 해야 할 일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곳을 가족과 함께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영국인들이 즐긴다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마시기였다. 우리가 명품 홍차를 맛보기 위해 찾아가기로 한 곳은 바로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 나는 무엇 때문에 영국 홍차가 유명하고 과연 영국 홍차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아내가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사원에서부터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사원 내에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역에 와서 화장실을 찾았다. 웨스트민스터 역은 마치 국제공항의 지하철역만큼 깊고 큰 여러 개의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되어 있었다. 주변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 일단 지하철에 올라탔다. 나는 아내, 신영이와 함께 지하철 쥬빌리(Jubilee) 선을 타고 그린 파크(Green Park) 역으로 향했다.

아내는 이곳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 그린파크역 화장실 아내는 이곳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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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린 파크 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히 화장실 표지판이 눈에 들어와서 화장실은 어렵지 않게 찾아갔으나 화장실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장사진이다. 런던 올림픽 때문에 지하철 내부가 공사 중이라서 더 혼란스럽다. 화장실 밖에서 기다렸지만 화장실 안은 결코 깨끗하지 않아 보였다. 볼일을 오랫동안 참은 아내는 그 긴 줄에 기분이 몹시 상해 있었다. 가족의 여행을 책임진 가이드로서 아내의 한 마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불찰에서 우리의 가족여행 초반부는 분위기가 썰렁했다.

오늘 여행일정은 아내가 사랑할 코스로 짜였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아내는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 금강산 관광도 식후경이듯이 런던 관광도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아내는 그린파크 역에서 포트넘 앤 메이슨 가게까지 피카딜리(Piccadilly)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영국의 홍차를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 포트넘 앤 메이슨 영국의 홍차를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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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넘 앤 메이슨을 상징하는 민트색의 큰 건물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차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포트넘 앤 메이슨의 건물이 워낙 고풍스럽고 커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라운드 층의 민트색 고풍스런 외관은 나를 설레게 할 정도로 품위가 있다. 나는 아내를 달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각 계절별로 달라진다는 포트넘 앤 메이슨의 쇼윈도 디스플레이는 지금 감상할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들어간 매장은 그라운드 층, 즉 1층이 아니라 0층이다. 가게의 내부는 마치 호텔 로비같이 시원스럽고 중앙은 타원형으로 뚫린 개방구를 통해 지하 1층의 와인 가득한 식료품 매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포트넘 앤 메이슨 입구의 그라운드 층 매장에는 온통 각종 홍차(紅茶) 제품이 가득하고 가게를 대표하는 다기(茶器), 차로 만든 각종 고급 티 푸드, 각종 케익과 그릇들이 있다.

영국의 전통을 자랑하는 차 매장답게 품위가 있다.
▲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 내부 영국의 전통을 자랑하는 차 매장답게 품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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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은 정말이지 구경하는 재미만 해도 쏠쏠한 곳이다. 여자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만한 런던의 핫스팟이고 특히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템들이 가득한 곳이다. 나와 신영이는 화가 난 아내가 포트넘 앤 메이슨을 차분히 둘러보도록 놔두자고 했다. 신영이의 제안대로 아내는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홍차 제품과 다기를 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가 풀리고 있었다.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 내부에서는 다양한 다기를 구경할 수 있다.
▲ 티포트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 내부에서는 다양한 다기를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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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넘 앤 메이슨의 역사는 무려 300년을 뛰어넘는다. 1707년에 포트넘(Fortnum)과 H.메이슨(H. Mason)이 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거리에 공동으로 설립한 포트넘 앤 메이슨은 창립 당시에는 식료품점이었다. 영국의 홍차 브랜드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포트넘 앤 메이슨이 1921년부터 홍차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회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는 영국 왕실과 귀족들에게 홍차와 식료품을 납품하기 시작하는데 왕실이 마시기 시작한 이 홍차는 결국 홍차의 나라 영국을 대표하는 홍차 브랜드가 되었다.

포트넘 앤 메이슨의 홍차 제품은 고급스러운 포장으로도 유명하고 독특한 고유의 포장은 세계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하고 있다. 모던한 디자인을 워낙 좋아하는 아내는 제품의 포장과 함께 홍차를 보관하는 통인 티 캐디에서부터 감탄을 하고 있다. 큰 철제 휴지통만한 크기의 홍차 티 캐디는 홍차를 넘어서 홍차의 깡통 포장을 사고 싶게 만든다. 티 캐디가 워낙 커서 수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디자인도 영국적이어서 소장할만한 가치도 있다.

홍차뿐만 아니라 홍차를 포장한 이 티 캐디도 욕심이 난다.
▲ 티 캐디 홍차뿐만 아니라 홍차를 포장한 이 티 캐디도 욕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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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국의 유명 홍차도 즐기고 포장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호텔까지 들고 갈 짐이 커진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다. 우리는 큰 홍차제품, 다르질링(Darjeeling) 차를 샀다. 포장용기 밖에는 포트넘 앤 메이슨의 로고인 시계가 그려져 있다. 이 시계는 영국의 대표적인 티타임인 애프터눈 티 마시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그래서 항상 4시를 가리키고 있다.

다양한 차를 보면서 어떤 차를 살지 갈등이 생긴다.
▲ 차 선물세트 다양한 차를 보면서 어떤 차를 살지 갈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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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5층까지 있고 내부에서는 육중한 나무계단을 이용해 층을 오르내린다. 이곳은 홍차와 함께 식료품을 파는 대형 매장도 있다. 식료품 매장에는 쿠키, 잼, 베이커리, 과일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다.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으로 이동하지만 짙은 갈색 목재 난간과 예쁘게 빨간색 카펫이 깔린 계단은 예쁘기만 하다.

이 전통의 가게에 온 목적은 영국의 유명 홍차를 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 가게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세트를 먹기 위함이다. 고급스럽다는 4층의 식당으로 올라갔는데 예상대로 예약 손님들로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는 다시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영국에서는 1층이 우리나라의 2층이라 약간 헷갈린다. 이곳에서도 오후 3시부터 티 세트를 판매하는데 4층 식당에 비해서는 여유가 있고 티세트의 가격도 더 저렴하다.

종업원이 친절하게 차 내리는 법을 직접 보여준다.
▲ 애프터눈 티 따르기 종업원이 친절하게 차 내리는 법을 직접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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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식당에 들어오니 마음이 즐겁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도 오후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영국의 전통적인 차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 대신 먹기 위해서 굉장히 유명하다는 런던의 애프터눈 티를 주문했다. 나는 홍차와 스콘,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홍차는 알라딘의 램프같이 생긴 주전자 포트에 담겨 애프터눈 티 세트 중 가장 먼저 나왔다. 전통의 애프터눈 티 식당답게 차 주전자는 역사가 두꺼운 갑옷처럼 생겼다. 차는 포트넘 앤 메이슨 특유의 에메랄드 빛 찻잔에 담겨 나왔다. 종업원이 오더니 차를 거르는 채를 찻잔 위에 걸쳐 놓고 그 위에 홍차를 직접 부어준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찻물을 우리는 남자 종업원은 친절한데다가 우리가 그의 동작을 사진으로 계속 찍어도 자연스럽게 모델이 되어 준다. 찻 물이 넉넉하니 더 마시고 싶으면 몇 번이고 더 차를 우려 먹을 수 있다.

따뜻한 스콘의 맛이 너무 부드럽다.
▲ 애프터눈 티 스콘 따뜻한 스콘의 맛이 너무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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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애프터눈 티를 먹을 때는 따뜻한 것에서부터 차가운 것 순서로 먹는다. 식당의 오븐기에서 방금 구워진 스콘이 나왔다. 가장 먼저 입에 넣은 따뜻한 크랜베리 스콘(Cranberry Scorn)은 맛이 고소한데다가 스콘에 담긴 크랜베리에서 약간 신맛이 난다. 스콘에는 버터와 함께 딸기잼이 딸려 나왔다. 버터는 방금 전에 만들어진 듯이 윤기가 나며 부드럽고 상큼하게 입 속에서 녹는다. 우리는 순서대로 닭고기 살을 발라 넣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홍차와 잘 어울리는 은은한 맛이 난다.
▲ 닭고기 샌드위치 홍차와 잘 어울리는 은은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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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한 맛의 블랙 티도 마시고 우유가 들어간 따뜻한 홍차도 마신다. 우리가 마신 차는 로열 브랜드(Royal Blend). 맛이 클래식하고 묵직하고 은은하다. 우리는 퀸 앤 브랜드(Queen Anne blend)의 향기로움과 나긋함도 함께 마신다. 차의 이름같이 여성처럼 부드럽다.

애프터눈 티 마시기는 영국에서 꼭 해봐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 애프터눈 티 애프터눈 티 마시기는 영국에서 꼭 해봐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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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볼 수 없는 영국 전통의 풍경과 분위기에 신영이도 보는 눈이 즐겁다. 나도 처음 보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애프터눈 티의 원조인 나라 영국에서 직접 애프터눈 티를 경험해 본다. 신생의 호텔에서 만든 애프터눈 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통이 느껴지는 맛이다. 나는 영국의 오후의 홍차문화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이곳은 상상했던 영국의 애프터눈 티, 그 이상의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여행, #런던,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 #애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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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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