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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로 발표된 지지율을 종합하면 말 그대로 '혼전' 양상이다. 이번 대선은 17대 대선과는 달리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의 승부가 벌어질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에 결과는 역시 '뚜껑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다. 선거일이 다가 올수록 두 후보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고 있다. 그중 아동 복지와 관련된 공약 중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있다.

우선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들이 아동 복지를 공약으로 내 놓았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만 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선거에서 투표권이 없는 아동은 늘 찬밥 신세였기 때문이다. 무상의료 무상급식등 최근 치러진 일련의 선거에서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이제는 그 복지 영역의 한 축인 아동 복지도 조금이나마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먼저 아동 복지 공약을 내놓은 두 대선 후보의 공약을 살펴 보자.

박근혜 문제인 두 대선후보의 아동 복지 공약을 비교한 내용이다.
▲ 아동 교육복지 공약 박근혜 문제인 두 대선후보의 아동 복지 공약을 비교한 내용이다.
ⓒ (사)전구 지역아동센터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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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비교를 하면 일견 두 후보의 공약은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방과후 학교 수업, 온종일 돌봄 교실, 지역아동센터 연계.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동 복지를 대하는 두 후보의 철학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자. 박후보의 아동 복지는 '학교'를 중심에 두고 있다. 반면 민주당 문제인 후보는 학교 밖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중심에 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두 후보의 공약을 보며 '악마는 디테일 뒤에 숨어 있다'는 서양 속담이 생각난다.

학교를 중심에 둔 아동복지, 바람직할까

학교를 중심에 둔 아동 복지. 이것은 획일화된 복지의 전형이다. 맞벌이 가정을 위해서 밤 열시까지 아이를 학교에서 돌보겠다는 취지는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그럴싸 하다. 특히 가정이 분화되고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 요즘 밤늦게까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부모들에게는 정말 솔깃한 공약이다. 일정 부분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경력 단절'의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다른 공약에 견줘 보면 예산 확보도 어렵지 않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아이를 중심에 놓고 보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은 아무리 좋은 시설을 만들고 훌륭한 선생님이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해도 '권위'와 '획일화'의 상징이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내 중학교 재학 시절 반강제적으로 행해진 야간 자율학습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9시가 넘어서 어둡고 안개 자욱한 시골길을 1시간이 넘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했던 기억, 그리고 그 공포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10분, 아니 5분만 시간이 생겨도 교실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운동장에선 '축구' 전·후반을 뛰고 올 수 있는 학생들에게 방과후 학교 수업은 얼마나 효율적일까?

드라마 <학교2013>에서 승리고 2학년 2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정인재(장나라 분)와 강세찬(최다니엘 분)의 대화 장면. 두 사람은 학교와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로인해 매번 갈등을 벌인다.
 드라마 <학교2013>에서 승리고 2학년 2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정인재(장나라 분)와 강세찬(최다니엘 분)의 대화 장면. 두 사람은 학교와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그로인해 매번 갈등을 벌인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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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학교는 기댈 수 있어야 하잖아요."
"선생님은 나한테 기댈 수 있어요?"
"내가 미쳤어요. 선생님한테 기대게"
"마찬가지에요. 아이들도 학교를 싫어해요. 싫은 사람한테 기댈 수 있겠어요?"

보충수업을 앞두고 도망가는 학생들. 그 학생들을 두고 비정규직 교사인 정인재(장나라 분)와 강남 스타 강사지만 불법과외로 삼류 고등학교에서 자원봉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강세찬(최다니엘 분)의 대화다(드라마 <학교2013>).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정인재가 이상주의자라면 강세찬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상 단지 그 정도로만 생각 하는 속물이자 현실주의자다.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기본적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가장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권위'와 '억압'의 상징인 학교는 적당할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집이 크고 화려해도 그 안에서 자신을 품어줄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없다면 그 아이는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집이 크고 화려할수록 그 외로움은 더할 것이다. 게임에 열광하고 PC방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린다.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아이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위축 될 수밖에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고 아동 돌봄은 '동네 골목길'에 있다

방과후 돌봄 서비스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훌륭하고 좋을지는 몰라도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서적 지지'는 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프로그램 강사로 채워지는 방과후 학교 수업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밀접 할 수 있을까?

이런 디테일(섬세함)을 외면하고 만든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물론 방과후 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선생님의 관심과 열정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염려가 되는 까닭은 정책 입안자들의 철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아동 복지 정책은 예산 낭비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근무하는 시설의 아이들 말을 들어 보면 요즘은 학교 담임선생님도 가정 방문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물며 프로그램 강사는 시간외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그런 정서적 지지를 줄 수 있을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아동 돌봄은 지역 사회의 '골목길' 에 있다.

개구리네 한솥밥 이야기는 안 되는 걸까?

"개구리 한마리가 쌀을 얻으러 형네 집에 간다. 도중에, 개구리는 보도랑에서 발을 다친 소시랑게, 길 잃은 방아다리, 땅 구멍에 빠진 소똥굴이, 풀대에 걸린 하늘소, 마지막으로 물에 빠진 개똥벌레를 도와준다. 형 집에 도착했을때는 물경 밤이 깊고 말았다. 더욱이 형이 준 쌀은 무거워서 들고 가기가 힘들었다. 그때 도움을 받았던 개똥벌레가 나타나 길을 밝혀 준다. 무거운 쌀은 하늘소가 날라 준다. 쇠똥구리가 길 복판에 놓인 쇠똥더미를 치워 준다. 방아다리가 방아를 찧어 주고 그 쌀로 소시랑게가 밥을 지어 준다. 서로 도우며 쌀을 나르고 밥을 지은 개구리와 친구들은 마당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백석 <개구리네 한솥밥> 중)

위 시는 백석 시인의 동화시인 <개구리네 한솥밥>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에게 매일 저녁 급식을 한다. 주방 선생님은 음식 솜씨가 꽤 좋은 편이다.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선생님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물론 군기 반장(?)을 해야 하는 나는 간혹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지난 여름 급식 선생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한동안 다른 선생님이 음식을 했는데 급식 시간마다 수많은 아이들의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아무리 음식 솜씨가 좋고 반찬이 맛있어도 아이들은 먹기 싫은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반찬이 남으면 다음 날 점심을 먹을 때가 있는데 전날 먹던 맛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혼자서는 맛이 나지 않는다. 함께 먹어야 맛있다. 함께 해야 행복하다. 남을 칭찬하든 험담을 하든 함께 정서를 공유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한다. 개구리네 한솥밥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방과후 학교-동네 도서관-지역 아동센터의 네트워크 연계

지난 11월 22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종사자 처우개선및 운영비 현실화를 위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제 5차 지역아동센터 전국 대회 지난 11월 22일 국회 의사당 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종사자 처우개선및 운영비 현실화를 위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풍선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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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지역 밀착형이다. 방과후 학교·동네 도서관·지역아동센터 그리고 아동 보호 전문기관을 비롯한 다양한 그물망을 연결시키는 돌봄 서비스 체계 구축. 그의 공약을 무조건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선 후보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라는 말이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한 각 영역의 종사자들은 이미 이런 체계 안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체계는 이미 갖춰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를 공고히 할 인력과 예산이다. 얼마나 실천 할 수 있냐는 의지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문 후보의 공약은 아직 구체성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의 공약 속엔 지역사회의 네트워크와 인적 구성을 활용 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상호협력·공동체성 회복등 복지 영역이 추구해야 할 방향에 조금 더 근접해 있다.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담으려는 고민이 필요

출범 초기 행정부를 통폐합 시키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는 학교와 원전만은 예외로 두려고 한다. 왜 그럴까? 관리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 보복부(보건복지부)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통합된 해양 수산부 부활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해 당사자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물론 복지 영역 또한 다양성이 담겨야 한다. 아동 복지를 학교라는 거대한 '틀'속에 가둬 버리려는 획일성은 사라져야 한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갈등은 주로 대형화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근본 원인은 모두 큰 것을 지향하는 데서 발생한다. 공교육의 긍극적 목표는 학업도 중요하지만 인성과 품성 또한 중요하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개인을 한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학교는 가장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작은 학교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그 민주적인 절차를 따라야 하듯이 우리 사회의 복지 영역 또한 다양한 요구에 대한 반영이 있어야 한다.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이 지름길이다. 한 아이를 올바로 성장시키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듯이. 악마는 디테일 뒤에 숨어있다. 그리고 아동 돌봄은, 특히 돌봄이 필요한 계층의 아동에겐 지역사회의 골목골목에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회 예결위에는 2013년도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한 각 복지 분야의 예산안이 올라가 있다. 이미 예산안은 올라가 있지만 내년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다음 행정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예산안은 확정되지 않을 것이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예산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 정치인들은 늘 운영비 현실화 약속을 하지만 지금까지는 공염불이었다. 앞서 언급한 아동을 위한 돌봄 체계 구축은 결국 예산 확보의 문제다. 12월 19일. 이제 며칠 뒤면 향후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 갈 대통령이 결정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가 그랬듯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네거티브도 많았던 대통령 선거. 향후 5년 대한민국 아동 복지의 운명을 결정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태그:#학교, #지역아동센터, #문제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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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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