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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막바지로 달려가면서 문화계에서는 벌써부터 내년을 주목해야 할 작품들을 조명하느라 분주합니다. 2013년에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1000만 관객 신화를 이어갈 대작 영화나 한류 열풍을 재점화 시킬 드라마, 그리고 제2의 싸이가 기대되는 쟁쟁한 가수들의 신작 앨범 등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게임계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특히 올 한 해 각종 규제 정책에 힘겨워 했던 온라인게임은 내로라 하는 대작들을 앞세워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간 게임 시장의 패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보군 중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게임이 오는 1월 2일부터 정식시범서비스를 시작할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한 '아키에이지'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 4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라거나 6년 동안 개발한 '기대작'이라고만 보기에는 뭔가 오묘합니다. 일반적인 게임들이 강조하는 화려한 그래픽이나 뛰어난 기술력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아키에이지'는 전체가 아닌 '개인', 강요가 아닌 '선택', 그리고 구속이 아닌 '자유' 등을 강조하며 게임이 가진 사회적 속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게임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하면서 말이지요.

바로 이 점이 저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게임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인 이상 현실의 모습을 반영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의무를 가진 것은 맞지만 지금의 게임들은 그런 도전에 망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적인 사냥을 통해 좋은 아이템을 확보하고 다시 그 아이템으로 더 어려운 싸움에 나서는 말초적인 쾌감에 집중하는 흐름 속에서 분명 '아키에이지'가 추구하는 것들은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를 노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엑스엘게임즈 사옥을 방문해 송재경 대표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 경향게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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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경 대표는 대한민국 MMOPRG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리니지'로, 지난 1998년에 공개된 이 게임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인기를 이어가며 대표적인 인기 게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올린 매출만 무려 1조 원을 넘어섰으며 게임 내에서 거래되는 모든 경제시스템(지하경제 아닙니다, 게임 내 경제입니다)의 규모 역시 1조 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합니다.

이런 '리니지'의 성공 요인은 철저한 '약육강식'입니다. 게임 내에서 높은 레벨과 좋은 아이템을 가진 강자는 약자위에 군림하며 아무 온갖 특혜를 독점할 수 있습니다. 즉, 송재경은 '리니지'를 통해 당시대를 구성했던 불편한 진실 중 하나인 '힘의 논리'를 적나라하게 재현하며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신작 '아키에이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과연 14년 전 그는 어떤 생각으로 '리니지'를 세상에 선보였던 것일까요.

"리니지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부조리한 현실을 지적한 게임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힘의 논리가 어느 정도 부각되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강자가 약자를 아무 거리낌 없이 억누르고 이용하는 모습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게임을 통해 지적하고 싶었다.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사회를 게임으로 옮겨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리니지가 무법지대를 목표로 한 게임은 아니다. 힘의 논리를 강조하되 최소한 지켜야 할 상식과 기준을 게임사가 직접 관리하면서 '상식이 통하는 힘의 논리'를 구현했다. 이것이 리니지가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라고 본다.

아쉬운 건 게임을 통해 지적했던 현실의 불편한 진실이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게임만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웃음)."

14년 전에 게임을 통해 지적했던 현실의 모순이 오히려 더 심화됐다는 지적은 씁쓸한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리니지가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힘의 논리에 지배 당하는 세상이 여전히 변함없음을 반증하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1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아키에이지'는 이런 리니지와는 다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의 논리는 여전한데 게임은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아키에이지가 어떤 연유에서 탄생된 게임인지 궁금했습니다.

"리니지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아키에이지는 현실에 대한 반박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니지를 만들 당시 세상은 획일화된 가치만을 좇고 있었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런 현상은 오히려 더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획일화된 사회다. 다양성이 없다. 경쟁에만 빠져 한명의 '위너'를 위한 다수의 '루저'가 존재하는 모습이다.

아키에이지는 이런 사회에 대한 거부반응에서 시작됐다. 이 게임은 하나의 가치로 세상을 줄 세우는 건 이제 그만 하자는 일종의 메시지다. 매일 싸우고 경쟁하고 비교하는 게임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하고 즐김으로서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자유로운 재미를 안겨주고 싶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삶의 방식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대안을 제시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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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설명처럼 '현실에 대한 반박'을 위해 실제로 아키에이지에는 의미심장한 장치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력' 시스템입니다. '노동력'은 일종의 체력으로 게임 내에서 어떤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사용해야만 하며 이 수치가 바닥이 되면 어쩔 수 없이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노동력 덕분에 개인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설, 제작, 축성, 생산 등 게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노동력이 도입되며 특정 집단이 게임을 독단적으로 지배하는 편향적 권력구조는 설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이 노동력을 사고파는 것도 가능해져 이전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게임 내 노동집단의 등장까지 가능해 졌습니다. 그는 어떤 의도로 노동력이란 개념을 도입한 것일까요.

"게임을 열심히, 오래하는 사람이 더 큰 권한과 특혜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사람이 소외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게임 내 권력을 가진 유저와 그렇지 못한 유저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노동력'이다.

아키에이지에서는 어떤 거대 세력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성이나 장비 등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반 유저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노동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약한 유저라해도 자신이 가진 기본적인 '노동력'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이런 노동력 덕분에 가능해진 것은 더 이상 전투 일변도의 게임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농사를 짓거나 전문 건축가가 되도 게임 내에서 충분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로 인해 개인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다양성이 확보되며 다양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 개별 유저, 즉 개인의 가치를 상승시켜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점이 아키에이지의 핵심입니다. 사실 온라인게임의 특징은 다수의 유저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게임을 향유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템 경쟁과 전투 중심으로 게임의 목표가 획일화되며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극도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게임이 제공하는 즐거움만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인 방식이 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재경 대표는 이런 흐름의 변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게임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게임들이 아이템 일변도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것들이 충분히 통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런 아키에이지의 도전은 흥행 부진이라는 위험성을 초래할 가능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송재경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임은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문화콘텐츠다. 가능하면 많은 부분을 유저들이 자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혼란이 있더라도 게임 내 문화를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게임이 가진 본연의 가치기 때문이다.

게임은 즐거워야 한다. 그런데 과연 개발사가 제공하는 즐거움만 맛볼 수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즐거움이란 필연적으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아키에이지가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고 선택권을 확장시킨 건 더 다양한 재미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할 때, 게임의 흥행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온라인게임 시장은 위기다. 많은 게임들이 과거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수동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이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게임도 변해야 한다. 유저들이 진심을 자극할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라고 봤다. 그 세상을 게임으로 구현했을 때 더 많은 유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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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이지는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의 즐거움을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라는 것이 송재경 대표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그래픽이나 뛰어난 기술력보다는 개인, 선택, 다양성, 자유 등의 개념들을 먼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게임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가치관들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그의 도전이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아키에이지가 큰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그 파장이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리니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키에이지 역시 게임으로는 현실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는 한계를 다시 한 번 경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송재경 대표가 아키에이지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오락'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이런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현실을 투영하려는 노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금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분명 판타지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배경이 비현실적일 뿐 게임도 그 내면에서는 영화나 소설처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게임이라서 허용될 수 있는 판타지와 닮아야 하는 현실의 경계선을 조절하는 건 개발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키에이지를 통해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 세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비록, 아직은, 게임일 뿐이지만 말이다(웃음)."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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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향게임스 취재기자 정광연입니다. 게임 속에 담겨진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태그:#엑스엘게임즈, #송재경, #아키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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