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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푸어'라는 새로운 용어를 알고부터, 나는 경제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신조어가 담고 있는 뜻은 '일하는 빈곤층'. 열심히 일해도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가리킨다. 나는 이 신조어를 접하면서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나 자신이 바로 워크 푸어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나는 20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가난하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처럼 살다가는 평생을 빈털터리로 늙어갈 공산이 크겠다 싶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뚜렷한 정답은 없었다.

이후로 현재까지 여러 가지 경제서를 읽어왔다. 얼마 전 '투자 아이디어와 교양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라는 해제(解題)의 글을 만났다. <10년 후, 부의 지도>라는 책에서다. 이 책은 류비룽과 린즈하오라는 두 대만인의 공동 저서. 여태까지 읽어왔던 경제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 책은 세계 부의 흐름을 정치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부의 흐름은 무엇보다도 지정학적 위치와 큰 연관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나를 책 속에 빠져들게 한 여러 개의 대목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먼저 소개한다. 앞에서 언급한 해제의 일부분이다.

"투자서이지만, 현대경제와 정치질서를 이해하는, 교양서로 읽기에도 좋다. 국제정치학자와 언론인 출신의 금융인이 쓴, 책답게 국가마다 서로 갈등하고, 조정하고 협력하면서, 어떤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가는지를 읽기 쉬운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투자 아이디어와 교양,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책이 많지 않은 법인데, 이 책은 잘 버무려, 맛있게 독자에게 내놓았다. 맛있게 읽는 것은 물론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본문 319쪽)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의 글인데 내용 그대로다. 경제서로는 상당히 맛있는 책이다. 음식으로 말한다면 비빔밥인데, 독특한 비빔밥이다. 참으로 배합이 잘된 비빔밥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 등 다양한 양념이 들어있다. 일단 책을 잡으면 놓을 수가 없을 정도다.

세계사를 간략히 읽은 듯한 기분

<10년 후, 부의 지도> 표지
 <10년 후, 부의 지도> 표지
ⓒ 라이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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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면 한 권의 간략한 세계사를 읽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인문학도지만 평소에 정치·경제에도 관심을 갖고 싶었다. 이 책은 그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킨다. 마음은 있어도 손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게 전문 직업인의 직업병이기도 하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사회학 관련서를 이처럼 재미있게 읽어본 적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듯하다. 이 책은 세계의 정치·경제는 물론이요, 이에 얽힌 다양한 상식도 덤으로 건넨다.

<10년 후 부의 지도>는 교양서이자 경제서의 측면을 강조한 대목도 있다. 얼마나 깊은 데까지 염두에 두고 저술했는지 저자들의 노고가 돋보인다. 실제로 이것이 모든 사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이자, 행동강령이다.  

"투자나 재테크에 있어서,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겠지만, 투자에서 수익이란, 그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효과일 뿐 투자에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과는 바로 더 풍부한, 직장 생활과 더욱 조화된 생활환경과, 더욱 원만한 인간관계다. 공포가 만연했을 때는 냉철함이 미덕이고, 절망이 확산될 때는 희망이 바로 힘이며, 불안감에 흔들릴 때는 지식이 무기가 되고, 상상력이 고갈되었을 때는 행동이 약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본문 306쪽)

상기한 내용만 놓고 본다면 영락없는 인문 교양서다. 나는 이 같은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경제서임에도 인문학 지식을 함유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개념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빛나게 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두 가지 더 있다. 이는 '이걸 이제서야 알게 됐을까'라는 자조를 자아내게 한다. 물론 미리 알았어도 대책은 없었겠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시각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 두 가지를 차례로 소개한다. 둘 다 에너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전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은 전 세계 자원의 1/3을 소비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이 소비하는 자원까지 합친다면, 세계전체 자원의 2/3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본문 171쪽)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적인, 인물인 헨리 키신저는 '석유를 장악하면 국가를 장악할 수 있고, 식량을 장악하면 인류를 장악할 수 있으며, 화폐를 장악하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현재 미국은 세 가지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본문 293쪽)  

우리나라는 과연 현재 어떻게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하며 잠시 멍해졌다. 이어서 개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만이 최선일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10년 후 부의 주체는 누가 될까

문득, <10년 후, 부의 지도>라는 제목의 뜻이 궁금하다. '10년 후, 세계경제의 주체'로 대체시켜봤다. 의미상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 10년 후에 세계경제의 주축이 될, 주인공에 해당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를 의미하는 듯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중국과 인도가 주축이 된 신흥경제국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책은 총 7장(320쪽)으로 구성돼 있다. 장마다 4~5꼭지의 글이 실려있다. 장의 끝 부분에는 3~5쪽 정도로 해당 장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종이의 색깔과 두께도 달리해서, 한 번 더 요약하고 있으니, 한 번에 책을 두 번 읽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세계지도·도표를 군데군데 제시해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부록에는 해외투자에서 유념해야 할 점을 여섯 파트로 나눠 간략히 소개했다. ▲ 아세안투자 ▲ 인도투자 ▲ 남미투자 ▲ 아프리카투자 ▲ 터키투자 ▲ 중국투자가 바로 그것. 7면 정도를 할애해 투자 관련 팁을 제공해놨다.

그렇다고 이 책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에는 긴 문장이 많이 실려 있어서 혹자에게는 지나친 인내력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흥미성 때문에 장문이 주는 지루함은 어느 정도 상쇄된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주제는 무엇일까. 이는 이 책의 부제에서 드러난다. '정치와 경제가 한눈에 보이는 지도 경제학'이 바로 그것. 투자자는 정치·경제와의 관련성을 인식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대부분 투자자는 경제전문가가 분석한 데이터를 근거로 투자했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관련 근거로는 경제분석가의 분석이 빗나갔던 최근의 사례가 제시돼 있다. 끝으로 주제에 해당하는 대목을 한 구절 인용하려 한다. 이는 10년 후 세계 경제의 흐름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게임의 법칙을 만드는 이들은 미국과 유럽이다. 이들을 이른바 '서방'이라고도 한다. 몇 년 전부터 권력이 서방에서 동쪽으로, 차츰 이동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신흥경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거의 모두 게임의 법칙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고 자신의 입지를 늘려가고 있다. 권력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동방국가들은 갈수록 자신만만해지고 있고, 서방국가들도 거의 대세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본문 205쪽)

책을 읽고 나니 '벌어서 아껴 쓰고 저축하며 투자하라'는 나 자신의 경제 모토를, 실천하는데도 행동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것 같다. <10년 후 부의 지도>는 해제처럼 투자 아이디어와 교양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다.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교양서로 읽고 싶은 이에게 권할 만하다. 읽고 나면 한 권쯤 곁에 두고, 계속해서 읽고 싶을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10년 후, 부의 지도> 류비룽·린즈하오 씀 | 허유영 옮김 | 이상건 해제 | 라이온북스 | 2012.12. | 1만6000원)



10년 후, 부의 지도 - 정치와 경제가 한눈에 보이는 지도 경제학!

류비룽.린즈하오 지음, 허유영 옮김, 이상건, 라이온북스(2012)


태그:#신흥경제국, #중국,인도,, #서방선진국, #미국, 유럽,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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