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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의 모습
 초등학생들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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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카톡에 '이제 초등학생 두 명의 아빠, 무거운 책임감!'이라고 올려놓았더니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리플이 달렸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건 분명 축하 받을 일이지만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건, 큰 애가 입학했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인 탓에 아이가 점심을 먹고 12시께 하교하면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 그나마 큰 애는 남자 아이여서 혼자 걸어서 등하교하도록 해도 별 걱정이 안 됐지만, 둘째는 여자 아이인 탓에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입학철 초등 저학년 학생들을 버스로 등하교시켜준다는 걸 당근 삼은 학원 모집 광고에 눈이 갈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둘째는 입학식 당일조차 방과 후에 혼자 걸어 집에 와야 했다. 10시에 시작하는 입학식에 맞춰 외출해 가까스로 학교에 데려다주기는 했지만, 행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돌아와야 했기에 아빠로서 정말 미안했다.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던진 "아빠 엄마가 안 보여 서운하긴 했지만, 난 괜찮아"라는 어른스러운 말에 더욱 가슴 아팠다.

그나마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순간이라 연가를 낼 수라도 있지만, 매일 방과 후 일과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갓 여덟 살 먹은 아이를 혼자 한나절을 보내도록 내버려두는 건 부모로서 방임 그 자체다. 점심으로 학교 급식을 먹고 집에 돌아오면 12시 반 무렵, 그때부터 아빠 엄마가 퇴근하는 6시까지 아이는 '자유'다.

유치원 다닐 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이른바 '종일반'이 운영됐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오후 6시, 심지어는 밤 9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도 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데려오는 번거로움 정도야 이제와 생각하면 수고이기는커녕 차라리 행복에 가깝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다.

복권 당첨될 확률과 비슷한 돌봄교실 당첨 확률

물론 학교마다 '돌봄 교실'이라는 게 있긴 하다. 말하자면 유치원의 '종일반'과 같은 체제다. 우리 부부처럼 맞벌이 가정에게는 너무나 절실하다. 방과 후에도 학교 울타리 안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고, 뛰어 놀기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아이더러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들어가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더욱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이기에 부모로서 든든하고, 여느 돌봄 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기에 경제적 부담도 거의 없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에게 돌봄 교실은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아이가 입학한 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 수가 900명에 이르고 돌봄 대상인 1~2학년 학생 수만 해도 250명에 달하는데, 정원은 고작 20명이다.

그러다 보니 공정하게(?) '추첨'을 한다. 그나마 추첨에 응모 자격을 얻으면 다행이다. 잘사는 동네의 학교야 정원이 채워지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지만, 대개의 학교는 순위가 정해져 있어 후순위까지 기회가 주어지기 무척 어렵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기초생활보호대상자를 1순위로, 한부모 가정 자녀, 해당 학교 교직원 자녀 다음이 맞벌이 부부로 기준이 정해진다.

이를테면 1순위 또는 2, 3순위에서 정원이 채워지면 그걸로 끝이고, 4순위까지 기회가 왔다 해도 추첨이라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만 자녀를 돌봄 교실에 맡길 수 있다. 과장해서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듣자하니 맞벌이 부부가 혹 당첨되면 주변 지인들을 불러다 한 턱 내는 '전통'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접수는 시켜놨지만 당첨을 기다리며 마냥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자 부모로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각종 학원 전단지를 보고 순간 마음이 동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4년 전, 지금과 같은 일로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아내 앞에서 둘째를 학교에 보낼 즈음이면 우리나라도 그만한 복지가 실현돼 있을 거라 큰소리쳤건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그땐 다행히도 큰 애가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있던 탓에 방과 후 일과 걱정을 다소 덜었는데, 둘째는 지금껏 오로지 유치원에만 의존해서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참으로 막막하다. 예전 같으면 나서서 못하게 막았을 텐데, 입학식 행사장 앞에서 마구 뿌려진 각종 학원의 광고전단지를 보며 마음이 순간 동하기도 했다.

고향도 자란 곳도 아니다보니 부탁할 친인척도 없고, 그렇다고 맞벌이 주제에 주택관리사 아주머니를 선뜻 집에 들이기도 어렵다. 주변 어르신들에게 이런 사정을 하소연이라도 할라치면 대뜸 '애 키우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냐'면서도 '옛날에는 아무런 도움 없이도 네다섯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며 되레 나무랐다. 유난 떨지 말라는 거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체념도 빨라졌다. 맞벌이 부부에겐 학원이 유일하고도 가장 손쉬운 대안이었다. 결혼할 때부터 우리 부부가 혼인서약마냥 서로 굳게 다짐한 게 몇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떤 유혹과 어려움이 닥쳐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다짐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교사로서 교육철학과 소신의 문제이기도 했다.

철학도, 소신도, 부부의 굳은 맹세도, '학원 뺑뺑이가 방임보다야 낫지 않느냐'는 양자택일의 문제 앞에 시나브로 '유연하게' 변해갔다. 결국 영어, 수학 등 보습 학원만 아니면 된다고 나름 '자기합리화'하며 한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누구 말마따나 '갓 한글을 떼고, 셈을 시작한 아이인데 누군 좋아서 학원엘 보내겠느냐'는 자위다.

여태껏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의라도 할라치면, 고백하건대, '어차피 사교육은 학부모의 불안감을 부추기며 먹고 살 수밖에 없다'며 학원의 그릇된 행태와 학부모들의 '귀 얇음'을 나무라왔다. 그런데 정작 방과 후에 내 아이가 텅 빈 집 외에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토록 욕해왔던 학원이 유일한 '피난처'로 여겨지게 된 거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시작된다는 '학원 중독'은, 뒤틀린 학벌구조와 입시제도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하교 시간이 부모의 퇴근 시간과 얼추 비슷해지는 중학교 때까지는 좋든 싫든 '돌봄' 목적으로 '학원 뺑뺑이'를 도는 게 맞벌이 부모를 둔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획일적' 일과다.

결국 해결책은 돌봄교실을 늘리는 방법뿐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급식을 먹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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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하굣길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음악 학원과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둘째의 음악적, 미술적 재능을 키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실 없다. 그저 아빠, 엄마가 퇴근할 무렵까지 좀더 '길게' 데리고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곧, 우리 부부에게 그곳은 학원이 아니라 위탁 보육시설인 셈이다.

그나마도 초등학생 1학년에게 두 곳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걸어서 오가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학원 당 기껏해야 한 시간 반 남짓이니, 부모가 퇴근하는 6시까지 '버티려면' 서너 개는 돌아야 한다. 맞벌이를 포기하지 않는 다음에야, 부모의 늦은 퇴근 시간과 아이의 이른 하교 시간이 고정돼 있는 현실에서 보육을 위한 '학원 뺑뺑이'는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과연 대책은 없을까? 돌고 돌아 다시 학교마다의 '돌봄 교실'을 확대 운영하는 것이 답일 수 있다. 그다지 많은 예산이 들 것 같지도 않고, 학교 내 공간이 있고 학교장의 배려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꾸릴 수 있으리라 본다. 또 돌봄 교실의 범위를 단위 학교로만 묶을 게 아니라 사정이 다른 인근 학교의 수요를 감안해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예컨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차상위 계층은 무료로 하되 나머지 신청자들에게는 납입금을 올리고 차등 징수한다 해도, 학교라는 곳에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장점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도시의 경우 거의 아파트단지마다 초등학교가 하나 꼴인 현실에서, 드물지만 돌봄 교실 정원이 미달된 학교는 이웃 학교의 수요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엔 전가의 보도처럼 예산이 부족하다며 뻗댈 테지만, 정원을 꼭 고집해야만 할까. 거친 비유이긴 해도, 돌봄 교실이 절실한 가정의 아이가 탈락해 방치될 경우, 그 아이와 부모 앞에서 추첨이라는 '공정한' 절차를 거쳤다고,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과연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자판을 두드리며 자책한다. 4년 전, 똑같은 일로 아내와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고, 맞벌이 부부의 보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관공서마다 전화를 걸어 항의도 해봤다. 그때마다 자신들도 겪었다면서 공감했고 방법을 찾아보겠노라 대답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공감만 나눴을 뿐 시간이 흐르며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이가 시나브로 커가면서 '그 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었다. 정작 '내 일'일 때는 보육에 무심한 남들이 그토록 미워죽겠더니, 어떻든 아이가 다 커 이제는 나와 관계없는 '남 일'이라고 생각하니 만사가 귀찮아져버렸다. 4년 전 '투사'였던 나 자신도 어느새 그토록 싫었던 그때의 남이 돼버린 것이다.

인지상정이라며 스스로 다독여보지만, 고백하건대, 큰 얘가 입학할 당시 겪었던 고통을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건, 누구 탓도 아닌 바로 내 책임이란 생각이 든다. 뻔히 예상된 고통에 또 다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내 자신이 가엾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태그:#돌봄 교실, #맞벌이 자녀 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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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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