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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의 불교문화 이야기

월출산 천황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월출산 천황봉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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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최인선 교수의 '월출산 불교문화' 강의를 듣는다. 월출산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책은 당나라 도선(道宣: 596-667))율사가 쓴 <속고승전(續高僧傳)>이다. 이 책에 보면 '백제국 달라산(達拏山) 석혜현전(釋慧顯傳)'이 나온다. 그리고 이 내용이 일연의 <삼국유사> '혜현구정(惠現求靜)'조에 요약되어 다시 나온다.

혜현(570-627) 스님은 처음에 북부 수덕사에 머물렀고, 후에 남방 달라산으로 옮겨 주석하다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혜현 스님보다 달라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라산은 말 그대로 '달이 나오는 산'이 된다. 이 달라산이 바로 지금의 월출산(月出山)이다. 그것은 달라를 한자로 표현하면 월출이 되기 때문이다. 달라산은 이후 월나악(月奈岳: 통일신라시대), 월생산(月生山: 고려시대)을 거쳐 조선시대 월출산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월출산은 전라도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불교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백제 이래 통일신라시대까지 불교가 국교로 숭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유물이 사라져선지 아니면 토속신앙 때문인지, 통일신라시대까지 불교유물은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현재 이곳에 있는 불교유산은 대부분 고려시대 이후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평지보다는 험준한 산봉우리 아래 5-8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
 월출산 용암사지 마애불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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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용암사지 마애불과 석탑, 몽염암지 석탑, 우왕골 양면불, 삼존암지 마애삼존불, 월곡리 마애여래좌상과 마애불두, 칠지계곡 마애여래좌상, 대문안골 마애불 등이다. 이에 비해 평지에 있는 불교유산은 유서 깊은 사찰 도갑사, 무위사, 월남사지, 성풍사지 등에 남아있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과 석탑,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와 삼층석탑, 월남사지 3층석탑, 성풍사지 5층석탑과 석불 등이 대표적인 불교문화재다.

이처럼 월출산과 주변 절에는 불상과 석탑 그리고 마애불이 널려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보고되고 연구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특히 산속의 마애불은 국보나 보물 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몇 개를 빼고는 거의 방치상태다. 이번 답사가 그러한 현실에 일침을 가하고, 이들 문화유산을 사람들에게 알려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마애삼존불에 대한 보고서가 하나 없다니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 이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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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존암지 마애삼존불은 약수터에서 천황봉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100m쯤 가다가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길에서 약 70-80m쯤 올라간 능선에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북쪽 면에 마애삼존불을 새겨놓았다. 그런데 길이 없어 이곳 역시 길을 개척해야 한다. 아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불교 문화유산이다.

바위 앞에 서니 마애삼존불이 희미하게 보인다. 바위가 북향이어서 빛이 들지 않으니 그 윤곽이 희미할 수밖에 없다. 사진을 찍어도 역광이어서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 도갑사 이영현 종무실장이 가지고 온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윤곽이 조금은 더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가운데 본존불은 그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협시불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마애삼존불
 마애삼존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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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애삼존불은 발견 이후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이홍식씨가 최근에 낸 <전라남도 불교(석조)문화재 답사자료집>을 토대로 삼존불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존암지 마애불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불을 안치한 삼존불이다. 높이 3.5m, 너비 10.5m의 암벽에 선각으로 처리한 마애삼존불이다. 부분적으로 마모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본존불은 전체 높이가 172㎝이며, 오른손은 들어 오른쪽 어깨 부근에서 펼쳐 보이고 왼손은 내려뜨려 무릎 부근에서 네 손가락을 구부린 시무외인, 여원인을 하고 있다.

물을 머금은 마애삼존불
 물을 머금은 마애삼존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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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소발로 둥근 형태의 육계가 있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한 것이 분명하고, 얼굴은 둥글며 이목구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옷주름 선도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가슴을 모두 덮은 통견으로, 옷주름이 왼쪽 어깨와 팔뚝으로 넘어간다. 두광이나 신광은 표현되지 않았으며, 발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아래 대좌 역시 표현 여부가 불분명하다. 나중에 탁본을 확인해 보니 발의 형상은 나타는 것 같고, 대좌는 없는 것 같다.

양쪽 협시불은 본존을 향하여 몸을 살짝 틀고 있다. 좌협시는 100cm, 우협시는 93cm의 크기로 하반신의 표현이 일부 생략되었다. 하반신은 간단히 윤곽선으로 표현하거나 그대로 놓아두었는데, 미완성일 가능성이 크다.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이 협시불의 특징은 머리 위에 쓴 보관이다. 높은 육계를 하고, 보관을 쓴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보관의 크기가 얼굴과 맞먹거나 오히려 더 크다.

삼존암지 마애불은 전남 지역에서는 그 유례가 드문 삼존 형식의 마애불좌상이다. 불상에 표현된 보관, 상호, 착의법, 자세 등을 볼 때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화된 표현과 선각 기법 등으로 보아 조성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한다. 앞으로 다른 마애삼존불과의 친연성 연구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조성시기와 특징 등이 정리되기를 바란다.

마애불두, 이거 보물급입니다

하산길의 멋진 암봉
 하산길의 멋진 암봉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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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삼존불을 보고 우리는 경포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제는 등산로를 따라 가는 것이라 어렵지 않다. 내려가면서 보이는 바위들도 정말 기가 막히다. 중국의 황산이나 장가계에서 볼 수 있는 뾰족한 암봉들이 이어진다.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 길가에 있는 나무와 꽃들도 살펴본다. 산동백도 보이고 현호색도 보인다. 동백나무 아래는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이 널려 있다.

산길 주변에는 화전민이 살던 흔적도 보인다. 한참을 내려가니 바람재로 올라가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도 우리는 경포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다 이홍식 대장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곳에 보니 편백나무와 삼나무 군락이 있다. 이곳에서 다시 계곡 쪽으로 산길을 뚫고 40분 이상 올라가야 월남리 선각마애불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기만 들고 산행을 시작한다.

월남리 마애불두
 월남리 마애불두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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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곳을 찾은 사람이 있었는지 군데군데 마애불두를 알리는 리본이 걸려 있다. 계곡에는 여름 장마철에 떠 내려온 돌들이 울퉁불퉁 길을 막고 있다. 어느 정도 오르자 계곡에 절터 흔적이 나온다. 계곡에 연자방아 같은 게 보이고 와편도 보인다. 계곡 오른쪽 언덕으로 축대도 쌓여 있다.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리는 증거들이다. 이곳을 지나 5분쯤 오르니 드디어 마애불두가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칡덕골 마애불이라고 부른다.

마애불두는 가로 6m 세로 4m쯤 되는 자연암석에 선각과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다. 마애불두는 말 그대로 머리 부분만 있으며 동쪽을 향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한 편이며, 머리 위의 나발과 육계를 분명히 표현했다. 머리와 이마를 구분하는 윤곽선이 뚜렷하고, 눈썹도 아미형태로 날렵하게 표현했다. 눈은 가늘게 떴으며 눈꼬리가 길고 양끝이 위로 살짝 올라가 있다. 그 때문에 신비감이 느껴진다.

정태욱 선생이 마애불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태욱 선생이 마애불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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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와 입 그리고 인중이 양각으로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입체감도 느껴진다. 코에 비해 입이 작게 표현되었는데, 그것은 꼭 다문 입술 때문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근엄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이와 친연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불두가 경주 삼릉골  선각 마애불두다. 이들을 비교해 볼 때 월남리 마애불두가 후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월남리 마애불두는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을 본 불교미술 전문가 정태욱 선생은 문화재자료가 아닌 보물급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보물이 산속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문화유산이고 사람이고 대접을 못 받는 존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불두 좌측 언덕 위로는 10m 높이의 자연암석이 있는데, 마치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조금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하산을 서두른다. 

갈 때는 안 보이던 봄꽃이 보이는 이유는...

얼레지
 얼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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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는 길도 알고 시간 여유도 있어 조금은 천천히 내려온다. 그러자 눈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와 꽃이다. 생강나무가 노란꽃을 피운지는 오래되었고, 가끔 보이는 동백도 빨간 꽃을 피우고 또 떨어지고 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봄꽃인 얼레지와 춘란이 눈에 띈다. 얼레지 역시 꽃을 활짝 피운 것도 있고, 아직 피우지 못한 것도 있다.

얼레지는 자주 보이는 편인데, 하나씩 따로 피어있기도 하고 몇 개가 함께 피어있기도 하다. 얼레지 꽃잎의 연보랏빛, 꽃술의 진보랏빛이 인상적이다. 정말 아름답다. 또 현호색도 보인다. 나팔을 부는 모양의 현호색은 보라색에 푸른빛이 약간 감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춘란이 보인다. 춘란, 이건 정말 귀한 꽃이다. 척박한 모래땅에 녹색의 잎을 키워 올리고, 그 사이로 정말 아름다운 꽃대를 대여섯 개 피워 올렸다. 노래 가사 마따나 바위 뒤에 숨어 숨어 피는 꽃이다.

춘란
 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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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발견(gefunden)'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괴테는 숲속 그늘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눈처럼 아름다운 예쁜 꽃을 발견한다. 그 꽃을 꺾으려하자 꽃이 말한다. 나를 꺾어 시들게 만들려 하느냐고. 그러자 괴테는 그것을 뿌리채 캐서 집안의 정원으로 가져다 심는다. 그러자 그 꽃은 가지를 뻗으며 계속 꽃을 피워댄다.

그러나 나는 그 꽃을 한참이나 더 쳐다보고 사진에 담는다. 그리고는 그 자리를 떠난다. 그래선지 계곡 아래서 춘란이 또 한 번 나타난다.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운 춘란이다. 우리 집에도 20년 된 춘란이 하나 있지만 이처럼 꽃이 싱싱하고 많이 피지는 않는다. 역시 꽃은 제자리에 있어야 하나보다. 산속 계곡 그늘진 곳, 관심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곳에...


태그:#달나산, #마애삼존불, #마애불두, #얼레지와 춘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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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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