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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삼종기도

2013년 2월 6일 오전 9시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오수영, 여민희 조합원이
길 건너 재능 본사 앞에서
들려오는 삼종기도 종소리를 들으며 종탑을 바라보고 평안을 기도하다 답이 없어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
자신을 쓰다버린 재능교육을 향해 소리 치고 있다.

"단체협상 원상회복" "해고자 원직복직"

수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관심이 쏠렸고 또 종탑 아래로 모였다.

그리고 우리는 종탑에 갇혀 버렸다… 종탑에 가두고 싶었던 건 아닐까?

종탑은 숭상의 대상이 아니다.

종탑에 갇혀 살던 사람이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
추악한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에 의해 갇혀 지낸 그가
그 아름다운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를 만든다는 것을 파리 시민에게 알린다는 것…
그렇다고 자신이 종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영원히 그 종탑 안에 가두고 싶었으리라…

나는 지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능교육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재능 공대위)에서 활동했다. 인디뮤지션들과 재능지부 투쟁승리를 위한 프로젝트 밴드 '언니네농성장뺀드'를 결성하여 재능지부와 여러 형태의 문화제를 기획하였다.

'학습지'. 그것에 대한 내 기억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다. 재미없고 지루하고 또 하나의 숙제였을 뿐이었고 친구들에겐 유별을 떠는 걸로 보여졌었다. 그러다 보니 겉봉도 뜯지 않은 학습지가 날이 갈수록 쌓여고, 쌓인 두께 만큼 어머니의 매는 깊었다. 나 뿐만 아니라 학습지에 대해 즐거운 기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89년, 학습지 방문교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학습지 회사들은 이즈음부터 하나 둘 방문 학습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습지 교사들은 단지 돈벌이 만을 위해 그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으리라...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르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생의 고민을 나누고 비밀을 같이 지키고 학부모에게 학생의 남다른 능력에 대해 얘기하고...

재능지부 조합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과의 마지막 수업을 다들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학생이 입었던 옷, 함께 먹었던 과자, 손가락 걸며 했던 약속, 학생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 돌아 나오며 바라 본 하늘...

재능노조 교사들이 투쟁을 벌인 지 2000일이 다 돼 가지만, 마지막으로 보았던 학생들을 그렇게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개개인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학생의 상황이 어떻든지, 그 집의 상황이 어떻든지, 학습지를 유지하긴 바랐다. 학습지 교사에게 수입원을 유지하는 것에만 전념하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익을 자본가가 가져가기 위해 생산력을 높이는 것에 치중하다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정리해고 등을 통해 남은 자들에 대한 노동 강도를 높였다. 그 후 분사, 아웃소싱, 비정규직을 거쳐 특수고용이라는 헤어 나오기 싫은 고용형태가 만들어졌다.

2011년 3월 9일 중구청의 지휘 아래 재능 농성장 천막이 찢겼다. 그리고 지난 3월 26일 중구청은 다시 용역을 동원하여 재능 시청 농성장을 급습해 그 비루한 천막을 또 찢었다.
시청광장 옆 환구단 입구. 거대한 재능빌딩이 보이는 그곳에서 유명자 지부장의 앙칼진 외침이 들려 온다.

"반드시 반드시 저 재능교육, 재능자본... 꼭 무너뜨리고 싶습니다! 스무 번째인가까지 농성장 침탈을 헤아리다가 그만 두고도 오늘이 몇 번째인지...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노동조합 인정하라는 것이 그렇게 그렇게 잘못한 것 입니까? 이런 주장을 하는 제가 막되먹은 사람 입니까!

여러분 '침탈빨'이라고 있습니다. 저희가 침탈 당한 날 저녁엔 다른 날 보다 많이 모입디다. 저희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침탈이 아니라 천막이 찢기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침탈빨' 마저 없어질까 봐 입니다. 동지 여러분 조금 더 힘을 주십시오. 저희가 싸워서 이겨 특수 고용을 철폐하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투쟁! 투쟁!"

그리고 2년 뒤 3월 26일, 중구청은 트럭 가득 대형 화단을 싣고 와서 농성장과 집회 신고가 되어 있는 곳에 놓으려고 했고, 우리는 온 몸으로 막았다. 도대체 이 지겨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만 하나...

사람들은 얘기한다. 재능은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라고, 특수고용직이라는 것을 없애지 않는 한 결론 날 수 없다고... 그러나, 난 반대로 생각해본다. 특수고용직이라는 것 애초에 없었던 노동 형태다. 사측은 노사간 합의에 의한 것이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사측의 권력과 국가의 묵인이라는 불평등한 조건에서 한 계약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인간이 폐지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두리반 투쟁을 본다면 명확하다. 두리반의 경우 '반상회'를 열어 투쟁상황, 교섭상황, 차기 프로그램 등을 연대 단위들과 함께 논의하고 계획하였고 투쟁 승리 이후에도 다른 투쟁 사업장에 연대했다. 두리반은 지금도 많은 청년활동가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이것이 투쟁이고 연대이며 투쟁 주체가 그날 이후에도 우리에게 보여줘야할 것들이다.

그렇기에 2000여일 투쟁과 60여일 종탑 투쟁을 승리로 발전시키려면, 특수고용직 투쟁의 상징인 이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종탑 주변에서 비대위와 직무대행이라는 형식에 갇히면 안 된다. 더 조직적으로 강한 대오를 형성하여 교섭을 해야 할 것이며 교섭 이후에는 재능지부에 더 많은 학습지 선생님들이 같이 할 수 있도록 노조를 재건해야 할 것이다.

기나긴 투쟁과 종탑 농성을 대상화 하여 우러러 보아서만은 안된다. 더 치밀하고 뜨거운 연대의 힘으로 지금의 상황을 정면돌파 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재능교육지부에게서 눈을 돌린다면 말로만 연대를 외친다면 단지 농성장에 종탑에 시혜의 대상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자신을 그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두 여성 노동자는 사순절이 시작될 때 올라 갔고 그곳에서 지난 주 부활절을 맞이 하였다…
이제 모든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안전하게 내려오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려면 재능교육 지부가 승리하는 것 뿐이다.


태그:#혜화동, #종탑, #재능교육, #재능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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