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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학교 중등 친구들이 울진을 관통해 걷고 있다.
▲ 성미산학교 탈핵평화도보여행 성미산학교 중등 친구들이 울진을 관통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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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결정적 순간이란 것이 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 같은. 2011년 3월 11일 쓰나미에 따른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고, 이는 우리의 삶이 이대로는 지속 불가능함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함을 각성시켰다. 그해 4월, 성미산학교 중등은 경기도 용문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지인 삼척까지 10박 11일의 탈핵평화도보여행 '핵핵(核核)거리지마'를 떠났다.

이후 '전환'은 성미산학교 중등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2학기엔 '저탄소여행'을 표방하며 하루 물 40L만 사용하기, 일회용품과 전기 사용하지 않기,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의 원칙을 갖고 여행했다. 2012년 2학기엔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주민이 6년째 싸움하고 있는 밀양을 찾았다. 여행뿐만 아니라 생태프로젝트 역시 '전환'이란 이름 아래 '물건'(2012년), '먹을거리'(2013년)를 키워드로 진행 중이다.

먹을거리 프로젝트의 실천이자 탈핵에의 의지 그리고 변화를 위한 마법. 엘름댄스를 마친 성미산학교 중등친구들이 상추 등 잎채소 씨앗을 심고 있다.
▲ 원자력발전소홍보관 앞 게릴라가드닝 먹을거리 프로젝트의 실천이자 탈핵에의 의지 그리고 변화를 위한 마법. 엘름댄스를 마친 성미산학교 중등친구들이 상추 등 잎채소 씨앗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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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학교 중등 현홍준 학생이 원자력발전소전시관 모처에 상추씨를 심고 있다.
▲ 상추 씨를 심는 현홍준(9학년) 성미산학교 중등 현홍준 학생이 원자력발전소전시관 모처에 상추씨를 심고 있다.
ⓒ 성미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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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1년 도보여행의 종착지였던 경북 울진 원자력홍보관에서 4월 22일 출발하여 5월 3일 밀양에서 마무리 짓는 탈핵평화도보여행 '핵핵거리지마 season2'를 진행한다. 부분참가를 포함해 54명이 참여하며, 이중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 친구들이 30명(8학년 19명, 9학년 11명)이다.

언양 석남사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터널만 시외버스를 이용하며 도착한 후엔 이치우 열사가 돌아가신 장소에서부터 다시 걷는다. 이번 도보여행은 그 맥락상 '저탄소여행'과 2011 '핵핵거리지마'의 궤적을 함께 포함한다. 그래서 11박 12일 동안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한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우리만의 원칙도 함께 정했다.

첫째, 물 사용량은 체크하지 않되, 여자는 7분, 남자는 5분 이내에 샤워를 마무리하도록 한다. 둘째, 휴지는 화장실에서 용변 처리하는 것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전기는 조명만 사용하고 기타 전기기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넷째, 식사 시 잔반을 남기지 않는다.

서울에서 아침 11시에 출발해 울진에 도착한 첫날. 무심코 종이컵에 물을 따랐다가 황급히 다시 수거하여 반납하고, 누군가 남긴 음식물을 다 먹겠노라며 범규, 정민(이상 10학년)이 늦게까지 앉아 있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들 큰 동요 없이 자기 앞에 놓인 밥과 반찬을 깨끗이 비움으로써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다음 날(23일), 숙소에서 7시에 출발해 11시쯤 경북 울진군 북면 원자력홍보관까지 걸었다. 잠시 짐을 풀고 쉬고 있는데 현수막을 재사용해 만든 '핵핵거리지마' 깃발을 보고 중년의 남성이 해인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 "너희 반핵 운동하는 단체에서 왔니? 핵이 뭔지 제대로나 알고 반핵하는 거야?"
해인 : "잘 알아요."

핵핵거리지마 로고가 새겨진 노란손수건을 팔에 맨 성미산학교 친구들이 엘름댄스를 추기 위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고 있다.
▲ 핵핵거리지마 엘름댄스 핵핵거리지마 로고가 새겨진 노란손수건을 팔에 맨 성미산학교 친구들이 엘름댄스를 추기 위해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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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이는 '되게 이상한 표정'을 하고 돌아간 아저씨를 보며 "저 아저씨는 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우린 울진 곳곳에서 '울진원자력본부와 좋은 사(社)이(里)'라고 적힌 푯말을 볼 수 있었다.

1000만 명이 넘은 모 영화를 '원자력본부의 후원으로 무료 상영한다'는 포스터도 곳곳에 보였다. 정말 원자력발전소는 이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심순(교사, 권희중)의 말처럼 "장기적인 패악을 단기적으로 막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외지인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그래서 정민이는 "어디 운동해?"라는 어느 아주머니의 질문에 그 분이 원자력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몰라서 "아니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잠깐의 꿀맛 같은 쉬는 시간 이후 우리는 둥글게 원을 만든 후 '엘름 댄스'를 추었다. 이 춤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후 방사능 구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느릅나무 숲으로 보내 나무들을 죽인 것을 애도하는 데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미리 준비해둔 상추 등 잎채소의 씨앗들을 심었다.

울진을 걷는 곳곳에서 위와 같은 팻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부인과 지역주민과의 간극. 우리가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 울진원자력본부와 마을은 좋은사이 울진을 걷는 곳곳에서 위와 같은 팻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부인과 지역주민과의 간극. 우리가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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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여행의 원칙. 잔반은 남기지 않는다. 절로 빈그릇운동.
 저탄소여행의 원칙. 잔반은 남기지 않는다. 절로 빈그릇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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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도시 공간 곳곳에 꽃이나 씨앗을 심는 '게릴라가드닝'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실천과 죽음을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소 한복판에 '생명'을 심겠다는 저항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에 숨겨진 또 한 가지. 이 씨앗들은 혜원(11학년), 인서, 해인(이상 8학년) 등 '액션' 팀의 마술이 걸려 있다.

우리가 심은 씨앗에서 상추가 나고,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심코 혹은 호기심에 그 상추 등 잎채소를 따먹으면 어느새 원자력발전소 찬성에서 '탈핵'으로 기울어지게 되는 마법. "뾰로롱".

'액션' 팀에서 '마법'을 이야기하는 모순 혹은 난감함은 우리가 이 여행에서 왜 '탈핵'인지, '탈핵'과 '평화'는 어떻게 '도보'와 연결되는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함께 걷는 이들에게 따져 묻고 각자의 답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과 닮았다. 우리는 이 길의 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태그:#탈핵평화도보여행, #성미산학교, #엘름댄스, #저탄소여행,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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