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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숙소에서 짐 정리와 샤워를 마치고 마을을 산책하였습니다. 규모가 있는 마을은 호텔, 슈퍼마켓, 당구장 등 저잣거리 풍경이 펼쳐집니다.

폭주족(?)은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굉음을 내며 거리를 달립니다. 산골 마을에서 오토바이는 부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애인이나 자녀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비포장도로를 왕래하고 있습니다. 아직 트레킹이 끝나지 않았지만 산중 도시의 모습에서 이미 카트만두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산중 도시

산책을 마친 저는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망 좋은 옥상은 제가 걸어온 곳이 한눈에 보입니다. 고사인쿤드를 지날 때부터 오늘까지 걸어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12일 동안 혼자 걸었음에도 외롭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시야에 들어오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눈을 감으면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추억으로 낮과 밤 모두 바쁜 일상이었습니다.

숙소 옥상에 본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핼람푸 히말라야 정경 숙소 옥상에 본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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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시간 옥상으로 향했습니다. 트레킹 마지막 일출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설산과 거리가 너무 멀어 똑딱이 카메라로 아름다운 일출을 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가슴에 담아 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카메라보다 눈에, 눈보다 가슴에 가득 채워봅니다.

치소파니에서 마지막 일출
▲ 일출 치소파니에서 마지막 일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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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서를 보니 어젯밤에 마신 맥주와 콜라가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모른 척하고 식비와 방값만 지불하였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숙박비보다 콜라나 맥주 등 공장에서 만든 물품이 더 비쌉니다.

어젯밤 숙소 주인장 행동에 괘씸함을 느꼈기에 반칙(?)을 해보았습니다. 포터 인드라도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주인이 뒤쫓아 올 것 같아 조마조마하면서도 앙갚음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치소파니와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치소파니 치소파니와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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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찝차'의 유혹

카트만두까지 '찝차(지프)'를 이용하자고 인드라가 저에게 제의합니다. 1인당 200루피(3$)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으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카트만두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연신 입가에 웃음이 넘칩니다. 한 집안의 가장인 그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저도 차량이 통행하는 길을 걷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찝차'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7시 30분에 온다는 차가 8시 30분이 되어도 오지 않습니다. 언제 '찝차'가 올지 기약이 없기에 차량 이용을 포기하고 걸어서 카타만두에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치소파니(2215m)를 출발하면 쉬바푸리 국립공원입니다. 카트만두 북쪽에 있는 이 지역은 네팔의 다양한 희귀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량이 풍부하여 카트만두 지역의 상수원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저의 우려와는 달리 신작로가 아닌 한적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시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치소파니에서 카트만두 가는 길
▲ 카트만두 가는 길 치소파니에서 카트만두 가는 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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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바푸리산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고개 아래로 거대한 카트만두 계곡이 보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맑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 서울 하늘처럼 매캐한 공기로 가득한 모습입니다.

많은 인구와 저급한 연료 덕분에 카트만두 하늘은 오염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힌두교의 수억 신들은 공해를 피해 설산으로 가버리고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만이 카트만두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공해와 인파로 부대끼는 저잣거리가 그립습니다.

공해에 찌든 카트만두
▲ 카트만두 정경 공해에 찌든 카트만두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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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려오며 보니 폐허로 변한 건물이 보입니다. 과거 군부대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이곳은 과거 정부군과 마오이스트(마오쩌둥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 간의 교전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왕정이 멸망하고 마오이스트 정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히말라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네팔을 꿈꾸어봅니다.

트레킹은 끝나고

치소파니를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트레킹 종착지인 순다리잘(1460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저수지가 있어 카트만두에 식수를 공급하며, 유원지가 개발되어 있어 데이트를 즐기는 선남선녀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두 발로 걷는 것은 끝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 시내로 들어가면 트레킹은 끝이 납니다.

순다리잘에서 데이트 하는 연인 모습
▲ 연인 순다리잘에서 데이트 하는 연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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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카트만두 중심지에 있는 여행자 거리인 타멜에 도착하였습니다. 드디어 13일간의 트레킹이 끝났습니다. 착한 포터 인드라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축하와 감사의 말을 주고받습니다. 소심하고 변덕 심한 저를 13일 동안 싫은 기색 없이 도와준 인드라의 착한 마음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묵묵히 트레커를 배려하는 인드라가 없었다면 힘든 트레킹이 되었을 것입니다.  

트레킹을 끝나고 카트만두 여행자 거리 타멜에 도착
▲ 타멜 모습 트레킹을 끝나고 카트만두 여행자 거리 타멜에 도착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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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다"는 말처럼 마무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치소파니에서 '찝차'를 이용하였다면 빨리 카트만두에 도착했을지는 모르지만 아쉬운 트레킹이 되었을 것입니다. 끝까지 걸어서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합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듯이 마지막 점 하나를 찍은 것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되었습니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

이번 트레킹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 히말라야를 생각하였지만 랑탕, 코사인쿤도, 핼람푸 히말라야를 트레킹하였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을 준비 없이 다녀온 것입니다.

여행과 인생이 닮은 점이 있다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여행이나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주어진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레킹을 끝내고...
▲ 자화상 트레킹을 끝내고...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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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2006년 랑탕 트레킹에서 가지 못해 아쉬워했던 고사인쿤드와 핼람푸 지역을 트레킹하였으니 소원 한 가지는 성취되었습니다. 이번에 가지 못한 쿰부 히말라야는 제가 다시 네팔 올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니 더 감사한 일이구요. 특히 몸 건강히 트레킹을 끝냈다는 사실에 저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편리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듯이 불편한 것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여행이 주는 매력은 불편한 것을 참으면서 즐기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지만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행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 살아온 것들에 대한 반성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착한 포터 인드라에게 몇 가지 옷가지와 넉넉한 팁을 선물로 주고 겨울 트레킹을 마무리 하며 내년 겨울을 생각해봅니다. 내년 겨울에 저는 어느 히말라야를 걷고 있을까요?


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치소파니, #순다리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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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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