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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서는 1차, 2차 정기 고사 첫날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정기적으로 전교조 분회 모임을 갖는다. 조합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교육 현안에 대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 현장에서 못다 나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조합원 선생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모두 이 모임에 참석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끈끈한 연대감과 동료 의식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정기 모임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정례화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약간의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인문계고는 정식 일과가 끝난 후 시작되는 방과후 보충 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평상시 일정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이 때문에 업무 부서별 교사 모임이나 학년 담임 모임 등 교사들 모임이 정기 고사 기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학교 관리자나 부장 교사들에게는 '비호감'인 전교조 분회원 모임이 끼어들어갈 틈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당시 우리 분회 집행부는 '짱짱한' 조합원 수로 학교를 압박했다. 우리는 학교 전체 교원의 과반에 육박하는 교사가 가입해 있는 합법적인 교원 노조 단체의 정기 모임을 정기 고사 중에 가질 수 있도록 정례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덩달아 교원 노조와 관련한 선전물이나 공지문들을 게시할 수 있는 게시판 공간도 마련해 달라고 했다. 결국 교무회의 시간에 몇 번 설왕설래 한 끝에 그 모든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조합원 숫자의 힘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는 고작 열한 분이 참석하셨다. 이마저도 우리에게 교육 현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전주에서 달려온 전교조 전북지부장까지 합한 숫자다. 불과 오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분회는 조합원이 20명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2009년의 교사 시국 선언 와중에 상당수의 선생님들이 조합을 탈퇴하였다.

당시 평범한 조합원 선생님들에게는 교사를 고발하고 징계하는 교과부과 교육청의 칼날이 그저 엄포로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또 당시 탈퇴한 조합원 선생님들 중에는 시국 선언 자체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를 보인 선생님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 당국이나 사법부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나 시국 선언에 대해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갖는 것은 조합을 탈퇴하는 문제와는 구별해서 봐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 가령 당시 전교조 본부에서 주도한 시국 선언에 대해 반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합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온당한 순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교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옹졸한 내가 지금까지 당시에 전교조를 탈퇴한 선생님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 전교조가 진행한 교사 시국 선언은 헌법상의 당연한 기본권적 표현이었다. 그 정당성은 지금 법원 판결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2009년의 교사 시국 선언 국면에서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교사는 모두 16명이었다. 이들 중 법원 판결로 복직한 교사는 현재까지 12명이다.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울산과 제주 지역의 교사 3명도 1심에서 해임 취소 판결을 받았다. 엠비 정부의 교과부와 사법 당국이 휘두른 칼날이 극악한 망나니의 칼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어쨌든 당시 평범한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을 심리적으로 강하게 압박하여 노동조합에서 탈퇴하게 하려는 교육 당국의 '숨은' 의도는 제대로 관철된 셈이다. 지난 5년간의 엠비 정부 기간에 전체 교직원의 과반에 육박하던 우리 학교 분회원 숫자가 애초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 그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데 전교조 조합원 숫자가 줄어든 요인은 다른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사립을 막론하고 신규 교사 충원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교사 충원이 있더라도 기간제나 강사 교사 등과 같이 비정규직 교사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정규직 교사 중심의 교원 충원은 전교조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2009년, 우리 학교가 교과교실제 학교로 선정되면서 국어와 수학, 영어 과목 중심으로 비정규직 교사들이 대거 들어오셨다. 당시 분회장을 맡고 있던 나는 오늘과 같은 정기 고사 모임에 이들 신규 교사들을 초대하였다. 우리 학교 분회원 선생님들에게도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간의 연대를 위한 자리라는 취지를 설명하면서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그때 몇몇 기간제 선생님과 강사 선생님들이 약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그들이 전교조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하고 말았다. 수구 언론에 의해 전교조가 '동네북'이 된 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서 그때 그들이 불편해한 까닭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친형님처럼 대하는 수학과 정 모 선생님의 말을 통해서였다.

전교조 조합원에게는 기관지인 <교육 희망>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선전물이 많이 배달된다. 그런데 예의 정 선생님은 오늘 모임 자리에서 그런 기관지나 선전물을 기간제나 강사 선생님들께 주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 선생님은 그것이 그 비정규직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라 교장이나 교감과 같은 학교 관리자들 때문에 생기는 눈치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정규직 교사이자 전교조 조합원인 내가,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교육 현안에 대한 정보를 알고, 나름의 관점이나 의식을 가지면 좋지 않겠느냐는 '선한' 취지로 전교조 기관지인 <교육 희망>을 어떤 비정규직 선생님 책상에 갖다 놓는다. 잠시 후 그 선생님이 그 신문을 펼쳐 본다. 그런데 우연히 자리를 지나치던 교감이 그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한다.

"○ 선생, 전교조 기관지 보네!"

이런 정 선생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장 중요한 재계약을 비롯하여 방과후 보충 수업 시수 결정이나 담임 배정 등 학교 생활의 전반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학교 관리자에게서 비정규직 교사인 자신이 이런 말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자. 더군다나 그 학교 관리자가 교원 노조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면? 정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내가 식당 문을 나서서 집에 돌아오기까지 귓전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우리가 비정규직 선생님들을 위한다고 하는 일이 진짜 위하는 게 아니라니까."

어쩌다가 학교 현장이 이 지경까지 돼버렸을까. 어제(30일) <인터넷 한겨레>의 기사(제목: 이명박 정부 5년간 '기간제 교사' 두배)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초중고 전체 교원 가운데 기간제 교사 비율은 9.0퍼센트에 달한다. 이는 교사 열 명 중 거의 한 명꼴이다. 참여 정부 시절인 2007년의 4.1퍼센트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비율이다. 이 기간에 늘어난 전체 교원 숫자는 2만 9590명이다. 그런데 이 수치는 같은 기간 기간제 교사의 증가분인 2만 1875명과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정규 교원 대신 기간제 교사를 늘려 필요한 교원을 충원한 것이다. 시간강사 수는 2007년 1527명에서 2012년 1만 4120명으로 10배 가까이나 폭증했다.

참여 정부 시절에는 그래도 상황이 괜찮았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는 전체 교원 가운데 기간제 교사 비율이 5.1%에서 4.1%로 줄었고, 시간강사도 2308명에서 1527명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 비정규직은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 기간에 대폭 늘어난 셈이다. 현 정부에서도 비정규직 교원의 비율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올해 전체 학교의 55퍼센트를 넘는 학교를 교과교실제로 운영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 교사 중심의 추가 교원 충원이 필요한 교과교실제가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 등의 개발 지구를 중심으로 학교와 학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당국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학교나 학급 수가 아니라 학생 수를 기준으로 교원을 배정하고 있다. 이러한 교원 수급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기간제 교사나 시간강사와 같은 비정규직 교원은 앞으로 그 비율이 꾸준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이유로 학교와의 재계약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교사에게서 우리가 자유로운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들 스스로도 교사로서의 자존감이나 자기 효능감을 갖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동료 교사나 학생들과 맺는 관계가 형식적이고 타산적으로 흘러가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마냥 탓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사이에는 쉽게 메울 수 없는 거대한 틈이 생겨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진정으로 원하는 이가 과연 있을까. 교사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비정규직 교원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기간제 교사, #시간강사, #비정규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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