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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물줄기 따라 사람도 쉬어간 그곳에 무섬마을이 들어섰다
▲ 내성천과 무섬마을 쉬어가는 물줄기 따라 사람도 쉬어간 그곳에 무섬마을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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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를 휘돌아온 내성천은 영주 무섬마을을 앞두고 소백산에서 흘러와 영주를 적신 서천(西川)과 몸을 섞어 예천으로 흘러간다.

바다를 향해 직선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없다. 먼 길을 달려온 물줄기는 산세에 눌려 잠시 쉬어간다. 봉화에서 쉼 없이 달려온 내성천은 영주 무섬마을에서 한번 쉬고, 예천 의성포에서 다시 한 번 쉰다. 태백에서 흘러들어온 낙동강 줄기는 하회에서 크게 한 숨 몰아쉰 뒤 삼강에서 내성천과 만나 유유히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물줄기가 쉬어가면 사람도 따라 쉰다. 쉬다가 정이 들면 물줄기는 보내고 사람은 거기에 머물며 다른 물줄기를 기다린다. 물과 함께 실려 온 흙은 잘게 부서져 물이 쉴 때 거기에 뿌리를 내린다. 금모래·은모래가 되어 사람과 같이 거기에 머물며 역사를 만든다. 무섬마을은 이런 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매화꽃이 떨어진 모습과 닮은 곳... 길지 중에 길지

물이 쉬면 모래도 쉬어간다. 햇빛 따라 금모래도 되고 은모래도 된다
▲ 내성천 금모래은모래 물이 쉬면 모래도 쉬어간다. 햇빛 따라 금모래도 되고 은모래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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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은 물섬이 변해서 된 것이다. 억지로 한자로 바꾸어 수도리(水島里)가 되었지만 무섬이 더욱 정이 간다.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국(연화부수·蓮花浮水)이니 매화꽃이 떨어진 모습과 닮은 곳(매화낙지·梅花落地)이라는 말을 빌릴 필요 없이 마을 앞에는 강물이 휘돌아가고 뒤에는 낮은 산이 감싸 안으니 한눈에 봐도 길지(吉地) 중에 길지다.   

섬에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 어려운 법이다. 무섬에 마을을 형성한 것은 대략 350년 전이고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남(潘南) 박씨가 먼저 터를 잡아 이 마을의 주인이 되고 선성(宣城) 김씨가 그 이후 들어와 정착하였다. 같이 부대끼면 정이 깊어지는 법이다. 두 가(家)는 서로 혼인을 맺고 전통을 이어왔다.

이런 무섬 마을에 가고 있다. 풍기-영주 길은 이미 큰길이 나 있어 이렇다 할 감흥이 없지만 영주를 벗어나 무섬까지 이어지는 길은 기찻길과 천변을 따라 가는 길이어서 색다른 감흥이 있다. 기차와 나란히 하는 행운을 얹지 못했지만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정겨운 길 중에 하나다.

길가 밭은 농부의 부지런한 손길로 정갈하다. 내 어머니 밭 같다. 한시도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 어머니가 생각나 내 눈은 금세 눈물이 맺혔다. 옆에 있는 아내에게 틀길 새라 딴전을 피워본다. 풍기읍에서 마주친 기름집 정경이 더해져 지난해 말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기름집에 대한 나의 단상은 그리움이다
▲ 영주 풍기에 있는 기름집 기름집에 대한 나의 단상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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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집에 대한 나의 단상은 '그리움'이다. 어릴 적 어머니 뒤를 쫓아 장에 가면 어머니는 기름을 짜거나 말거나 늘 기름집부터 들렀다. 기름집은 시골 장에서 소위 '아지트' 역할을 한다. 기름집은 장보러 온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요, 온갖 소식이 오가는 정겨운 장소다. 이래서 무섬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내 고향길처럼 편안하다.

무섬 마을은 육지 속 섬이어서 들어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콘크리트 수도교가 놓이기 전에는 통나무 외나무 다리로 마을을 오갔다. 외나무다리는 바깥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몇 백 년 동안 마을과 함께한 다리다.

몇 백 년 동안 마을과 함께한 다리

외나무다리는 바깥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외나무다리는 바깥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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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건너편에 서면 다리와 마을 그리고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S라인 다리는 까마득해 그 끝을 알 수 없는데, 다리 따라 눈을 옮기면 다리 끝이 하늘과 닿아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것 같다.

S자 다리는 무섬마을 멀리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인다
▲ 외나무다리와 무섬마을 S자 다리는 무섬마을 멀리 하늘에 닿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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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좁아서 한 번에 두 사람이 오갈 수 없다. 이를 위해 다리 옆에다 오가는 사람이 서로 비켜설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놨는데 마을사람들은 이를 '비켜 다리'라 부른다. 비켜 다리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내성천물을 보며 상념에 젖는다.

저만치서 오는 물은 다리를 통과하는 순간 이제 뒷물이 된다. 강물은 절대 뒷물이 앞물을 앞서지 않는다. 앞물이 가고 나서야 뒷물이 따라간다. 뒷물이 앞 물을 앞지르면 더 이상 강물이 아니다. 댐에 갇힌 물이 그런 물이다. 여기서는 뒷물과 앞 물이 뒤섞여 서로 다툼이 일어난다.

영주댐을 통과한 물은 더 이상 순한 물이 아니라 성난 물이다
▲ 내성천과 패인 백사장 영주댐을 통과한 물은 더 이상 순한 물이 아니라 성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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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이겨 댐을 먼저 통과한 물은 더 이상 순한 물이 아니다. 얼마 전 마을 앞에 영주댐이 건설되었다. 영주댐을 통과한 성난 물은 언제 성질을 부릴지 모른다. 고운 백사장은 물론 평화롭게 노는 물고기도 해칠지 모른다. 벌써 무섬마을 백사장은 성난 물로 패이기 시작했다. 물길과 백사장 사이에 층이 만들어지고 고운 모래는 쓸려가고 강한 자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민속마을

 담과 담이 이어져 마을길이 되었다
▲ 무섬마을 마을길 담과 담이 이어져 마을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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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역사는 켜켜이 쌓인 백사장모래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 마을은 이런 역사에 걸맞게 경북민속자료로 네 채, 경북문화재자료로 다섯 채가 지정되었으며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이제 무섬 마을은 제주성읍마을·경주양동마을·순천낙안읍성마을·안동하회마을·성주한개마을·아산외암마을·고성왕곡마을에 이어 우리나라 일곱 번째 민속마을이 되는 것이다. 

마을의 중심에 있고 가장 오래된 집이다
▲ 만죽재고택 마을의 중심에 있고 가장 오래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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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 토담이 이어져 마을길이 되었다. 길이 끊기면 집 마당이 길이 되어 이 마을은 촘촘히 이어진다. 마을을 돌다보니 눈길이 가는 집이 몇 채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크고 흥선대원군이 현판 글씨를 쓴 해우당고택이 수도교를 건너자마자 있고 마을 중심에 가장 오래된 만죽재고택이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지만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 해우당고택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지만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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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 마을은 시인 조지훈의 처가마을이다. 김뢰진 가옥은 시인 조지훈의 처, 김위남이 태어난 곳이고 몇 채 건너 김뢰진 가옥에서 분가한 조지훈의 장인집, 김성규 가옥 터가 있다. 실질적으로 이곳이 조지훈의 처가댁이다. 조지훈은 이곳에서 처와 연을 맺고 혼인을 하였다.

무섬마을은 함양 안의의 허삼둘가옥 마냥 솟을대문이 지나치게 커 허세를 부리는 대갓집도 없다. 초가는 초가대로 기와집은 기와집대로 형편에 맞게 옹기종기 모여있다. 비록 마을에 우물은 없었더라도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난 정의의 샘이 샘솟는 집들이다.
 
 이 마을의 정신이 깃든 듯 초가라 하더라도 옹골차게 생겼다
▲ 박덕우가옥 이 마을의 정신이 깃든 듯 초가라 하더라도 옹골차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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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섬마을은 한집 한집 개별적으로 보는 것보다 까치구멍초가와 기와집, 초가집마다 딸려있는 삿갓지붕을 강둑에 앉아 감상하는 것이 좋다. 멀리 흐릿하게 들어오는 산세는 이 마을의 지붕선과 많이 닮아 있다.

초가와 기와집이 형편대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 무섬마을 정경 초가와 기와집이 형편대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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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초입에 '무섬 봄 정기 음악회'와 '버뜩오소, 외마무건너서'라는 두 개의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5월 25일 오후 7시 30분, 무섬문화촌 마당에서 봄 정기 음악회가 열린다. 모두 "버뜩 가보소, 외나무건너서…."  

덧붙이는 글 | 무섬 마을은 지난 17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무섬마을, #외나무다리, #해우당, #만죽재, #조지훈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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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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