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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역이 있는 율촌면 조화리 마을에 지난 11일 밤 정체불명의 흑비가 내려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율촌역이 있는 율촌면 조화리 마을에 지난 11일 밤 정체불명의 흑비가 내려 주민들이 긴장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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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태어나서 57년을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첨이요, 요즘 이장님이 밭에서 캔 채소를 먹지 말라고 계속 방송하고 그래요. 빨리 원인이라도 밝혀졌으면 불안하기라도 덜하지 나 원 참..."

지난 11일 밤 정체불명의 '흑비'가 내린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마을주민 지인숙(57)씨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일명 흑비로 불리는 검은 비는 여수를 확 뒤집어 놓았다.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간 내린 비는 차량과 건물, 농작물 등을 모두 검게 오염시켰다. 이 마을은 율촌 1산단과 불과 1~3km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정체불명의 검은비에 주민들 덜덜

지씨 아주머니의 집은 흑비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율촌1산단과 약 2km를 사이에 두고 있다. 비에 섞여 하늘에서 내린 검은 쇳가루와 오염물질은 한창 꽃피고 있는 옥수수, 고추, 깨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마침 추수를 앞둔 복분지와 오디는 더 검게 변했다. 다행히도 14일 촉촉이 내린 비로 농작물에 달라붙은 이물질은 다소 씻겨나갔지만 이미 팔 수 없는 상품이 되어버려 농심을 울렸다. 그는 "평소 밭에서 일하다보면 기침과 두통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고 14일 기자에게 털어놨다. 

이후 전남도와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영산강환경청, 여수·순천·광양시 등 6개 기관과 여수환경운동연합, 주민대표 등이 13일 율촌면에서 첫 회의를 갖고 원인규명에 나섰다.

이들은 '흑비'의 원인으로 지목된 율촌1산단 쇳가루 분진 배출업소 18곳을 우선 선정하고 현장점검 방식으로 조사에 착수중이다. 전남경찰청 동부과학수사팀도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 국과수에 성분분석 의뢰를 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흑비, 기상 관측 이래 처음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간 내린 흑비로 차량이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다.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간 내린 흑비로 차량이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다.
ⓒ 아침신문 오정근 기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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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흑비가 내린 경우는 기상청 관측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흑비는 육안으로 확인이 힘들다. 흑비가 내린 율촌면 조화리는 화력발전소와 조선소 등 21개의 기업이 입주해있다.

이곳에서 김밥 집을 운영하는 한주민은 "배달을 다녀오는데 밤이라서 검은 비인지 생각 못했다. 밖에서 비를 맞고 오니 얼굴이 따갑고 시커멓게 변해 젖은 옷을 벗으니 비를 맞은 몸 안에도 흔적이 남았다"고 말했다.

처음 피해를 접수한 것은 귀가하던 김아무개였다. 김씨는 차를 타려는데 공용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이 시커먼 물질로 덮여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후 여수시 기후환경과와 언론사에 제보를 했다. 출동한 율촌파출소 경찰은 샘플을 채취해 과학수사대에 의뢰해 놓은 상태다.

이후 주민대표들은 대응을 논의했다. 민관합동점검반도 꾸려졌다. 이들은 율촌산단내 철강관련 업체를 우선적으로 지목해 합동점검이 실시중이다. 이 과정에서 한통의 제보를 받았다. 흑비를 최초로 보도한 <아침신문> 오정근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인근회사 경비가 율촌산단내 산업폐기물을 취급하는 H산업에서 밤 8시경 꽝하는 섬광과 함께 폭발사건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를 갔는데 업체에서는 그런 사실 없다고 부정했습니다. 증언은 있으나 증거자료가 없는 상황이 된거죠. 무엇인지 모르지만 굴착기로 작업만 흔적만 있더라고요."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약 산업폐기물을 취급하는 업체에서 가연성 가스가 폭발했다면 동풍을 타고 오다 흑비로 내렸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 대책위의 판단이다. 기자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H산업 이재복 이사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H산업 이 이사는 섬광과 함께 화재가 났다는 제보가 있었다는 물음에 "우리업체는 특이사항이 전혀 없고 그 다음날 섬광 얘기가 나와서 관계당국에서 조사해 시료채취중이다"고 말했다. 또 대책위에서 가보니 굴착기로 작업한 흔적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지 않다. 제보이후 환경청 및 관계당국서 취합했고 조사결과 혐의 증거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채취한 시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검은 비의 성분은 자석에 붙는 걸로 봐서 쇳가루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샌딩작업을 많이 하는 조선소 공장에서 날아왔을 가능성도 크다.

주민들 "흑비, 1년전부터 내렸다" 증언도 ... 대책 세워야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간 내린 흑비로 농산물인 옥수수(좌)와 참깨(우)가 철가루로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다.
 율촌면 조화리 일대에 30여 분간 내린 흑비로 농산물인 옥수수(좌)와 참깨(우)가 철가루로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다.
ⓒ 아침신문 오정근 기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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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흑비의 피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민들은 1년 전부터 흑비가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율촌 대책위원회 김준태 사무국장은 지난해 11월15일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에 율촌현안 문제에 대해 직접 민원을 제기한 바 있다"면서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 분진(쇳가루)가 쌓이므로 대책(원인조사)을 요구했으나 민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1만여 제곱미터에 걸쳐서 내린 흑비는 검은 쇠 성분입니다. 당시 경찰청이나 환경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전혀 답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 진상규명을 확실해 해서 앞으로의 재발방지를 위한 산단 관리 대책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 국장은 또 "비가 와서 눈에 보였으니 망정이지 평소에는 대기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쇳가루를 마셨을 거라는 불안감이 크다"며 주민들의 심정을 전했다.

민원을 넣은 사람은 있는데 민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블랙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는 격이다. 향후 관계당국의 무사안일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흑비와 같은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하자 여수환경운동연합은 원인조사 및 피해정밀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환경련은 12일 '율촌면 흑비에 대한 진실을 밝혀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 원인조사 및 피해정밀조사 ▲ 토양오염정밀조사 ▲ 농작물 피해 및 오염도 조사 ▲ 지하수 오염도 조사와 주민 역학조사 ▲ 관련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정체불명의 흑비가 내린 율촌면 조화리 마을 너머 조선소가 들어서 있는 율촌1산단이 보인다.
 정체불명의 흑비가 내린 율촌면 조화리 마을 너머 조선소가 들어서 있는 율촌1산단이 보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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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율촌면 어촌계는 지난해 바지락이 집단 폐사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은 산단의 침출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으나 업체와 소송 끝에 1심에서 패소해 항소한 상태다. 관계당국은 이번을 기회로 대기중에 날린 원인모를 흑비의 성분을 반드시 밝혀내 주민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한다. 검은비는 결국 토양과 지하수까지 오염시켜 주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곳이 광양만권경제구역자유청이라고 하나 개발의 논리에 밀려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문제'가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관계당국은 이번에 내린 하늘의 경고인 흑비를 반면교사로 삼아 율촌산단 관리 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대책을 바로 세우길 바란다. 소잃고 외양간까지 잃지 않으려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흑비, #율촌산단, #검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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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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