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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이제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 되었습니다.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유럽의 보편적 복지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유럽 복지국가 대사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국가'란 꿈을 나누기 위해 주한 스웨덴 대사와 독일대사, 프랑스 대사의 강연을 소개했습니다. 끝으로 독일 사회민주당의 에버트 재단 한국소장이 말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크리스토퍼 폴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은 2일 국회에서 '독일사회민주주의 현황과 개혁논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은 경제성장을 낳았지만 양극화 등 폐해도 불러왔고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실책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폴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은 2일 국회에서 '독일사회민주주의 현황과 개혁논의'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은 경제성장을 낳았지만 양극화 등 폐해도 불러왔고 무엇보다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실책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 진보정의당 진보정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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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란 꽃이 활짝 피었다. 많은 나라들은 복지재정을 늘렸고, 모두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사민주의' 꽃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밭에 뿌리를 내리려고도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떠나갔다.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지금도 여전히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의 크리스토퍼 폴만 한국사무소 소장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에서 말했다. 독일 사민당은 올해로 150년이다. 금세 정당이 생겼다 사라지는 한국과 비교해 볼 때 그 뿌리가 튼튼해 보이는데도 폴만 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사민당이 겪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제3의 길'을 꼽았다. 1998년 사민당은 녹색당과 맺은 '적록연정'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한다. 하지만 통일 후 동독에 매년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야 했고, 실업문제는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은 탓에 사민당은 발걸음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고용 유연화, 시장논리 강화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독일판 '제3의 길'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신중도(Neue Mitte) 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이 노선은 "한편으론 사민주의의 현대화, 다른 면에선 신자유주의의 여러 가치들,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국제경쟁에 뛰어드는 일을 사민주의가 받아들인 셈"으로 볼 수 있다. 폴먼 소장은 "그 첫해 경제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며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식 신자유주의 '제3의 길'은 양극화를 남기고...

복지 혜택을 줄이고, 해고 요건은 약해진 반면 기업의 세금을 줄이는 등 경제 성장에 방점을 찍은 사민당의 정책은 많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사민주의의 중요한 축이었다. 폴먼 소장은 "사민주의 안에는 자유, 정의, 연대라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다"며 "세 가치가 맞물린, '약자에게 도움을 주고,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해야 사회가 진보한다'는 생각이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묶어줬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와 정의, 연대를 똑같이 중시하기보다 효율을 강조한 '제3의 길'은 사민당과 노동조합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들었다. 폴먼 소장은 "이 부분은 사민당 안에서도 전략적 실패로 인정한다"고 했다. 결국 2003~2004년 들어 지지자들의 반발과 실망이 눈에 띄게 드러났고, 적록연정은 2006년 보수성향인 기독교민주당(기민당)-자유민주당(자민당) 연합에 정권을 넘겨야 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민당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폴먼 소장은 "당시 사민당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회복할 수 있을까'부터 고민을 시작했고, 그 결과 우리의 산업 자원을 좀 더 생태적으로 활용하고 또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독일만이 아니라 유럽의 부채 위기를 잘 극복하고, 유럽연합(EU) 회원국 어디서든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사민당의 과제다.

하지만 어떤 정책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좋은 사회(Good society) 담론'이다. 폴먼 소장은 "사민당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를 이룰 것인가'를 중시한다"며 "좋은 사회담론은 '21세기형 좋은 사회는 구성원들이 무엇을 누리는 곳일까?'란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모두가 자기 삶에서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건 한 나라 차원에서 이뤄질 수 없어요. EU,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자원이 한정돼있기 때문이죠. 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쓸지를 국제적으로 고민해야 모든 나라와 시민이 함께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음은 폴먼 소장이 청중들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슈뢰더식 개혁 결과, 경제는 좋아졌어도 워킹푸어 늘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폴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의 강연 현장.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폴만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의 강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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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의 길'의 실패를 얘기했는데,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배경도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그 성과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야 비로소 나타나고 있어 한국에서도 독일 모델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결국 개혁은 단기적 성취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장기적 목표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늘 부딪힐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지적한 대로 당시 적록연정이 제3의 길을 받아들여 신자유주의의 길을 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지배적 담론이었고 다른 대안을 찾기도 어려웠다.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독일은 통일 후 10년 동안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기에,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자원을 더 자유롭게 쓰기 위해 복지예산을 축소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어젠다 2010(기자 주 - 2003년 사민당 소속 슈뢰더 총리가 '더 높은 성장과 더 많은 일자리'를 강조하며 내놓은 개혁안. 노동 유연화, 기업 규제 완화, 임금 상승 억제, 복지 혜택 축소 등이 주된 내용)' 이후에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적록연정 이후 우선 추가 고용이 쉬워졌다. 고용주가 부담하는 사회안전비용이 줄었기 때문에 고용주는 더 많은 고용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중요한 이슈는 '탈핵'이다. 적록연정의 탈핵 선언을 철회하려던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 다시 탈핵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것 또한 적록연정의 성과 중 하나다. 경제침체에서 탈출한 덕에 통일로 인한 적자 역시 많이 해소됐다.

하지만 슈뢰더 정부의 실책이 있었다. 첫째,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당시에는 정책을 발표한 뒤 곧바로 실행하곤 했다. 이 정책을 왜 도입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기에 사회적 공감을 얻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장기적 안목을 갖는 문제다. 당시 사민당의 여러 개혁 조치로 당장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 그 결과 투표로 심판을 받아 (사민당은) 정권을 잃었다. 하지만 (개혁의) 효과가 10년, 20년이 지나서야 나타나고 있고, 메르켈 총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봐야할 지점은,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적록연정의 개혁 조치로) 독일 국가경쟁력이 높아지고 국가 부채가 줄어들었지만 사회 양극화가 크게 심각해졌다. 현재 독일에는 일을 해도 가난한 '워킹푸어'가 약 200만 명에 달한다. 비정규직 수도 많이 늘었다. 거시경제지표들은 좋아졌지만, 사회적 환경이 나빠진 셈이다. 사람들이 사민당에 투표할 때는 더욱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 중산층이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바랐는데 지금은 사회에서 밀려나는 계층이 늘고 있다."

"유럽 사민당들 모두 어려워...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 유럽의 사민당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독일 사민당은 세력 확장을 위해 청소년이나 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 에버트재단은 전 세계 사민당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하다.
"스웨덴 등 유럽의 사민당들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정권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덴마크 등에서 최근 다시 집권에 성공하는 걸 볼 때 현재는 조금씩 힘을 추스르고 있는 회복기라 생각한다.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민당의 역사는 150년이다. 지난 10년간 조금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도, 150년에 비하면 10년은 짧다. 다가올 5~10년에는 나아지지 않을까? 물론 저절로 개선될 일은 없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젊은 층에서 조금 더 매력적인 당으로 다가가려 노력하는 한편, 당이 조금 더 투명해지도록 힘쓰고 있고,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당원으로 가입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탈퇴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또 2년째 비당원도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을 여는 등 더 개방적인 당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버트재단은 사민당 소속이 아니다. 우리를 포함해 독일에 있는 정치 재단 6곳은 연방 의회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다른 재단들 역시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만 사민당과 에버트재단은 사민주의 아래서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지시하거나 에버트재단이 그들을 지원할 수 없다. 금전적으로도 아무 거래가 없다.

모든 재단은 사회 안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데 기여하기 위해 활동한다. 에버트재단의 경우, 사회 안에서 사민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정치인 교육도 맡고 있다. 사민당뿐 아니라 노조와 시민사회도 우리의 파트너다. 사민당 개혁만이 우리의 역할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사민당과 거리를 두며 독립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정당 개혁 등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당이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이념적 틀을 제시하고 연구하는 일은 에버트재단의 몫이다."


태그:#복지, #독일, #에버트재단, #진보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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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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