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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마을 벽화.
 삼방마을 벽화.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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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벽화마을 중에 하나로 알려진 삼방마을은 최근에 관광객들이 마을로 드나드는 입구 한 곳을 봉쇄했다. 마을로 걸어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엑스 자 형태로 덧댄 나무판자를 세워놓고 관광객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벽화마을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여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됐다. 그런데 그런 마을에서 주민들 스스로 관광객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봉쇄는 일주일이 안 돼 중단됐다. 비록 일시적인 조치에 그치기는 했지만, 이 마을이 갑자기 관광객들의 통행을 막아야만 했던 데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을 법하다. 그 사연은 대체 무엇일까? 주민들이 입구를 봉쇄한 것은 지난 3월 이 마을 앞에 있는 철암역으로 중부내륙 관광열차와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개통이 된 뒤에 일어난 일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개통,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늘었지만...

삼방마을 가는 길, 안내 표지판.
 삼방마을 가는 길, 안내 표지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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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내륙 관광열차(O-TRAIN)'와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관광열차다. 그 중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백두대간의 숨은 풍경을 기차를 타고 가며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 열차는 바깥 풍경을 잘 내다볼 수 있게, 천정을 제외하고 객차 창가를 전면 유리창으로 개조했다. 몸체를 빨간색으로 도색한 열차가 백두대간 깊은 산 속을 느릿느릿 지나가는 풍경도 꽤 이색적이다. 이 기차는 경상북도 봉화군 분천역과 강원도 태백시 철암역 사이를 하루 세 번 오간다. 운행 거리는 27.7km, 중간에 양원역, 승부역, 석포역을 지나간다.

주말이면 하루 1천여 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이 열차를 이용한다고 하니, 상당히 성황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자연히 이 열차가 지나가거나 도착하는 역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이 열차가 개통되면서, 이 열차의 종착역인 철암역도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철암동 까치발 건물. 한쪽 발을 철암천 위에 딛고 서 있는 풍경.
 철암동 까치발 건물. 한쪽 발을 철암천 위에 딛고 서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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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에서 내려 역 주변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역에서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그 바람을 타고 철암역 주변을 관광지로 만들려는 사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 사업들 중에 하나가 철암역 주변을 '태백광산역사체험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철암역이 있는 철암동은 국내를 대표하는 탄광 지대 중에 하나다.

철암동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태백광산역사체험촌' 조성 사업은 1980대 말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폐허가 되다시피한 철암역 일대를 역사 속의 탄광마을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다. 태백시는 철암동을 그 옛날 탄광촌 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지역으로 재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철암역 선탄장.
 철암역 선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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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 일대에는 현재 석탄 산업이 아직 호황기에 있던 시절 수많은 승객들을 실어나르던 철암역사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여전히 가동 중인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인 '철암역 선탄장', 철암역 앞 철암천 위에 한쪽 발을 딛고 올라서 있는 '까치발 건물' 등이 있다.

철암역 선탄장은 '살아 있는 석탄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돼 있다. 까치발 건물은 또 석탄 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시절에 철암 시내의 번화했던 거리 모습이 어땠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이 건물들이 개발이 되고 나면, 철암역 일대도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과거에는 이 지역 주민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셈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그늘은 있기 마련이다. 태백광산역사체험촌 조성 사업에 이 지역의 벽화마을인 삼방마을이 빠져 있다. 변화가 진행되면서, 한쪽에서는 그 같은 변화에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마을 주민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삼방마을은 태백시가 지역 내에서 정책적으로 조성해온 벽화마을들 중에 하나다. 그런데 그 마을 주민들이 지난 10일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마을 입구 한 쪽을 막았다. 이유는 관광객들에게 "(마을이 이렇게 퇴락한 상태로)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삼방마을은 철암역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삼방마을, 계단길을 오르고 나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
 삼방마을, 계단길을 오르고 나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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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잘 나가던 탄광마을, 지금은 초라해서 보여주기 싫어

삼방마을 올라가는 계단 길. 한쪽에 길을 막았던 나무 판자가 치워져 있다.
 삼방마을 올라가는 계단 길. 한쪽에 길을 막았던 나무 판자가 치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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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이 위치한 철암동은 태백시에서 과거 '잘 나가던' 탄광 마을 중에 하나다. 그러다 1980년 말에 석탄합리화 정책이 시작되고, 그 정책에 따라 1993년에 '강원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함께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로 인해 삼방마을을 비롯한 이곳의 마을들 대부분은 1993년 이후로, 세월이 아예 멈춰서버린 것 같은 풍경을 하고 있다. 오히려 세월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급격히 퇴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 삼방마을은 철암동의 그런 여러 마을들 중에서도 특히 더 낙후된 달동네 마을이다.

삼방마을은 철암천 건너편 두골산 산비탈 위로 위태롭게 올라서 있다. 이 마을은 탄광이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생겨났다. 강원탄광을 중심으로 지역에 인구가 늘면서, 주택 수요도 급증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철암천 위에 까치발을 딛고 올라선 집을 짓는가 하면, 철암천 너머 산비탈에까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삼방마을에서 내려다 본 철암동 시가지와 철암역 선탄장.
 삼방마을에서 내려다 본 철암동 시가지와 철암역 선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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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석탄 산업이 호황일 때, 삼방마을에만 600여 세대가 살았다. 그때는 마을에 작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골목이 미로를 연상할 정도로 복잡했다고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술을 한잔 거나하게 걸친 광부들이 마을로 향하는 계단 길을 걸어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거의 없어졌다. 강원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광부들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은 데다, 미래가 불안해진 그 사람들 대부분이 또 마을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라진 건 마을사람뿐만이 아니다. 그때에 지어진 집들도 대부분 헐려 나가고, 지금은 그 집들 중 겨우 10분의 1만 남아 삼방마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삼방마을 벽화들.
 삼방마을 벽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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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지금의 삼방마을은 여러 모로 7, 80년대에 보던 서울의 달동네를 연상시킨다. 철암천변 높은 산비탈 위에 층층이 올라서 있는 집들이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비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달동네에서 가난한 삶은 이어가던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제는 지나치게 퇴락한 풍경이다.

지역 개발에서 배제된 마을, 더 큰 소외감을 느끼는 주민들

삼방마을에서 만난 강아지. 방문객이 낯선지 크게 짖어댔다.
 삼방마을에서 만난 강아지. 방문객이 낯선지 크게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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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좁은 골목 안에 벽화를 그려넣음으로써 이 마을이 과거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살던 마을임을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아직은 그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고 있다.

그보다는 마을 구석구석 허물어져가는 빈집들과 그 빈집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쓰레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상태로 마을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던 주민들의 말이 그냥 가볍게 내뱉은 말이 아니다.

사정이 그런데도 그동안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건 이 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매력 때문이다. 삼방마을은 7, 80년대, 온 국민이 국가 재건을 위해 땀 흘려 일하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옛날 탄광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장소다.

삼방마을은 또 철암역 선탄장과 까치발 건물 등 철암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다. 그런 저런 점에서 삼방마을 역시 철암역 선탄장이나 까치발 건물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곳이 이번에 아예 개발 대상에서조차 제외됐으니 주민들의 마음이 결코 편할 리 없다.

철암동 까치발 건물. 철암천 쪽에서 바라본 풍경.
 철암동 까치발 건물. 철암천 쪽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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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동 까치발 건물, 전면에서 바라본 풍경.
 철암동 까치발 건물, 전면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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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동 도로변 한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철암동 도로변 한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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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가 추진 중인 태백광산역사체험촌 조성 사업이 자리를 잡고 나면, 철암동에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게 틀림없다. 태백시가 이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삼방마을 주민들이 느끼는 이 마을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현재 태백광산역사체험촌을 조성하는 사업은 대부분 철거 직전의 까치발 건물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작업에 쏠려 있다. 태백시는 철암천변에 지금은 버려진 상태로 남아 있는 까치발 건물 11동을 되살려, 그 안에 생활사 박물관, 아트하우스, 디지털극장을 조성하는 등 이 건물들을 탄광촌의 역사와 생활을 체험하는 관광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태백시는 이 체험촌을 조성하는 데 올해 12월까지 총 사업비 42억 4000만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끝나고 나면, 철암역 선탄장과 까치발 건물 등이 있는 철암동 거리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남은 건 삼방마을이다.

그로 인해 지금 삼방마을 주민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최근 철암동 전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철암역 담에 쓰고 그린 글과 그림. 한 광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철암역 담에 쓰고 그린 글과 그림. 한 광부의 추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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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인 7,80년대만도 못한 2013년

삼방마을 주민들을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에 살면서, 오래 전부터 불편한 생활을 견뎌왔다. 마을에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연탄 같은 생활필수품들은 모두 등에 지고 날랐다. 나중에 마을 입구까지 도로가 생기기는 했지만, 소방도로는 아직도 개설이 되지 않아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삼방마을의 한 주택.
 삼방마을의 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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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곳곳에 빈집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마을에 있는 집들 중 절반이 빈집이다. 그 빈집들이 마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철암천 건너 철암역 선탄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도 골칫거리다. 그로 인해 마을 주민들 상당수가 이미 마을을 떠난 상태다. 다른 주민들도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삼방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오래 전 탄광 일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 주민들 대부분 지금은 6, 70대로,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든 나이다. 이런 형편으로는 이주도 쉬운 게 아니다. 주민들에게 남은 소망은 이제 마을이 좀 번듯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벽화마을은 둘째 치고, 우선 마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다.

어떻게 보면, 이 마을 주민들의 소망은 지극히 단순하다. 삼방마을(철암동 11통) 김근호 통장은 "마을을 잘 가꿔보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벽화마을도 조성하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며, "지금은 우리 마을이 옛날에 탄광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만큼만이라도 사람이 사는 면모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통장의 말대로라면 이 마을 주민들은 지금 7, 80년대만도 못한 세월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또 "최근에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하루 70명 정도로 늘었다. 그런데 마을에 보탬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섭섭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삼방마을은 앞으로도 계속 벽화마을로 남을 예정이다. 마을 입구 봉쇄는 단 며칠에 그쳤다. 김 통장은 마을을 지금 상태로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라 옛날 탄광촌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마을로 보존하는 데 애쓴다는 계획이다. 그는 화가와 논의해서 좀 더 많은 벽화를 그릴 생각도 가지고 있다.

철암역. 역 앞을 흐르는 철암천 변에도 까치발 건물이 서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철암역. 역 앞을 흐르는 철암천 변에도 까치발 건물이 서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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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 앞 철암천. 천변에 서 있던 까치발 건물들을 허물고 난 흔적.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이 철암역사.
 철암역 앞 철암천. 천변에 서 있던 까치발 건물들을 허물고 난 흔적.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이 철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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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에서는 조만간 철암동 전체가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런 중에 벽화마을인 삼방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삼방마을에서는 그에 앞서 먼저,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삼방마을은 낙후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광지로 거듭나는 건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편할 리 없는데, 그 마을에 그려진 벽화가 아름답게 보일 리 없다. 주민들은 삼방마을을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데 태백시가 좀 더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태그:#삼방마을, #철암역, #철암동, #백두대간 협곡열차,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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