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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말이 많다. '불경스럽게도', 뒷간 갈 적 맘 다르고 올 적 맘 다르다는 속담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무상보육 철회(?) 논란 때문이다. 무상보육 불똥은 새누리당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향해서도 튀고 있다. 우리는 조만간 티비에서 새누리당의 원내 사령탑인 최경환 원내대표와 박 시장 간의 불꽃 튀는 토론회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새누리당의 무상보육 토론회 제안을 박 시장이 전격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상보육만이 문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작년 대선 국면에서 아주 획기적인 보건의료 공약을 내놓았다.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100% 보장과 소득수준별 본인부담 상한제 등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들 공약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실현 가능성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박 후보의 공약을 살펴본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들이 이들 공약에 대해 한결같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다. 심지어 박 후보의 공약에 대해 "실현될 수도 없고 실현돼서도 안 되는 정책"이라는 비판까지 있었음을 밝혀 놓았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드라마 <추적자>의 한 대사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비꼰다.

"정치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거지."(114쪽)

이 책의 저자는 의사 출신의 저널리스트다. 1999년부터 의학 전문 신문 <청년의사> 편집국장 또는 편집주간으로 일하면서 의과대학에서 인문사회의학 관련 강연을 하는 이다. 의사 면허를 갖고 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의사는 아니다. 추천인 말마따나, 저자가 이 책에서 '선진의료 한국을 위한 아픈 처방'을 내릴 수 있던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의료 현장에서 벗어나 있는 저자의 제3자적인 눈 덕분에 이 책에 실린 많은 내용이 독자들에게 좀 더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부터가 그렇다. 저자는 우리가 병원에 가고 건강보험료를 내며 보건의료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났던 근본적인 원인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보건의료 관련 문제에 좀 더 수월하게 접근하고, 그에 대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가 여러 가지 '불편한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의료가 순전히 그 자체만의 요인으로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한다. 저자가, 의학은 과학이지만 동시에 문화로서의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보건의료 분야가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외에 의학 자체가 갖는 불확실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완벽한 의료는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완벽한 의료는 없다는 사실

저자는 보건의료가 사회안전망의 하나로서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 거대한 산업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건의료 분야는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의료제도, 또는 형평의 원칙이 지켜지는 동시에 효율적인,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높으면서도 저렴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들 논점을 밝히기 위해 보건의료 분야의 거의 모든 문제를 건드린다. '제1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한국의료의 현재'가 특히 그렇다. 여기에는 의료비 지불제도, 의료민영화와 의료일원화, 의과대학 신증설 등의 격렬한 논쟁거리들이 등장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보건의료 정책과 의사들의 '완고한' 태도, 예의 박근혜 후보의 공약 논란과 같이 정치와 여론에 휘둘리는 보건의료 정책 등의 문제도 있다.

제2부에서는 한국의료의 발전과정을, 제3부에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미래를 모색한다. 지난 2000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의료대란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어가는 현실 속에서 과학기술이 바꿔놓을 의학의 미래는 어떠하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이들 두 곳의 주요 내용들이다.

이들 모든 대목에서 저자는 최신 통계 자료와 자신이 직접 정리하고 그린 일목요연한 도표, 그래프 등을 활용한다. 참고나 근거 사례로 들고 있는 자료들도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데 적적할 뿐더러 부족함이 없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미처 모르고 있었거나 잘못 알고 있을 만한 사실들을 새로 알게 해주는 정보도 풍성하게 담겨 있다.

가령 저자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난 사실을 의료보험의 긍정적인 영향의 하나로 강조한다. 그렇게 양호한 국민 건강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의료비를 적게 지출하는 효율성도 돋보인다. 특정한 의사를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거의 모든 경우에 '즉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점도 저자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운용의 특장점으로 꼽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OECD 국가들에서 적게는 17%에서 많게는 69%의 사람들이 전문의 진료를 받기 위해 4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다는 설문응답 결과와 대조된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에는 그늘도 많다. 저자가 드는 대표적인 문제가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다. 의료비의 본인부담률이 높다는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자료에 따르면, 의료에 소요되는 전체 재원 중에서 공공에 의해 조달되는 비율은 OECD 평균치가 72%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58%에 불과하다. 총비용의 42%는 환자나 가족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OECD 국가 중에서 본인부담률이 우리보다 높은 곳은 영화 <식코>의 나라인 미국 그리고 멕시코와 칠레뿐이다.

건강보험은 '대단한 행운'

그렇다면 이들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많은 사람이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는데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받는다고 불평하는 점을 꼬집는다. 왜 그런가. 화재보험에 가입했다고 집에 불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건강보험료만 납부하고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전혀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설령 그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한 행운이지 불평거리는 아니라고도 말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건강보험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켠다. 국내 민간의료보험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 약 17조 원으로, 약 33조 원인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그만큼 많은 국민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서 월 수만 원씩의 돈을 기꺼이 갖다 바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에는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 건강보험의 재원이 합리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약간의 관리운영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 전부는 국민에게 되돌아간다. 하지만 기업이 운영하는 민간의료보험은 관리운영비 외에 광고비를 비롯한 각종 마케팅 비용과 기업의 이윤까지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을 가입자에게 돌려준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여전히 건강보험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 발휘하기라는 두 가지 역설적인 해법을 제안한다. 저자는 만병통치약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비방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건의료 분야의 이슈들은 대단히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까지 하다. 확고한 원칙과 함께 현실적 상황에 맞는 융통성을 적절하게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앞서 잠깐 살핀 것처럼, 후퇴하거나 철회되고 있는 공약들이 적지 않다. 이를, 저자가 내놓은 결론에 맞춰 '좋게' 해석하면, 원칙 지키기와 융통성 발휘하기의 어려움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 까놓고 말하면 박 대통령과 집권 새누리당이 그런 어려움을 별로 느끼려 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 말도 없었다는 듯이 입 딱 씻고 전혀 모른 체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뻔뻔스럽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 <개념의료> (박재영 지음 | 청년의사 | 2013. 8. 20. | 415쪽 | 1만 8천 원)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박재영 지음, 청년의사(2013)


태그:#<개념의료>,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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