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0년 12월 완공된 대청댐 주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수몰의 아픔을 담아 조성한 청원 문의 마을이나, 원효대사가 '큰 호수가 생길 것'과 '왕이 살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높은 곳에 절을 지으라고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현암사, 충남지역 최대 강변해수욕장이었던 내탑동 수영장, 수몰 이후 인내하며 살아가는 대청호 주변의 마을들, 상수원 때문에 피해를 입는 시민들의 이야기까지...

아름다운 마을과 호수를 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오백리길이다.
▲ 오백리길의 아름다운 마을과 호수 아름다운 마을과 호수를 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오백리길이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대전과 충청의 식수원인 대청호의 희로애락이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 시민들의 관심도 많지 않다. 식수원에 대한 고마움은 잊고 편하게 이용만 한 것은 아닐까? 여름철 대청호에 떠오른 녹조에 대해 문제만 제기했지, 실제 그 안의 사람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던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2007년부터 시작한 대청호 500리길 사업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길과 함께 담아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대청호의 다양한 사연과 내용을 길이라는 곳에 녹여 담아낸다면 명실상부한 아름답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대청호 500리길조성 프로젝트는 2013년 5월 마무리 되었다.

대전발전연구원에서 만든 녹색생태관광사업단에서 74억 원을 들여 만든 대청호 500리길이 2012년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 기대가 현실이 될 거라 생각했다. 직접 대청호 500리길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대전환경운동연합과 대청호보전운동본부는 국제적인 상을 받았고, 대청호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대청호 500리길을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회원과 자원활동가들이 모여 5개월간 28개코스를 모두 걸어보았다. 진행과정에서 28개 코스에서 21개로 변경되어 혼란이 있었지만, 녹색생태관광사업단에서 발행한 소책자를 들고 3월에서 7월까지 정말 꼼꼼하게 500리길 현장을 돌아봤다. 그러나 초봄에서 여름까지 5개월간 강행군을 하며 돌아본 500리 길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21개 코스를 다 돌아본 후 8월 참가자들끼리 모여 500리길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산적한 문제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첫째 길이 없어진 곳이 많았다. 홍보부족도 문제였지만, 초보자들에게 어려운 난코스로 설계된 탓인지 500리길을 찾는 사람이 없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길도 많았고, 아예 길을 찾을 수 없는 곳도 종종 있었다.

둘째,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정확한 길을 찾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거리가 틀린 표지판부터, 방향이 잘못 표시된 표지판까지, 셀 수 없이 많았다. 셋째는 지자체간 길에 대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지자체별로 호반길, 누리길, 500리길 등의 여러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 한 곳에 표지판이 2~3개씩 겹쳐져 설치된 곳도 있었다. 정리가 필요해보였다. 정작 필요한 곳에는 없는 표지판이 중복으로 있는 것을 볼 때는 예산이 허투루 사용되었다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다.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중 일부구간은 이렇게 부서진채 방치되어 있다.
▲ 부서진 오백리길(5구간) 대청호 오백리길 5구간중 일부구간은 이렇게 부서진채 방치되어 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넷째, 위험한 길이 많았다. 대청호의 수위가 변하면서 물에 잠겼던 길에는 난간이 부서져있었고, 침식과 사태로 인해 길이 부저시면서 낭떨어지 등이 생겨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다섯째, 중요한 역사적 자원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정식 코스에는 들어있지 않아 아쉬웠다. 월리사나, 문의마을, 작은용굴 등 대청호에서 그나마 가볼 만한 곳이 정식코스가 아닌 코스 외지역으로 분류돼 가볼 만한 곳 정도로 소개가 되어 있어 연계가 아쉬웠다.

같은곳에 다른 내용의 푯말이 설치되어 있다.
▲ 서러다른 푯말 같은곳에 다른 내용의 푯말이 설치되어 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여섯째는 대중교통 등으로의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특히 순환코스 등이 거의 없어 실제 걷기를 마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데에 따른 불편을 해소할 방법 없었다. 때문에 차량을 대절하거나 온 길을 다시 돌아와야만 해서, 걷는 길의 편의성이 떨어졌다. 대중교통을 확보하는 등의 이용객을 위한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마을이나 자원을 전혀 연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을 주민 중엔 길이 조성된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워진 간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앞에 다시 세워 길안내를 노골적으로 막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민과의 연계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참고 : 건축쓰레기 양산한 대청호 오백리길).

설치되어진 난간이 부서져 방치되고 있다.
▲ 난간이 부서져 있는 현장 설치되어진 난간이 부서져 방치되고 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호반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곳곳에 있었다. 호반의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도 있었고, 풀내음과 바람이 나무와 풀들을 흔들며 내는 연주를 만끽 할 수 있었다. 산정상에서 보는 호수와 산림의 조화나 물가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는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높았다. 치열한 삶을 사는 주민들이겠지만, 지나쳐가는 작은 마을은 그야말로 풍요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즐기기에 500리길은 너무나 불편했다.

호반길에는 아름다움을 담아낸 절대경관이 많이 산재해 있다.
▲ 아름다운 대청호 오반길 호반길에는 아름다움을 담아낸 절대경관이 많이 산재해 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상황이 이럼에도 녹색생태관광사업단은 사업시작 전 58만5000명이었던 관광객이 443만6000명으로 증가했다면서 성공적인 사업이었다고 자평했다. 사업단을 이끌어 왔던 대전발전연구원 이창기 원장(이하 이 원장)은 "3년간 74억 원이 투입되었고, 여가의 경향이 트레킹이나 걷기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겨냥해 조성했다"고 완료 보고회에서 주장했다.

이후 지식경제부에서 500리길을 우수사례로 선정하여 장관상을 수상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아시아 경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뿌듯해 했지만 500리길의 미래는 밝아보이지 않는다.

광광객증가와 아시아경관상 수상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발표했다.
▲ 지난 4월 25일 이창기원장이 오백리길 결과발표외에서 연설하는 모습 광광객증가와 아시아경관상 수상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발표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다녀본 입장에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길을 만들어 놓고 홍보를 통해 치적인 드러낸 것과 진배 없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2013년 4월 30일 사업이 종료되고 해체된 녹색생태관광사업단은 대전시 마케팅공사가 관리를 위탁받아 진행하게 되었다며, 소임을 다한 것처럼 설명했다(관련기사 : 대충청권 녹색생태관광사업결과 보고회).

하지만, 대전마케팅공사는 21개 500리길 코스 중 6개만을 관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전시가 포함된 길만을 관리하는 것이다. 어쩌면 대전시로서는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지자체의 경계 밖의 길을 관리할 어떠한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500리길의 약 3/4인 15개의 코스의 관리주체가 없는 것이다. 충북도나 옥천보은 등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대전지역을 제외한 모든 길이 향후에 그대로 방치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방치는 곧 74억 원의 낭비를 의미한다. 이대로라면 500리길은 사라질 것이다. 아까운 세금낭비 사례가 될 것이다. 아시아 경관상, 지식경제부장관상은의 권위는 바닦으로 떨어 질 수밖에 없다.

대전환경운동연합과 대청호보전운동본부는 전코스를 모두 모니터링하여 문제점을 찾고 개선점을 논의 했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만든 주체인 녹색생태관광사업단은 해산되었고, 대청호보전운동본부 관계자의 의하면, 충북도 등의 지자체들은 관리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장기적 관리는 무시한 채 사업만 진행한 엉터리 사업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부분이다. 조성된 길의 특성상 지속적인 관리가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지자체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향후 관리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등의 지자체들의 협력을 통해 대청호 500리길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500리길은 한연구원에서 벌인 전시성 사업, 74억 원을 낭비한 사업으로 전락 할 것이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못할 500리길은 이제 갈 곳을 잃었다. 갈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하지만 대청호의 여유와 정취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관련된 지제체 모두가 함께 고민 해야 한다. 대청호의 아름다움과 그곳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태그:#대청호오백리길, #대전시, #대전발전연구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