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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전 판사는 사법부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였다. 2004년 양심적 병역 거부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슈가 된 이 전 판사는 그 이후로도 SNS에 패러디물인 '가카새끼 짬뽕' 사진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보수 언론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보수 언론은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이 전 판사가 사법부 내에서 이념 갈등을 일으키는 '시정잡배'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파란만장했던 사법부 생활. 그렇기에 이 전 판사는 사법부를 떠난 지금도 끊임없이 당시를 되돌아보며 판사, 그리고 사법부의 역할을 고민해왔다. 이 전 판사가 말하는 사법의 현실은 무엇인지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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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연구회, 보수공격으로 오히려 성향 편향돼"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직후 신문 1면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는 것을 보며 이 전 판사는 '이 정도인가' 싶어 얼떨떨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센 후폭풍으로 인한 부담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때 뭔가 잘못된 건 없었는지 반성하고 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았어야 했는데 당시엔 내가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엄청난 오류를 저질렀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정렬 전 판사가 '진보 판사'로 확고히 규정된 이유는 역시 '우리법연구회'였다. 그가 몸담았던 '우리법연구회'는 보수의 오랜 타깃이었다.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으로 알려지면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고, 결국 2010년 명단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전 판사는 원래 다양한 이념이 존재했던 '우리법연구회'가 오히려 보수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 스펙트럼이 축소됐다고 밝혔다.

"우리법연구회가 건강한 모임이었던 이유는 회원 조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보수 언론에서 대항마로 표현했던 '민사판례연구회'는 가입 조건이 까다로웠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야 하고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초임이 서울지방법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하려면 와서 술 한 잔 하고 박수치면 끝이었다. 그래서 회원의 이념 스펙트럼이 넓었는데... 보수가 그렇게 공격하고 명단공개를 결정할 때 보수 쪽 스펙트럼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정치적 사건엔 국민참여재판 배제? 말도 안되는 소리!"

이정렬 전 판사는 국민참여재판 연구 모임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렇게 도입된 지 6년째인 지금,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여권 쪽에서 나꼼수 사건, 안도현 시인 사건을 근거로 '정치적 사건'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 도입을 추진했던 이 전 판사는 이런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전 판사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을 선정할 때 검사가 변호사와 합의 하에 배심원을 빼는 제척제도가 있다"며 "그렇게 했는데도 무죄 평결이 나온 거면 그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문제라 말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나아가 이 전 판사는 "지금은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을 확대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지금 국민참여재판이 형사사건에서도 일부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민사 사건으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나 민사의 경우 세상물정 모르는 판사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국민참여재판을 하면 좀 더 정확한 사실판단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욕할 때가 아니라 더 확대해야 할 때다."

퇴임 후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당분간 쉬면서 '전업주부'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이정렬 전 판사이지만 법조계로 돌아올 날이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 법 현실, 나아가 우리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그의 갑갑증과 참여열정이 인터뷰 내내 스며나왔기 때문이다.


태그:#이털남, #이정렬, #가카새끼 짬뽕, #양심적 병역 거부, #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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