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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법조인이 있습니까?"
"존경하는 변호사, 존경하는 법조인이 있습니까?"

수업을 하면서 예비변호사인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당황한다. 변호사가 되려고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존경할 만한 변호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진로선택에서 원칙은 간단하다. '안정적인 직업'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받고 그 감동으로 자기 진로를 결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그러니 교수의 갑작스런 이런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이 질문은 사실 필자가 존경하는 분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한승헌 변호사다. 한국 법조 역사에 우뚝 선 거인, 법조인 생활 55년 동안 일관되게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편에 섰던 변호사, 권력에 의하여 탄압받는 피고인을 위하여 변론을 하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 두 번의 구속과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한 변호사, 그가 바로 한승헌 변호사다.

그가 변호한 양심수가 몇 명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그가 남긴 기록은 읽고 정리하기도 벅차다. 변호사로 시작했으나 법조계를 넘어 사회적, 국가적 보물이 되었다. 학생들이 그의 책을 읽고 보이는 반응은 위와 같은 표현을 모두 수긍하고도 남을 정도다.

자랑꺼리보다 부끄러운 게 많은 한국 법조의 역사

한국의 공식적인 법조역사는 1895년 재판소구성법이 제정된 때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때부터 1945년까지는 사실 한국의 법조역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우리의 법조역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법률과 재판소, 검찰청 등 모든 법조시스템이 조선인을 탄압하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변호한 변호사들의 활동만이 이 아픈 시기의 기억을 치유해준다.

해방 이후 우리는 국민 모두를 위한 법조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법조는 정치권력에 종속되어 정치권력에 봉사했다. 정치권력을 정당화했고 나아가 정치권력과 함께 권력을 나누었다. 법조는 성장하고 법조인은 출세했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는 탄압받았다. 법의 이름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시대였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최근 계속되는 재심 무죄사건들이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진보당 조봉암 사건,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태영호 간첩조작사건, 송씨일가 간첩조작사건 등이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유명한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는 현행 헌법은 물론 유신헌법에 따르더라도 위헌'이라는 판결은 군부독재 시대에 법조가 시민이 아닌 국가, 약자가 아닌 강자, 법률이 아닌 불법, 정의가 아닌 부정의 편에 서 있었다는 반성의 목소리다.

당시는 오히려 사법의 피해자들이 사법의 독립을 외치던 모순적인 시대였다. 이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탄압받는 피고인 편에 선 변호사가 없었다면 당시는 그야말로 암흑이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를 거치면서 한국의 법원은 겨우 정상화되었다. 민주정부는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고 사법개혁을 통하여 기초적인 사법의 정상화를 이루었다. '기초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 검찰이 개혁되지 않아서이다.

존경과 권위가 사라진 우리나라 법조계, 그 뿌리는 '관료사법'

사정이 이러니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법조인은 극소수이다. 특히 고위직 법관, 검사일수록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여기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사법시스템이 '관료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관료사법' 시스템은 국가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변호사를 양성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국가 권력기관인 법관과 검사를 양성했다. 이 때문에 법조인은 법관, 검사라는 사법관료와 동일했고 법조 자체는 권력이 되었다. 법조인의 성공은 곧 권력자로서의 성공이 되었다. 변호사로서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편에 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관료사법의 영향은 크고 넓다. 최근 판사와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판·검사 출신들이 믿음직한 관료로서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감사원장 등 요직을 점령하고 있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법관들도 거리낌 없이 행정부로 진입한다. 이들에게는 법률이 곧 권력이고 권력이 곧 성공이다.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예외가 아니다. 판사, 검사 출신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법조 자체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험악한 환경 속에서 한승헌 변호사는 한길을 걸어왔다.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한국 법조에 조금이라도 균형이 있었다면 한승헌 변호사와 그와 함께 싸운 인권변호사들 덕분이다. 그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생도 엄청났다. 그리고 변호사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보게 된다. 다음은 한승헌 변호사의 말이다.

"내 이력서에는 고시 합격, 검사, 감사원장 같은 양지도 보이지만 연보에는 그와는 전혀 다른 가난과 고생, 재수까지 한 감옥살이, 여러 해에 걸친 실업자 생활 같은 음지가 짙게 배어 있다. 음지가 양지를 불러들였는가 하면, 양지가 음지의 전주곡이 되기도 했는데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음지 속에서 정신적으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한 인간으로서 성숙했으며 나의 본색을 키웠고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나를 키워준 음지에 감사한다."

양지와 음지의 호환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한 변호사가 참여정부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을 때 공동위원장이 이해찬 국무총리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조작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공동피고인이었다. 공동피고인이 공동위원장이 되었으니 음지가 양지로 된 경우라고 해야 할까.

이 자랑스러운 '국보급 변호사'가 법조 55년을 기념하는 선집 네 권을 냈다. 자전적 산문인 <피고인이 된 변호사>를 비롯하여 <권력과 필화>,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그리고 일본평론사 발간의 <한일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한다>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위기 시대다. 과거행 급행열차를 탄 느낌이다. 그런데 과거에 한승헌 변호사가 계셨다. 그리고 지금도 계시다. 그를 따라 제2의, 제3의 한승헌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 시대에 이 네 권의 책을 읽으며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권하고 싶다. 과거 한승헌 변호사가 민주주의를 지켰듯이.

"한승헌 변호사님의 법조55년 기념선집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태그:#한승헌, #김인회, #법조, #권력과필화, #한국의법치주의를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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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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