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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경기도 의왕에서 주말마다 농사를 짓는 기훈씨를 텃밭에서 만났다. 절기상 2월 초순의 입춘(入春)이 막 지났지만 아직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깡통난로에 고구마 몇 개를 굽고 있었다.

"형, 뚱딴지감자라고 알아? 돼지 발톱처럼 생겨서 돼지감자라고도 하는데"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본 적은 없어."

텃밭 옆으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봄부터 공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공사구간 근처의 밭 주변에 돼지감자를 심어논 그는 집안일로 고향에 몇 달간 다녀오느라 수확을 못했다고 했다. 한 겨울에 얼어붙은 땅을 팔 수 있을까 싶었지만 쇠스랑(포크모양으로 괭이처럼 생긴 농기구)을 들고 따라나섰다.

"꽃부터 뿌리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네"

풀보다 빠르고 높게 자라는 야생의 돼지감자 주변에서 풀은 힘을 쓰지못한다. 옆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좌측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돼지감자의 성장과정과 뿌리)
 풀보다 빠르고 높게 자라는 야생의 돼지감자 주변에서 풀은 힘을 쓰지못한다. 옆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좌측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 돼지감자의 성장과정과 뿌리)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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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감자가 있는 밭 주변을 쇠스랑으로 찍어내기 시작하자 생강처럼 생긴것들이 뭉텅이로 모여 있었다. 한 겨울에도 죽지 않는다는 야생(野生)의 돼지감자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주변의 흙을 넓게 걷어내자 실로 엮은 것처럼 크고 작은 돼지감자가 뿌리와 함께 붙어 있었다.

한 포대 가득 담아온 돼지감자의 맛은 밍밍해서 생으로 먹기에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지만, 믹서기로 갈아 요구르트를 넣었더니 먹을 만했다. 당뇨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돼지감자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효능이 많다고 한다. 효소를 만들기도 하고 얇게 썰어서 건조시킨뒤 차로 마시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꽃잎도 차로 이용하며 줄기와 잎 뿌리 등은 병충해에 대응하는 자연농약으로도 사용한다.

얻은 돼지감자를 모래를 담은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주방의 찬장에 두었다. 다른 작물과 달리 척박하고 거름이 없는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그야말로 야생성(野生性)의 돼지감자는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하다. 그래서 한 번 심으면 주변으로 번져나간다는 말을 듣고는 혹시 밭을 망칠까 싶어 봄볕이 따뜻한 4월 말에 텃밭의 바깥자리에 드문드문 심었다.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7월, 텃밭에서는 풀과의 한판 싸움으로 하루해가 짧다. 풀의 성장속도를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작물에게는 사람의 돌봄이 없으면 무조건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다. 작물 주변에서 무섭게 세력을 넓히는 풀들의 기운을 꺾는 김매기를 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전혀 돌봄없이 깜박 잊고 있었던 돼지감자가 풀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돼지감자 주변의 풀들은 확실히 세력이 약해보였다. 돼지감자의 성장 속도는 풀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하늘을 향해 쑥쑥 올라갔다. 여름이 끝나도록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뽑아주지 않아도 되는 야생의 작물 앞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해바라기와 많이 닮은 돼지감자의 꽃과 돼지발톱처럼 생긴 감자
 해바라기와 많이 닮은 돼지감자의 꽃과 돼지발톱처럼 생긴 감자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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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가을하늘에 노랑색의 꽃이 활짝 피었다. 얼핏 보면 해바라기와 닮았다. 늦가을이 깊어지고 절기상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入冬)이 있는 11월 초. 서리를 맞고 검버섯이 핀 것 같은 초라한 잎을 단 줄기를 베고 주변의 흙을 걷어내자 실타래처럼 얽힌 잔뿌리와 함께 돼지감자가 송송이 달려나왔다. 옆으로 뻗어가는 모양새의 뿌리에서는 작은 감자알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달려서 주변으로 세력을 넓히는 중이었다.

올해도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작년에 수확하여 왕겨 속에 묻어 둔 돼지감자를 심었다. 어김없이 풀보다 빠르고 높게 하늘을 향해 직진하는 야생의 돼지감자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태그:#돼지감자, #뚱딴지감자, #야생, #해바라기, #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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