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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앞에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강북지역시민단체 회원들이 친일,역사왜곡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채택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학중인 창문여고 학생 수십명과 학부모들도 참여해서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한편 창문여고측은 기자회견 직전 학운위를 열어 교학사가 아닌 지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회견 참석자들과 학생, 학부모들은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 교학사교과서 채택될까 걱정된 학생들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앞에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강북지역시민단체 회원들이 친일,역사왜곡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채택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방학중인 창문여고 학생 수십명과 학부모들도 참여해서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한편 창문여고측은 기자회견 직전 학운위를 열어 교학사가 아닌 지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회견 참석자들과 학생, 학부모들은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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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단언컨대, 이번 논란은 한국 교육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태의 하나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함량 미달의 교과서와 그 뒷배를 봐준 정부·거대 여당, 학교 내 권력자들의 부당한 행태 등에 맞서 학생과 동문, 학부모, 일반시민 등이 맞서 싸워 거둔 '이례적인 승리'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이 역사적인 사례의 주인공이다.

약간 조심스럽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처참한 몰골을 한 채 태어난 교과서를 채택하는 간 큰 학교가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교과서에 깔려 있는 사상과 이념을 떠나서 보더라도 말이다. 내가 공공연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0퍼센트대로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일본 내에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던 후쇼샤 판 극우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0.039퍼센트였던 사실도 참조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무려' 10여 군데나 되는 학교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2014학년도 사용 예정 교과서로 선택한 것이다.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괴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애초부터 태어나서는 안 될 '괴물'이었다. 교과서는 절대선이 아니다. 무오류의 화신도 아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받으면서 종종 저자와 출판사의 실수 목록표인 '정오표(正誤表)를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과서든 그 무엇이든 무릇 책이라면 얼마든지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상식이 있는 저자들이라면 그런 교과서를 부끄러워하며 즉각 회수해 갈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거듭 사과하며 제대로 된 수정본을 내놓을 것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책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오류와 실수가 있었다. 이념과 사상의 편향을 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들에게서 올바르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이나 역사교과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들에게 교과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괴물 교과서를 교육부는 기꺼이 인정해 주었다. 교육부는 그 누구보다 괴물 교과서를 엄단해야 하는 정부기관이다. 그들은 그럴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는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정예 관료들이 있다. 외곽에서 도움을 주는 수많은 이들이 전문가나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진해 있다. 행정기관 특유의 엄격한 심사 시스템도 그들의 무기다. 교육부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괴물 역사 교과서가 조용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괴물 교과서를 채택한 10여 곳의 학교에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채택을 철회하라는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학부모와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괴물 교과서로 어떤 괴물 역사관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내려고 그러느냐며 학교를 압박했다. 그 시퍼런 서슬에 1퍼센트대에 달했던 괴물 교과서 채택률은 하루이틀만에 0퍼센트대로 내려앉았다. 예정된 수순이고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제 끝인가. 그렇지 않다. 중요한 몇 가지 일이 아직 남아 있다. 먼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학교들에 대한 처리 문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번 역사 교과서 채택 과정에 부당한 외압과 편법 등의 불공정한 사례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경기도의 한 고교에서는 교장의 압력을 받은 교사가 일종의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현재의 학교시스템에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직 학교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밀한 뒷사정들을 짐작하는 까닭이다. 그 안에서 얼마나 더 많은 추악한 일이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교과서 채택을 철회했다고 온정주의에 빠져 유야무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문제가 된 학교를 관할하는 시·도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대상으로 특별 조사나 긴급 감사를 해야 한다.

문제의 학교들 중에는 사립학교들이 많다. 재단 이사장의 입김이 교장을 거쳐 절대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곳이 사립학교다. 일개 교사협의회 차원에서 괴물 교과서를 1순위로 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이사장이나 교장과 같은 학교 권력자들의 외압 정황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시·도교육청은 교과서 채택 과정의 전후시말을 철저하게 밝혀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개입이나 압력을 파헤쳐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이 발견되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조치도 취해야 한다.

서남수 교학사 장관?

작년 여름부터 시작된 역사 교과서 파동의 최종 책임자인 교육부 문제도 있다. 그 정점에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있다. 시중에는 "서남수 '교학사' 장관"이라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함량 미달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호천사'를 자임한 교육부와 교육부장관의 행태를 꼬집는 말일 것이다.

"서남수 '교학사' 장관"은 결코 근거 없이 나온 '조롱'이 아니다. 지난해 9월 11일, 교육부는 최종 합격 판정을 받은 한국사 교과서 8종 전체를 대상으로 10월 말까지 수정·보완 작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발표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정 취소를 요구하는 야당과, 심각한 내용 오류와 편파적인 서술 등을 정리해 발표한 역사학계의 격렬한 비판이 나온 직후였다. 교육부가 기획한 물귀신 작전에 7종 교과서 저자들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11월 14일에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정심의회를 구성하여 11월 29일자로 7종 교과서 출판사에 41건의 수정명령을 통보한다. 그 중에는 이미 폐기되다시피한 학설에 근거한 내용이 들어 있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정심의회 구성의 자의성과 편파성, 막무가내식의 비밀주의도 도마에 올랐다. 교육부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지난 12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목을 축이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지난 12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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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 장관은 역사 교과서 국정 체제와 관련한 발언을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 장관은 국정 체제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장관이 일방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교육과정을 개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정 전환 관련) 공론화가 돼 정책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관이 일방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회피성 발언은 대언론용 상투어일 뿐이다. 그 자신의 말에 이유가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 체제 전환을 위한 공론화의 전제 조건인 교육과정 개정이 바로 교육부의 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서 장관은 이 자리에서 편파 논란을 불러일으킨 수정심의회 명단 발표에 대한 언급도 했다. 서 장관이 약속한 수정심의회 명단 발표 시점은 교과서 채택 작업이 모두 끝난 후였다. 이번 역사 교과서 채택 업무의 최종 시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서 장관은 과연 발표 지시를 내릴까. 교육부는 온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최근 상황에서 그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런 교육부의 모습을 보면 수정심의회 명단 발표에 대한 기대는 무망한 일이 될 것 같다.

사실 지금 교육부는 이례적일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이미 채택된 교과서가 철회되는 상황은 결코 정상적인 게 아니다. 교과서 채택을 위한 심사 과정에 학교장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 등이 공공연히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도교육청이 나서기 전에 교육부가 먼저 특별 조사니 감사니 하는 말을 해야 하는 긴급한 국면인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와 서 장관은 줄기차게 입을 다물고 있다.

역사 교과서 검정 작업은 온전한 의미의 정치적 중립(외부의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이 그 어떤 일보다 필요한 교육 업무다. 하지만 서 장관이 이끄는 교육부는 이를 위한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 중 한 명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여당인 새누리당의 실세 김무성 의원이 이끄는 편향된 역사 교실 모임의 강사로 나가도 그 흔한 주의나 경고 한 번 내리지 않았다. 부실과 편파, 사실 왜곡 논란에 휩싸인 괴물 교과서를 최종 합격시킨 것에 대해 단 한 번의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문제 투성이의 괴물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무리수와 자충수를 둔 업무 추진 과정은, 일반 교사나 공무원이라면 한두 번의 징계로도 모자라는 게 아닐까. 야당이 제출한 해임건의안을 따라서가 아니라 서 장관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맞는 이유다. 그것만이 현재 사태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교육 수장으로서의 명예로운 선택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의 대다수는 속속 처음의 결정을 철회하고 있다. 현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결정하지 않은 곳은 전북 전주에 있는 자립형사립고인 상산고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남은 마지막 문제는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와 관련된 것이다. 위에서 서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도 살핀 것처럼, 정부와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를 현재의 검정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할 것을 공공연히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엄'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도 실려 있는 것 같다.

국정으로 만들어지는 역사 교과서의 폐해와 한계는 이미 많은 이가 두루 공감하고 있는 문제다. 유신 시대에 본격화한 국정 역사 교과서는 정권의 안위와 홍보를 위한 '찌라시'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 교육이 기득권이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자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결국 역사 교과서 발행은 자유 발행 체제로 가야 한다. 현재의 역사 교과서 발행 시스템은 무늬만 검정일 뿐 국정이나 마찬가지다. 교과서 편찬기준과 집필상의 유의점, 수정심의회와 전문가협의회 등등 수많은 '외부 간섭자'들의 개입으로 결국 붕어빵 교과서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한쪽에서 괴물 교과서가 나오는 의도적인(?) 파격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국가가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재의 검정 시스템 아래에서는 훌륭한 역사 교과서가 나오기 힘들다. 무늬만 검정으로 진행되는 교과서에서 역사를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을 갖게 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역사 교과서를 포함하여 전체 교과서를 자유발행제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교과서 채택 철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서남수 교육부장관, #검정 시스템, #자유발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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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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